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났다’ 사랑하는 사람의 흔적이라도 잡고 싶은 간절함에 관하여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너희들은 어디로 날아가는가? - 아무 곳도 아닌 곳으로
누구로부터 떠나왔는가? - 모든 것들로부터
그들이 함께 있은 지 얼마나 되었는가? - 조금 아까부터
언제 그들은 헤어질 것인가? - 이제 곧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하나의 짧은 멈춤.

(베르톨트 브레히트, ‘사랑하는 사람들’ 중)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하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오직 옆에서 지켜보며 훈수하는 이들에게만 쉽다. 인간은 그 이별을 납득하지 못해 내세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고, 초월적인 존재를 향해 기도를 하고, 영매를 동원해 초혼을 하고, 시와 소설과 제의를 발명했다. MBC스페셜 ‘너를 만났다’의 주인공 장지성 씨도 마찬가지의 고통에 시달린다. 사랑하는 셋째 딸 나연을 희귀 난치병으로 손써볼 겨를도 없이 잃고 난 그는, 목걸이 팬던트 안에 딸의 유해를 담아 다니고 가끔씩 하늘을 향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지난 4년을 살았다.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한으로 살아가던 그는, VR과 컴퓨터그래픽 기술로 복원한 셋째 딸 나연과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내고 작별인사를 나눌 기회를 얻는다. 오랜 그리움에 비하면 찰나에 지나지 않을 순간이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모든 순간이 그러하지 않은가.



‘너를 만났다’가 방영된 직후 온라인은 반응이 극렬하게 갈렸다. 오열하며 봤다는 호평들의 반대편에는, 애끓는 아픔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며 제작진을 비난하거나, 나머지 아이들은 어떻게 하라고 아직까지 슬픔에 잠겨 사냐며 유족을 비난하는 혹평도 함께 있었다.

[TV삼분지계]는 아직 ‘너를 만났다’를 만나지 못하신 분들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더 겸허한 마음으로 먼저 본 사람들의 추천사를 전한다. 이승한 평론가는 최첨단 인공지능과 VR 기술이 향한 방향이 결국 필멸자의 숙명인 ‘영원한 이별’을 극복하고 싶었던 인류의 오랜 간절함을 달래는 방향이란 점에 감탄했고, 정석희 평론가는 온라인 상의 혹평이 영 일리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보다는 이와 같은 가슴 아픈 이별을 막으려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부터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무거운 마음을 전했다. 김선영 평론가는 VR이 아니더라도 이미 장지성 씨의 일상 속에 딸 나연이 녹아 있음을 지적하며, 사람의 고통을 관찰하거나 상품화하는 대신 이해하기 위해 ‘동행’하는 프로그램의 태도에 찬사를 보냈다.



◆ 소중한 사람과 작별하는 서로 다른 방식에 관하여

자식을 잃은 슬픔. 오죽하면 참척의 아픔이라 하겠나. 누군가는 기억이 흐려질까 두려워하고 그와 달리 누군가는 하루라도 빨리 슬픔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쓴다. 더 슬퍼서도 덜 슬퍼서도 아니다. 소중한 사람을 보내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다. 는 일곱 살 어린 나이에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 딸 나연이를 그리워하는 장지성 씨의 얘기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 삶과 죽음에 비교적 초연해진 나에게도 가슴이 무너질 사연이거늘 나연이 식구들은 오죽이나 애간장이 녹겠는가.



꿈에서 딸을 만났다는 나연이 아빠를 나연이 엄마는 부러워한다. 꿈에서라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장지성 씨. 나연이를 워낙 준비 없이 보냈기 때문이리라. 그 한 맺힌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자 <너를 만났다> 제작진이 VR로 나연이를 재현해냈다. 얼굴이 다르지 않으냐는 막내 소정 양의 반응처럼 VR이 구현한 나연이는 우리가 사진으로 영상으로 만난 나연이와 꽤 차이가 있었다. 그래도 나비 모양 팔랑팔랑 뛰어다니는 나연이에게 엄마는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아쉬운 구석은 있었지만 사무친 심경이 어느 정도 해소됐으리라 믿는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왜 떠난 아이를 보내지 못하고 붙들고 있느냐, 그게 과연 남은 세 아이의 정서에 도움이 되겠냐, 정신과 전문의의 조언은 받았느냐며 나무라는 이도 있다. 심지어 남의 슬픔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끔찍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나아가 휴먼 다큐멘터리 자체를 싸잡아 비난하기도 한다. 같은 걸 보고 이처럼 달리 받아들일 수 있구나, 새삼 느낀다. 물론 영 일리 없는 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VR이 끼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보다 우리가 먼저 해야 옳을 고민은 희귀 난치 질환의 보험 적용 문제가 아닐는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돌덩어리를 얹은 양 마음이 무겁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그 어떤 기술도 결국은 사람을 향해야 하는 법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과 비할 바 아니겠지만,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은 안다. 22년 전 형제를 먼저 보낸 나 역시 아직도 가끔씩 꿈에서 그를 보기 때문이다. 꿈에서 그는 아직도 살아있고, 어떻게 된 일이냐며 놀라는 내게 매번 사실 이러이러한 이유가 있어서 죽음을 가장해야 했다고 말한다. 그런 꿈을 꾸다가 깬 아침이면, 잠에서 깬 채 자리에 일어나지 못한다. 살아있는 가족들이 덜 소중해서 그런 것도, 지금의 삶에 충실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고통은 잊으려 노력한다고 완전히 잊히는 게 아니다.

