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멀’, 공멸을 피하자는 절박하고 긴급한 외침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처절하다. 동물 다큐멘터리들이 대체로 그렇다지만, MBC가 2020년 신년 특집으로 선보인 5부작 다큐멘터리 <휴머니멀>은 유독 더 처절하고 서글프다. ‘냉혹한 자연의 법칙’이나 ‘적자생존의 경쟁’ 같은 게 아니라, 인간 때문에 고통받고 인간 때문에 죽어가는 동물들을 다룬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대부분 알고 있다. 한 해에 인간 때문에 멸종하는 동물의 수가 얼마나 되며, 사태의 심각성이 얼마나 중한지. 하지만 머리로만 아는 것과 눈으로 목격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휴머니멀>은 그 현장으로 시청자들을 끌고 가, 두 눈 앞에 죽어가는 동물의 신음과 난도질당한 동물의 사체를 보여주며 지금 당장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정초부터 뭐 이렇게 끔찍하고 우울한 프로그램을 보냐고 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지금 봐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그만큼 끔찍하고 우울하다는 걸 이해해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비로소 실감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MBC <휴머니멀>은 지금까지 4부가 방영되었으며, 마지막 회인 에필로그만이 남았다. 설 연휴 기간 동안 VOD나 IPTV로 <휴머니멀>을 다시 본다면 어떨까? 2020년 한 해의 계획을 세우는데 많은 시사점을 선사할 작품이니 말이다.



◆ 공존을 위한 물음표

MBC <휴머니멀>에 프레젠터로 참여한 배우 박신혜처럼 나도 멸종을 자연스런 순환이라 여겼었다. 멸종되지 않도록 보호해야 옳지만 사라지는 종이 있으면 새로 생기는 종도 있지 않겠느냐, 이 또한 자연의 섭리 아니냐고 단순히 생각했던 것. <휴머니멀>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멸종 원인의 태반이 인간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심에 의해 산채로 머리가 잘린 코끼리와 코뿔소를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인간이 이렇게까지 잔인한 동물이었구나.



한편으로 총이 있으면 사자를 죽이고 싶다, 불법이라 해도 죽이고 싶다는, 소를 키우는 이들의 심정도 백번 이해가 간다. 왜 아니 그렇겠나. 자신의 목숨 줄과 같은 소를 매일 밤 한 마리씩 잃는 상황이니. 서식지를 잃어 민가로 내려와 가축들을 해치게 된 아프리카 사자들. 사자의 서식지는 지난 50년간 75퍼센트 감소했다고 한다. 전 세계에 남은 아프리카 사자가 2만 마리뿐이고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지만 사자와 함께 살아가게 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백수의 왕도 한낱 걸림돌일 뿐이라는 얘기다. 공간이 있으면 멀리 떨어져 살며 사자는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단다.

인간이 동물을 두려워한다고 해도 동물이 인간을 훨씬 두려워한다는 한 전문가의 말도 가슴에 남았다. 사자가 멸종하면 초식 동물들의 개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그들의 먹이인 풀과 나무가 초토화되어 사막화되기 마련이라고 한다. 사막화는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건 어린애도 알 일이다. 같이 살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물음표가 <휴머니멀>의 의미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두 종류의 카메라가 있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서커스를 마친 코끼리들과 포즈를 취하는 관광객들의 기념 촬영 카메라와 이 코끼리들이 어떻게 야생성을 제거당하고 이곳까지 왔는지 그 고통의 여정을 비추는 <휴머니멀>의 카메라. 그리고 이 두 카메라의 머나먼 격차 안에 오늘도 싸늘하게 죽어가는 동물들의 비극이 있다.

<휴머니멀>에 프레젠터로 참여한 배우 유해진은 치앙마이에 처음 도착해서 생태공원의 코끼리들을 만났을 때만 해도 “진짜 여긴 평화롭다”고 생각했다. 착시였다. 그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다리를 절거나 눈이 멀었거나 피부가 벗겨진 코끼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동물보호 활동가 생드언 차일러트가 설립한 코끼리 생태공원은 서커스, 트래킹, 사원 축제 등 수많은 행사에서 죽기 직전까지 학대당하다가 쓸모없어진 뒤에야 겨우 주인이 놓아준 코끼리들이 모인 곳이었다.



