[TV삼분지계의 이 달의 생각] ① 2020년엔 텔레비전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보고 싶다
장애인식개선·메이킹 다큐멘터리·채식 맛집 투어. TV에서 볼 수 있을까요?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의 이 달의 생각] ◾편집자 주◾ 21세기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숨가쁘다.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를 다 챙겨보는 일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 시대, 당장 눈 앞의 변화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초점을 잃게 된다. 그래서 TV삼분지계는 생각했다. 매주 방영되는 프로그램 리뷰 말고, 보다 더 긴 호흡으로 TV를 곱씹어 볼 수는 없을까? TV삼분지계는 한 달에 한 번, 특정한 주제를 놓고 이야기 해보기로 했다. 지금 당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이야기에 얽매이지 않고, 더 긴 호흡으로 중요하다 생각되는 것들을 이야기하기로. 이름하여 [TV삼분지계의 이 달의 생각]이다.

2020년 1월의 생각은 ‘2020년엔 텔레비전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보고 싶다’다. 2000년대의 두 번째 10년의 끝자락이었던 지난 2019년은, 그 동안 우리가 웃고 즐기던 프로그램들이 과연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고 있었던 건지 질문하게 만드는 한 해였다. 리얼 버라이어티와 관찰 예능을 통해 대외적인 이미지를 쌓아왔던 남성 연예인들의 성 범죄 사실이 속속 드러났고, K-팝 열풍을 견인한다 자부했던 Mnet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의 상당수는 조작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관찰 예능과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며 예전처럼 마냥 환호할 수 있을까? 2000년대의 세 번째 10년은, 지난 10년과는 다른 프로그램들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정석희 평론가는 MBC <우리동네 피터팬>의 폐지를 안타까워하며,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프로그램을 신설하거나 혹은 기존 프로그램 내에서 장애 문제를 더 많이 다뤄주면 어떨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 김선영 평론가는 결과에 주목하는 대신,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까지 수많은 이들이 흘린 땀과 노동의 가치에 주목하는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보고 싶다는 의견을 냈다. 이승한 평론가는 건강과 환경을 생각해 채식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를 생각하면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맛집 프로그램’이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겠냐는 상상을 펼쳤다. 다음은 세 평론가가 꿈꿔 본 2020년 TV에 대한 상상이다.



◆ 더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있던 것도 사라지는 장애인식개선 프로그램

MBC <장애인식개선 프로젝트 - 우리동네 피터팬>이 57회 ‘장애인 댄스 스포츠 선수 김남제’ 편으로 마무리 됐다. ‘장애인식개선’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방송사마다 하나씩 있어도 부족할 판에 이토록 허망한 끝이라니. 게다가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 날 맞는 종영인지라 헛웃음이 나왔다. 선물을 주는 게 아니라 뺏는구나 싶어서.



<우리동네 피터팬>은 수많은 장애물을 극복해야 하는 장애인의 하루를 관찰 카메라 형식으로 담아 왔는데 나도 손녀가 생겨 유아차를 밀기 시작하면서 장애인들의 고충을 피부로 느껴온 터라 매번 무릎을 치며 공감했었다. 지하철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서는 먼 길을 돌아가야 하고, 예쁘고 세련되게 꾸며진 길이 장애인들에게는 오히려 불편을 준다는 걸 예전에는 몰랐기 때문이다.



신체 기관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라는 사전적 정의와 달리 세계적인 추세는 장애를 개인의 생물학적 손상이 아닌 사회적 차원의 문제로 본다. 문화와 환경에 의해 사회 참여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장애인이고 그런 이유로 외국에 나가 언어 장벽을 느끼는 경우도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걸 <우리동네 피터팬>을 통해 배웠다. 채널이 늘면서 생겼다 사라지는 걸 인지할 겨를도 없을 정도로 숱하게 많은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은 없다. ‘장애인식개선’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다면 떼 지어 몰려다니며 먹고 노는 틈틈이 누군가가 ‘장애인식개선’의 중요성을 한 번씩 짚어줄 수는 없을까? 나영석·김태호 PD님, 유재석·강호동·신동엽 씨, 그거 안 될까요?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메이커스,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MBC <놀면 뭐하니?>가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로 반등한 결정적 계기는 ‘유플래쉬’와 ‘뽕포유’의 성공이다. 두 프로젝트의 공통점은 하나의 결과물이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가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는 데 있다. ‘유플래쉬’는 다양한 장르 뮤지션의 음악 릴레이를 통해 곡이 완성되는 세밀한 단계를 차근차근 따라갔고, ‘뽕포유’ 역시 기존에 잘 몰랐던 트로트의 창작과 유통 과정을 구체적으로 담아냈다. 그런가 하면 최근 넷플릭스가 공개한 다큐멘터리 시리즈 <무비: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은 명작이 탄생하기까지의 뒷이야기를 조명한다. <더티 댄싱>, <나홀로 집에> 등 시대를 초월한 사랑을 받는 작품들이 기획 단계에서 사라질 뻔하다가 극적으로 생명을 얻게 된 이야기는 영화만큼이나 재미있었다.