컴퓨터그래픽과 인공지능으로 고인의 목소리와 얼굴, 행동을 흡사하게 복원해 낸 ‘너를 만났다’를 보며 처음 떠올린 것은 굿이었다. 굿은 전통적으로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화해를 주선하는 일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이 망자들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풀지 못한 원망, 건네지 못한 사과 같은 감정의 매듭들을 풀어내는 카타르시스야말로 굿의 본질이다. 실제로 죽은 자의 영혼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있다 해도 무속인이 그것을 초혼해낼 수 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방점이 어디까지나 무속인을 빌어서라도 산 사람을 위로하고 평안을 되찾게 하는 것에 찍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4년 전 희귀 난치병으로 세상을 떠난 일곱 살 난 셋째 딸 나연과 어머니 장지성 씨의 만남의 본질 또한 초혼굿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죽은 자의 살아생전 특징을 최대한 복원해 산 자로 하여금 죽음을 극복한 만남을 주선 해주고, 그를 통해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 수 있게 도와주는 일 아닌가.

사람들은 흔히 기술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그간 인류가 상상해본 적 없는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술도 인간이 만드는 것이라, 기술의 발전 방향은 언제나 ‘전에 없던 미래’의 방향보다는 ‘사람이 오랫동안 바라왔던 것’에 충실해지기 마련이다. 이번 특집에 쏟아지는 호평만큼이나 우려와 혹평도 많은 걸 알고 있지만, 이를 통해 장지성 씨와 그의 가족이 조금이라도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면, 이만큼 의미 있는 일도 또 없지 않을까. 결국 기술도 사람을 향해야 하는 법이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인간의 삶에 동행하는 카메라

2006년 첫 방송을 시작한 MBC <휴먼다큐 사랑>은 국내 휴먼 다큐멘터리의 새역사를 쓴 프로그램이다.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희귀하고 가슴 아팠지만, 프로그램은 이를 ‘비극적으로’ 조명하지 않았다. 인물들의 삶에 개입해서 극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곁에 조용히 머무르며 동행했다. 그 과정에서 고통은 극복의 대상이라기보다 함께 안고 지내야 할 삶의 일부로 그려지고, 인물들의 사연은 단순한 연민의 대상이 아닌 모두의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휴먼다큐 사랑>의 태도는 우리가 ‘타인의 삶과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진지한 답을 보여주었다.

에서 인상 깊었던 점 역시 이 같은 휴먼 다큐멘터리의 윤리적 질문이다. 어린 딸을 속절없이 떠나보낸 엄마가 가상현실 속에서 아이를 다시 만난다는 사연만 보면 그 어떤 휴먼 다큐멘터리 소재보다도 ‘극적’이다. 실제로 가장 많은 관심을 이끌어낸 장면은 VR로 구현된 나연이와 엄마 장지성 씨가 마주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방송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한 이 장면에서 프로그램은 가상세계가 얼마나 리얼하게 재현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가상세계 안에 있는 지성 씨의 시점과 그 바깥으로 빠져나와 그녀를 비추는 카메라를 통해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인지시키려 한다. 촬영을 마친 지성 씨 역시 “우리 나연이랑은 많이 다른 느낌”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지성 씨는 그 상황에 완전히 몰입했다. 나연이의 질문에 답하고, 만나면 나누고 싶었던 말을 계속해서 건넸다. 지켜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이 프로그램을 보고 ‘VR 기술이 얼마나 실제 같았는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떠나보낸 혹은 지금 곁에 있는 가족이 생각난다’는 반응을 보인 것은, 방송 내내 나연이를 향한 가족의 그리움에 ‘동행’했던 프로그램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걔는 어디를 가도 (나연이와) 함께 동행”한다던 지성 씨 모친의 말처럼, 나연이의 모습은 이미 가족의 자연스러운 일상 안에 녹아 있다. 운전을 하는 지성 씨의 모습을 비추다가도 나연이의 사진, 영상 등이 끼어드는, 기억을 닮은 편집을 통해 삶 속에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그리움이 그대로 전달된다. <너를 만났다>는 그렇게 기술 구현 이전에 인간의 본질에 먼저 가 닿는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사진·영상=MBC,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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