이곳에서 축제 의상에 가려졌던 코끼리들의 진짜 모습을 목격한 유해진은 인근의 코끼리 서커스장을 방문한다. 코끼리들의 묘기에 즐거워하는 관광객들의 자리에서 유해진은 이제 자신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그동안 동남아 여행을 하며 무심코 보아온 익숙한 풍경들. 이면의 진실에 눈을 뜬 이상 더 이상 저 코끼리들을 보며 웃을 수 없습니다.” <휴머니멀>의 메시지가 단적으로 드러난 장면이었다. 애초 코끼리 서커스장 관광객들의 기념 촬영 카메라와도 같았던 우리의 시선은 <휴머니멀>의 카메라를 따라가는 동안 어느새 유해진과 같은 각성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그동안 MBC는 ‘지구의 눈물’ 시리즈부터 지난해의 <곰>까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추구하는 걸작 자연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내놓았지만, 각성을 촉구하는 이번 <휴머니멀>의 메시지는 유독 절박하다. 자연생태계보존에 대한 요구가 그만큼 급박해진 시대의 반영이기도 하고, 공생의 여정을 멈추지 않은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비극의 무게 탓이기도 하다. “그동안은 몰랐다는 핑계로 무심했다면, 알게 됐으니 달라져야죠.” <휴머니멀>을 본 우리도 더는 예전과 같을 수 없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 절멸을 피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

몇 년 전부터 신발이나 옷을 새로 살 일이 생기면 동물 가죽으로 만든 제품은 피하고 있다. 피혁제품을 만들기 위해 키워지고 도축되는 동물의 수가 생태계 균형에 위험할 정도로 많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 내린 결정이었다. 작년부터는 같은 이유로 포유류와 조류 섭취도 잠정 중단했다. 물론 사람들이 “너 하나 마음 편하려고 하는 일”이라 비아냥거리는 것도 십분 이해한다. 나 하나 이렇게 몸을 사린다고 해서 지구 생태계가 절멸의 위기로 굴러 떨어지는 일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으니까. 하지만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간절함은 해가 갈수록 더 강해진다.

그 간절함, <휴머니멀>을 보며 다시 한번 느낀다. 인간의 즐거움을 위한다는 핑계로 학대당하는 태국의 코끼리들, 값나가는 상아와 뿔 때문에 지속적으로 밀렵 당하는 아프리카 대륙의 코끼리와 코뿔소들, 살아갈 터전이 파괴되어 민가로 내려올 수밖에 없는 사자들과, 그런 동물들을 사냥하면서 자신들이 생태계의 균형을 맞추는 보호자라 주장하는 제1국가 출신의 트로피 헌터들.



<휴머니멀>은 이 모든 광경을 기존의 자연 다큐들보다 훨씬 더 직설적인 화면으로 전달하며 시청자들에게 말한다. 인간이 이처럼 지구 생태계를 교란하고 비정상적인 속도로 멸종을 촉진시키고 있다고. 4회 ‘지배자 인간’의 오프닝에서 내레이터 김우빈은 시청자들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건넨다. “인간은 이 지구 생태계의 든든한 동반자였을까요? 아니면 그저 오만한 지배자인 걸까요?” 작품을 끝까지 본 우리는 안다. 후자인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최소한 전자가 아님은 분명하다는 것을.

물론 <휴머니멀>은 어떻게든 희망을 이야기하려는 선량한 프로그램이다. 4회 내내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위해 헌신하는 활동가들의 활약을 보여주며, <휴머니멀>은 생태계를 파괴할 막강한 힘을 지닌 것이 인간이듯 그 생태계를 복원할 힘을 지닌 것 또한 인간이라 말한다. 혹 보는 이들이 자포자기해서 모든 걸 포기해버릴까 두려웠던 것이리라. 그러나 화면 속 선량한 활동가들 몇몇만 믿고 가만히 있으면 그 희망은 힘을 잃는다. 우리 모두가 더 절박한 마음으로 각자 할 수 있는 실천을 행할 때만, <휴머니멀>이 조심스레 걸어본 희망도 간신히 현실이 될 것이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사진=MBC,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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