잘 만든 메이킹 스토리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오리지널 스토리가 될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제작기, 메이킹영상이 ‘부가 영상’으로 취급받는 시대는 지났다. 단지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한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요즘의 대중은 특정 콘텐츠와 그를 둘러싼 세계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공익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알고 보니 스태프들의 노동 착취 위에서 만들어졌다는 뉴스가 흥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도 일어난다. 상품을 구매할 때도 마찬가지다. 혹시 비윤리적 작업 과정은 없었는지가 누군가에겐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된다. 이제 우리는 상표 뒤에 사람이 있고, TV나 스크린의 프레임 바깥에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세상에는 아직 조명되지 못한 수많은 노동 분야가 있고, 그 모든 이야기가 대상이 될 수 있다. 넷플릭스 스타일로 제목을 지어본다면, <메이커스: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 같은 프로그램은 어떨까. ‘뽕포유’처럼 하나의 장르가 탄생하는 과정일 수도, <무비: 우리가 사랑한 영화들>처럼 특정 콘텐츠의 제작기가 될 수도 있겠다. 요즘 인기를 끄는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처럼 스포츠팀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이제는 사라진 추억의 물건이나 장소 뒤에 존재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지금 한창 미국에서 각종 시상식 일정을 소화 중인 <기생충> 팀으로 인해 새삼 관심을 얻고 있는 오스카 캠페인 과정처럼 시의성 있는 기획도 가능하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만드는 이들의 가치를 알려주는 이야기를 보고 싶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 채식 맛집 프로그램, 먼저 만드는 사람이 임자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 추정치는 2019년 기준 전체 인구의 3% 수준인 150만여명이다. 정확한 통계라고 보긴 어렵겠으나 확실히 채식을 시도하거나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만은 사실이다. 동물성 식자재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완전채식 ‘비건’ 푸드 판매량은 2019년 전년 대비 10% 가량 증가했고, 편의점 업계는 앞다투어 비건 도시락이나 비건 버거 등의 비건 먹을거리를 개발해 출시했다. 식품회사들은 대체육 시장에서 경쟁을 펼치는 중이다.

직접 요리해 먹으면 채식은 크게 어렵지 않다. 문제는 외식을 할 때 생긴다. 흔히 한식은 양식에 비해 채소의 비중이 높아 채식 친화적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당장 김치에 들어가는 멸치액젓, 새우젓, 굴 등의 속재료도 동물성이다. 상당수의 조미료에는 동결건조 우육분이 들어가 있고, 국물 요리의 대부분은 멸치 다시나 사골 국물 기반이다. 채소 기반의 반찬이 많을 뿐, 메인 디시로는 어쨌거나 동물성 식자재를 사용하는 메뉴만을 취급하는 집들이 많다 보니,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들이 외식을 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채식 인구는 증가하는데 채식 식단을 제공하는 식당의 수는 적은 상황. TV가 발빠르게 나서면 어떨까? 일찍부터 주변에 건강이나 종교적인 이유로 채식을 선택한 이들이 많았던 터라, 채식 식당이나 비건 옵션을 구비한 식당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작년 하반기 포유류와 조류의 섭취를 중단하고 페스코 식단(동물성 식자재는 어패류와 계란, 유제품에 한정해서 섭취하는 식단)으로 생활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더더욱 그런 프로그램이 고프다. 채식주의자들은 늘 괜찮은 식당 정보가 간절하다. 진정성 있는 채식 맛집 프로그램이 생긴다면, 생기자 마자 충성도 높은 시청자가 되지 않을까? 추정치 150만의 잠재적 콘텐츠 소비자가 보장된 시장이다. 먼저 뛰어들어 자리 잡는 사람이 임자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영상·사진=MBC, 넷플릭스, 코미디TV, 그래픽=이승한]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