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시착’, 손예진·현빈이 보여주는 로맨스의 비무장지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의외로 박지은 작가의 드라마는 주연배우의 역량이 상당히 중요하다. KBS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SBS <별에서 온 그대>를 믹스앤매치한 것이 그녀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박지은 작가의 드라마는 유쾌한 주말극과 판타지 성향 미니시리즈의 재미를 동시에 선사한다. 단, 단점도 있다. 각기 다른 성질의 이질적 드라마의 연결선이 매끄럽지 않다. 이야기의 재봉선이 때론 프로답지 않다는 것.

박지은표 드라마의 탁월한 주인공들은 그 매끄럽지 않은 부분의 허점을 매력으로 커버한다. <별에서 온 그대>의 전지현과 김수현은 그런 면에서 성공적인 캐스팅이었다. 톱 여배우와 외계인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주인공들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SBS <푸른 바다의 전설>은 아쉬웠다. 전작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를 통해 보여준 전지현의 매력을 인어에 녹였지만, 글쎄, 이 이야기는 <별에서 온 그대>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다. 어쩌면 작가가 전작에서 보여준 화려한 필력을 다시 우린 느낌이 들기도 했다.



박지은 작가가 야심차게 내놓은 tvN <사랑의 불시착> 역시 판타지 세계를 기반으로 한 사랑이야기다. 북한이 주요 배경이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사랑의 불시착>의 배경은 휴전선 너머 별나라나 용궁에 더 가깝다. 그리고 이 드라마 또한 박지은 작가의 작품답게 주말드라마 같은 재치 있는 수다와 북한 장교 리정혁(현빈)과 사연 많은 재벌가 자제 윤세리(손예진)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흘러간다.

박지은 작가는 영리하게도 북한의 세계를 반공코드나 남북화합 코드가 아닌 유머코드와 로미오와 줄리엣 류의 이루어질 수 없는 로맨스 코드로 이용한다. 이 부분에서 작가의 재치는 상당히 빼어나다.

하지만 <사랑의 불시착>이 아무리 판타지물이라도 <별에서 온 그대>나 <푸른 바다의 전설>와는 결이 다르다. 휴전선으로 가로막혀 있지만 북한은 우리와 가까이 있는 곳이고 리정혁도 외계인은 아니다. 윤세리 역시 재벌가의 자제지만 전지현이 연기한 인어나 톱 여배우보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나 <내조의 여왕> 속 김남주 캐릭터들과 좀 더 뿌리가 닿아 있다. 전작보다 어느 정도 현실감이 더 확보되어야 시청자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박지은 작가는 이 몫의 많은 부분을 이번에도 배우의 매력에 의존한다. 그리고 손예진과 현빈은 <사랑의 불시착>에서 톱 클래스 주인공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손예진은 우선 <사랑의 불시착>의 많은 허점들을 능동적인 연기로 커버한다. <사랑의 불시착>은 여주인공을 통해 유머, 로맨스, 스릴러 등 복잡한 요소들을 빠르게 전개시킨다. 하지만 그 연결고리가 그렇게 납득이 가는 편은 아니다.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라면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의 작품성을 요하는 미니시리즈에서는 조금 태만하게 느껴지는 전략이다.

손예진은 윤세리를 통해 이 널뛰는 장면들을 설득력 있는 장면으로 만들어낸다. 그녀가 연기했던 각기 다른 장르의 영화 속 캐릭터들의 특징을 순식간에 바꿔내는 변검술사 같다. 손예진은 능청스럽게 북한 주민들과 웃긴 장면을 연기하다가 몇 분 후에는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돌변한다. 리정혁을 만나 눈가에 그렁그렁 고인 눈물로 한순간에 로맨스와 멜로를 만들어내는 그녀의 감정 연기는 놀랍다. 전지현은 <별에서 온 그대>와 <푸른 바다의 전설>의 허공에 떠 있는 비현실적 주인공에 존재감을 만들어냈다. 반면 손예진은 현실에 없을 법한 로맨스에 로맨틱한 감정선을 불어넣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다만 그 남자 리정혁이 현빈이 아니었다면 이 둘의 로맨스는 이렇게까지 살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현빈은 리정혁을 통해 다시 MBC <내 이름은 김삼순>과 <아일랜드>의 그 남자로 돌아온다. 무뚝뚝하지만 모닥불처럼 로맨틱하고, 화려하게 고백하지 않아도 눈빛과 허한 표정으로 여주인공의 마음을 흔드는 그런 남자주인공 캐릭터 말이다. 그 때문에 현빈의 북한 사투리는 <사랑의 불시착>에서 웃기지 않고 리정혁과 딱 어울리게 로맨틱하다. 그리고 현빈은 데뷔 시절과 달리, 이제는 드라마 안에서 담담한 얼굴에 남자의 로맨스를 담을 줄 아는 배우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남자주인공은 많지 않다. 적당히 세련된 느낌에 살짝 투박한 맛이 감도는 현빈의 남성성은 로맨스물에 굉장한 강점이다.

사실 <사랑의 불시착>에서 손예진과 현빈의 로맨스는 흐름상 너무 전형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로맨스 구도가 빤하고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아름답고 잘생기고 연기까지 탁월한 배우들이 그려내는 로맨스는 어쨌든 힘이 있다. 우리 마음속에 울타리 친 이성적인 경계선들을 무장해제 시키고 로맨스의 비무장지대로 이끌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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