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길어올리기’, 한국영화 흥행문화의 새로운 이정표
- 영화 흥행의 강점과 약점 비교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영화로본세상]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작품 [달빛 길어올리기]의 성공여부에 영화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기서 ‘성공’이란 작품성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극장 흥행에 대한 얘기다. 전주시와 전주국제영화제로부터 13억원을 지원받아 제작된 이 영화는 임 감독이 [천년학] 이후 5년만에 내놓는 작품이다. [달빛 길어올리기]는 요즘에 흔히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이른바 문예영화다.

임권택 감독하면 칸영화제 감독상 등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대가(大家)급 감독이다. [달빛 길어올리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최고의 감독이 지자체와 공적 단체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아 만든 비상업영화다. 물론 배급은 CJ엔터테인먼트와 롯데시네마, 쇼박스 등 3사 메이저가 공동으로 맡았다. 어떻게 보면 기묘한 결합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달빛 길어올리기]가 시장에서 어느 정도 성공하고, 또 얼마나 생존해 내느냐에 따라 추후 이런 류의 영화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될 듯 싶지만, 임권택 감독은 또 한번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게 됐다. [달빛 길어 올리기] 흥행의 강점과 약점을 비교 분석해 봤다.

♦ 강점 = 뭐니뭐니 해도 ‘임권택표’라는 것이다. 임권택 영화는 임 감독 스스로가 브랜드다. 그의 이름의 인지도는 그 어떤 톱스타만큼이나 높다. 사람들은 임권택의 영화를 ‘존중’한다. 사람들은 그의 영화를 ‘봐야 할’ 목록에 올려 놓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영상미가 탁월하다는 것 또한 그의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는데 큰 몫을 차지한다. 이번 영화 역시, 임 감독이 처음으로 시도하는 디지털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상의 깊이가 남다르다는 평가다. 특히 한지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대한 꼼꼼하고 정교한 영상의 서술은,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시사회 이후 저널들의 반응도 ‘적어도 사람들이 갖고 있는 한지에 대한 단순하고 부박한 지식을 확장시키고 그럼으로써 그 관심을 보다 증폭시키는데 큰 역할을 할 영화”라는 것이었다. 한지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한지열풍이 올라가면 덩달아 영화의 흥행도 예측 이상의 수준으로 뛰어 오를 가능성이 높다. 박중훈, 강수연, 예지원 등 친화력이 강한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것도 관객의 스펙트럼을 넓히는데 한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감독에게 품고 있는 이들 배우들의 존경심, 애정 등이 관객들에게 ‘보기 좋은’ 모습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 영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가족주의’는 영화 관람의 가족주의로 치환되곤 한다. 가족 관객들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달빛 길어 올리기]의 최대 장점은 이처럼, 영화계 안팎으로 우군이 많다는 것이다. 평단, 언론은 물론 범예술계에서의 자발적 관람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 영화가 어느 정도 흥행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것은 바로 그때문이다.

♦ 단점 = 무엇보다 국내의 영화시장구조가 크게 왜곡돼 있다는 것이다. 비상업영화, 시스템밖 혹은 脫시스템화된 영화는 최근 몇 년간 시장에서 급속하게 퇴출돼 왔다. 대다수 관객들의 머리속에는 ‘영화=대기업형 상업영화’라는 공식이 이식돼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 않은 영화인 경우 ‘비대기업영화=예술영화=지루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상업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이 같은 편식증은 현재 공룡처럼 커져 버린 상태다. 영화 [만추]의 안타까운 실패, [파수꾼] [혜화, 동] 등 새로운 영화에 대한 이유모를 거부감 등이 그 같은 현상을 대변한다. 물론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같은 성공사례도 나오고 있지만 그건 극히 예외적 상황으로 평가된다. 어쨌든 그런 과정에서 국내 영화흥행은 첫주 3일 안에 승부수를 봐야만 성공하며 또 그래야만 비교적 장기간동안 스크린 수를 유지할 수 있다는, 기형적 태도들이 자리잡아 왔다.

만약 [달빛 길어 올리기]가 개봉 첫 주말에 만족할 만한 성과(전국 200개 스크린에서 관객 20만명선을 모으는 것)를 거두지 못하면 조기종영의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박중훈, 강수연, 예지원 등 친화력이 강한 배우가 출연한다는 것이 역으로 이 영화를 중년세대 지향형으로 관객의 범주를 좁힐 위험성도 있다. 4,50대는 극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 영화문화의 주소비층은 20대들이다. 이 영화는 일단 20대들의 선호 품목에 들기 어렵다. 20대들이 먼저 영화를 움직이고 그런 다음에야 추후 4,50대까지 관객층이 확장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영화는 근본적인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달빛 길어 올리기]는 긴 전투가 필요한 전쟁이다. 속전속결의 첨단무기형 전쟁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극장 환경에서 장시간의 레이스를 어떻게 밟아 나갈 것인 가야말로 이 영화 흥행의 최대 관건이다. [달빛 길어 올리기]의 흥행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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