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아카데미 새 역사 쓴 ‘기생충’, 이래서 더 의미 있다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 등 4관왕의 쾌거를 이뤘다. 강력한 경쟁작이었던 <1917>이 촬영상, 시각효과상, 음향효과상을 받았으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남우조연상과 미술상을, <조커>가 남우주연상과 음악상, <포드 V 페라리>는 편집상과 음향편집상을 받았다. <결혼 이야기>가 여우조연상, <작은 아씨들>은 의상상을 받았지만 마틴 스콜세지의 <아이리시맨>은 아무 상도 받지 못했다. 이로서 스콜세지는 10편을 후보에 올렸지만 상을 하나도 받지 못한 영화를 두 편 감독한 기록을 세웠다. (이전 영화는 <갱스 오브 뉴욕>이다.)

르네 젤뤼거 (<주디>), 호아킨 피닉스(<조커>), 로라 던 (<결혼 이야기>), 브래드 피트(<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연기상은 예상에서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고, <기생충>의 선전은 모두가 기대했지만 결과는 기대이상이라는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누가 보아도 월등한 영화였던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를 밀어내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린 북>이 작품상을 받았던 지난해의 결과에 대한 반발로 해석한다. 하지만 인기투표의 동기와 심리를 분석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일이다.



<기생충>은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작품상을 받은 외국어 영화이며, <잃어버린 주말>, <마티>에 이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모두 받은 세 번째 영화이다. 여기서 진짜로 중요한 것은 첫 번째이다. 그리고 이는 아카데미상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연결된다. 도대체 아카데미상은 무엇인가. 로컬 영화상인가, 국제 영화제인가?

미국 극우파의 주장대로 아카데미상은 원래 할리우드 영화에게만 주어지는 것이고 최근 외국어 영화들이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리버럴의 음모라고 우긴다면 모든 게 단순해질 것이다. 하지만 오스카의 역사는 보기보다 단순하지는 않다. 역사를 조금만 검토해보아도 아카데미는 순수한 할리우드 영화의 잔치였던 적이 없었다. 아니, 일단 이들은 지금까지 꾸준히 상을 받아간 영국 영화들을 잊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아카데미는 부커상처럼 영어권 영화에게만 상을 주는 행사였는가? 꼭 그렇지도 않다.



작품상을 보자. 최초로 외국어 영화가 오스카 작품상에 오른 건 1938년으로 그 때 작품은 장 르누아르의 <위대한 환상>이었다. 그 뒤로 , <이민>, <외침과 속삭임>, <일 포스티노>, <인생은 아름다워>, <와호장룡>,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아모르>, <로마>, <기생충>이 뒤를 이었다.

부분상으로 넘어간다면 리스트는 조금 더 길어진다. 영어가 아닌 연기로 아카데미상 연기상을 받은 배우는 모두 12명이다. 이 중 수화 연기를 제외하면 7명, 순수하게 외국어 영화에서 외국어 연기로 상을 받은 배우는 세 명이다. 소피아 로렌(<두 여인>), 로베르토 베니니 (<인생은 아름다워>), 마리옹 코티아르 (<라 비앙 로즈>). 그 이외에도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아누크 에메, 리브 울만, 이자벨 아자니, 잔-카를로 자니니, 막스 폰 시도프, 제라르 드파르디외와 같은 배우들이 후보지명을 받았다.



감독상으로 넘어간다면 페데리코 펠리니가 <달콤한 인생>으로 후보에 오른 게 1961년. 그 이후로 피에트로 제르미, 테시가하라 히로시, 클로드 를르쉬, 질로 폰테코르보, 코스타 가브라스, 얀 트롤, 프랑수아 트뤼포, 리나 베르트뮐러, 볼프강 페테르센, 잉마르 베리만, 구로사와 아키라 등등이 뒤를 잇는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카데미는 꾸준히 외국어 영화들을 본상 후보에 올렸다. 단지 지금까지 이들 영화를 일종의 잔칫집의 손님처럼 여기며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소피아 로렌이나 마리옹 코티아르와 같은 배우들이 외국어로 연기해서 상을 받았다면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을 받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단지 ‘외국어 영화에게 작품상을 주는 건 왠지 아닌 거 같다’의 막연한 정서가 막고 있었던 것뿐이다. 이 상황의 마지막 희생자가 <로마>였고 그 이후로 어떻게 된 것인지 장벽이 깨진 것이다.



그렇다면 아카데미상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는 전문가와 대중이 고민하고 토론해서 정답을 찾아야 할 문제인가? 그런 귀찮은 짓은 할 필요가 없다. 아카데미 출품 조건은 비교적 명쾌하게 정의되어 있다. 공식 페이지에 들어가 보라. 로스앤젤레스 영화관에서 일정기간 이상 상영되었고 영어 대사거나 영어 자막이 달린 영화라면 대체로 자격이 있다. 다시 말해 오스카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상영된 영화들에게 주는 상이다.

이같은 규정은 우스꽝스럽고 어색하고 이상해 보인다. 이 괴상함이 지금까지 그리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던 것은 미국 영화업계 사람들의 관심이 거의 전적으로 할리우드 영화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 분위기가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금이 가기 시작했고 결국 그 때문에 미국 영화의 축제라는 아카데미의 이미지는 조금씩 흐릿해진다.



지금 미국 영화 업계에서는 <기생충>의 수상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모두가 이 영화를 좋아할 수는 없지만 지난해의 <그린 북>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작품임은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다. 올해 대부분의 작품상 후보작들이 옛날 남자들의 남자스러운 일을 다룬 과거 배경의 영화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충분한 현재성,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보편성을 갖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 영화계의 저명인사들이 한국에서 온 영화인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는 그림은 할리우드 주도 영화계가 전세계에 보내는 호소력 강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는 여전히 여성과 비백인 영화인에게 차별적이었던 후보 지명에 대한 그럴싸한 알리바이이자 변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기생충>은 역사를 만들었고 역사를 목격하는 건 즐겁고 흥분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건 아카데미가 걱정할 일도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과거의 정의에 갇히지 않으며 늘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그 그림은 늘 지저분하고 불분명하며 그것이 정상이다. 그 안에서 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키워내고 찾으면 그만이다. 쓸데없는 ‘뻘짓’을 하지 않는다면, 아마 그 상황 속에서 우리는 더 큰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지금은 밤새 술을 마시겠다던 봉준호 감독과 함께 축제를 즐기면 그만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MBC, TV조선, CJ엔터테인먼트, 이하늬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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