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 등 설 전후 새 예능에서 두드러진 ‘웃음으로 경계 넘기’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설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이 돌아왔다. 명절은 휴식의 시간이지만 예능가에서는 향후를 가늠할 치열한 테스트 마켓이 벌어지는 시기. 방송사들은 명절이면 파일럿 프로그램들을 선보이고 시청자들의 반응을 분석해 정규 편성을 고민해왔다.

합격 판단을 받고 정규편성 돼도 안착하지 못하고 몇 주 만에 종영하는 경우도 꽤 있다. 그래도 명절 파일럿은 <나혼자 산다> <복면가왕>(이상 MBC)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KBS) 등의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들과, 최근 자리 잡은 <구해줘 홈즈>(MBC) <맛남의 광장>(SBS) 등 많은 인기 예능의 산실이 됐다.

올해 설 명절 파일럿은 예년에 비해 장이 조촐했다. KBS2 <음치는 없다-엑시트>(이하 엑시트)와 MBC <유아더월드> 정도였고 SBS는 아예 파일럿을 편성하지 않았다. tvN의 <핑거 게임> 정도를 제외하면 종편이나 주요 케이블 채널도 예능 파일럿은 별로 선보이지 않았다. 연휴가 짧고 설이 토요일이라 기존의 주말 예능을 정규 방송으로 그대로 내보내면서 파일럿이 다른 때에 비해 적었다고 분석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에 비해 전체적으로 침체된 분위기가 파일럿 축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시도는 적었지만 파일럿을 포함해 설 전후 새로 방송된 예능 프로그램들에서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경계 확장. 기존에는 예능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어 다루지 않거나 제한적으로 채택했던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편견을 줄이고 신선함과 웃음을 동시에 잡는 시도들이 거듭 눈에 띄었다.

<유아더월드>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본격적으로 예능 안으로 끌어들였다. 영국, 벨라루스, 터키, 세네갈, 뉴질랜드, 캐나다, 멕시코 등 여러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한복 고르기 등 지정된 상황에서 내보이는 모습들을 다룬 리얼 버라이어티 유아 예능이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예능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이미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앞선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부모가 샘 해밍턴(방송인) 박주호(축구선수)처럼 한국에서 유명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유아더월드>처럼 일반인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대거 등장하는 예능은 전례를 찾기 쉽지 않다.

이미 익숙한 스타의 다문화 가정 자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비연예인 자녀들을 예능에서 만난다는 것은 여전히 존재하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을 좀 더 낮추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아시아계 다문화 가정 아이가 없고 유럽, 북미 등 서구 인종 위주의 멤버 구성은 다소 아쉽다. 정규편성 된다면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다.



설 파일럿은 아니지만 설 연휴 다음날인 28일 정규 방송을 시작한 KBS2 <스탠드업>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스탠드업>은 미국식 스탠드업 코미디를 도입한 프로그램으로 과감하고 도발적인 19금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 출연자 중 탈북 래퍼 장명진이 등장해 자본주의 체제 속 남한 사람들의 선입견 등을 웃음의 소재로 다뤄 눈길을 끌었다. 2000년대 들어 탈북자 유입이 급증한 후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나 TV조선 <애정통일 남남북녀> 등 일부 종편이 간판 예능으로 탈북 방송인을 적극 활용한 사례는 있다. 하지만 프라임 타임의 지상파 예능에서는 그간 탈북자를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다.

<스탠드업>은 설 연휴 직전(21일) 지난해 11월 선보인 파일럿을 재방송하면서 다음 주 정규 방송 런칭을 홍보했는데 여기에 장애인 코미디언 한기명이 등장한 것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기명은 “안 웃으면 장애인 차별, 웃으면 장애인 비하하는 거 같아 애매한 느낌, 나도 안다”라며 장애를 웃음의 소재로 삼았는데 장애인 입장에서 출발해 편견의 벽을 허무는 시도는 신선했고 의미가 있었다.



앞선 경우처럼 편견을 극복해야 할 소수자들을 예능 영역으로 끌어들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엑시트>도 결함으로 취급되는 음치를 소재로 다뤘다. 가수들이 멘토를 맡아 음치 연예인들이 훈련을 거친 후 노래 잘 부르기에 도전했다. 음치를 부분 소재로 활용한 예능은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가 있긴 하지만 전면에 내세운 경우는 이번이 처음일 듯싶다.

예능의 경계 확장은 파일럿에서 주로 만나게 되는데 새로운 소재 발굴을 위한 노력의 결과로 보인다. 사회적 올바름까지 의도했건 아니건 이런 일련의 사례들은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편견 극복이 웃음을 매개로 시도될 수 있다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깊숙이 안착될 듯하니 말이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MBC, 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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