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가 야구를 빌어 전한 약자로서 잘 싸우는 법

[엔터미디어=정덕현] “그 날 드림즈는 7연패 중이었는데 하필 타이탄즈 투수가 지금 강두기 선수 같은 국가대표 1선발 최소원 선수를 내보낸 거예요. 모든 팀들이 드림즈한테는 3승을 따내려고 오히려 좋은 선발 투수들을 다 내보냈거든요.” 텅빈 야구경기장에서 이세영(박은빈) 운영팀장은 이제 드림즈를 떠나게 된 백승수(남궁민) 단장에게 자신이 어렸을 때 아빠와 드림즈 경기를 보러오던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야구 이야기면서 동시에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약자에게 더 강한 상대들이 몰리게 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 백승수는 “약체팀을 확실하게 이기는 건 비겁하긴 해도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그 현실을 수긍했다. 하지만 이세영이 백승수에게 하려는 이야기는 그 현실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뒤에서 아저씨들은 감독 자르라고 막 소리도 지르고 정말 난리였죠. 근데 그때 엄상구 선수가 3점짜리 홈런을 쳤어요. 감독 자르라고 욕하던 아저씨들도 우리 아빠도 홈런 하나에 그 자리에서 방방 뛰면서 울었어요. 다 큰 어른들이.” 그 이야기에 백승수는 한 마디를 더했다. “좋은 경기였네요.”

아마도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가 종영을 맞아 하고픈 이야기가 바로 이 ‘좋은 경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해체될 위기에 놓였던 드림즈는 백승수와 이세영의 노력으로 IT회사 PF에 새 둥지를 틀게 됐다. PF 대표 이제훈은 백승수가 요구한 전원 고용 승계와 연고지 유지 그리고 팀명을 드림즈로 가져간다는데 모두 합의했지만, 보수적인 이사진들 때문에 백승수까지 함께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결국 드림즈는 살아났지만 백승수는 떠나게 됐다.



백승수는 이렇게 떠나는 일이 자신에게는 “익숙한 일”이지만, 자신이 “떠나는 곳이 폐허가 되지 않은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지켜낸 것만으로도 힘이 많이 날 거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스토브리그>가 백승수라는 리더를 통해 우리에게 전한 메시지였다. 승패보다 ‘좋은 경기’를 했다는 것.

<스토브리그>는 섣부른 판타지를 말하기보다는 현실적이며 능동적인 선택을 이야기했다. 즉 자본과 권력의 힘이 팀 하나를 좌지우지하는 게 현실이지만, 그 현실의 약자의 위치에 있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굴복하지 말라는 것. 말 잘 듣는다고 바뀌는 건 없다는 것. 결국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잘못된 것들과 맞서야 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 야구로 표현하면 단지 승패가 아닌 ‘좋은 경기’를 해야 한다고 <스토브리그>는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현실에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좋은 경기를 하다보면 좋은 결과도 온다는 걸 드림즈의 2020년 코리안시리즈 진출이라는 해피엔딩에 담았다. 또한 백승수 단장이 드림즈를 나가 또 다른 종목에 도전한다는 사실은 비록 어느 한 분야의 도전에서 물러나게 된다 하더라도 좋은 경기를 하는 사람은 계속 또 다른 분야에 도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러한 메시지는 <스토브리그>라는 드라마가 거둔 도전과 그 성과의 스토리로도 충분히 입증되었다. 애초 야구 소재에 신인작가의 드라마가 이만한 성과를 서둘 것이라 그 누가 생각했을까. 마치 이 드라마는 드림즈 같았다. 하지만 꼼꼼한 취재를 통한 리얼리티와 백승수 같은 판타지 캐릭터를 통한 시원한 한방의 스토리텔링은 시청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이신화 작가가 드라마를 런칭하기 위한 저만의 ‘스토브리그’를 해왔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을 게다.



무엇보다 이신화 작가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건 야구 같은 특정 소재를 가져오면서도 이를 보편적인 오피스드라마나 우리네 삶의 이야기로 은유하고 확장하는 필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야구를 흔히 인생에 비유하지만, 이신화 작가는 야구를 통해 약자들이라고 해도 잘 싸울 수 있고 또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했다.

‘강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서로 도울 거니까요.’ 드라마 엔딩과 함께 마지막으로 써진 이 한 줄의 자막은 그래서 드림즈에 대한 것이면서, 이 드라마에 대한 것이며 나아가 힘겨워도 일상을 열심히 살아나며 버텨내고 있는 우리들에 대한 위로와 지지가 담겨 있었다. 약하다 해도 좋은 경기를 한다면 많은 이들이 지지하고 도울 거라는.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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