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클라쓰’엔 젊은 세대들이 바라는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JTBC 금토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꾸준한 우상향 시청률 그래프는 주식시장의 전형적인 우량주의 차트를 보는 듯하다. 비유만이 아니다. 5%로 시작해 반환점을 찍은 8회에서는 그 두 배가 훌쩍 넘는 13%대에 근접했다. SBS <스토브리그>를 비롯해 최근 성공한 드라마들이 보였던 시청률 그래프와 비슷하다. 더욱 놀라운 점은 8년차 장수 예능이자 지난 3년간 독보적인 넘버1 예능인 <나 혼자 산다>와 맞붙어 거둔 성적이란 점이다. 게다가 2월에 접어들어서부터 수도권 시청률 격차는 조금씩 더 벌어지고 있다.

<이태원 클라쓰>의 힘은 빠른 속도감에 있다. 메탈처럼 스피디하게 전개되며 어설픈 블루스 타임은 없다. 갈등과 해소와 또 다른 갈등 사이의 파동은 좁고 얕다. 이야기는 현재 30살 언저리의 주인공들의 고등학생 시절부터 시작되지만 몇 년씩 시간을 건너 띄는 압축적인 설명방식으로 전혀 어색하지 않게 전개한다. 인물과 사건의 연결 방식, 과거의 사건과 현재를 잇는 스토리텔링 방식도 시간의 순서보다 사건이나 장면의 임팩트 중심으로 자유롭게 편집해 시간차를 영리하게 줄인다. 스토리를 가늠할 수 있는 원작 웹툰의 존재는 걸림돌이 아니라 요즘 시대에 걸맞은 호흡의 드라마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원작자가 직접 드라마 각본을 직접 담당한 점이 이런 스피디한 호흡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해석된다.



스피디하게 전개되어도 어색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이태원이란 특정 지역의 분위기를 콘셉트로 내놓은 것과 별개로 지극히 익숙한 갈등 구조와 정의구현 스토리를 다루기 때문이다. 가진 자와 세상의 부당함에 대항해 정의롭고 바른 길을 추구하는 ‘언더독의 역전극’이라는 굉장히 단순명료한 전형적인 이야기다. 문화용광로이자 요식업의 격전지 이태원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포차’라는 극히 평이한 업장이 무대다. 그럼에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이태원 클라쓰>에 대한 호응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 이유는 우선 캐스팅에서 찾을 수 있다. 드라마 <쌈, 마이웨이> 등 열혈청춘의 에너지가 전매특허인 배우 박서준이 그 장기를 살려 웹툰 주인공 박새로이의 ‘단단함’을 그대로 옮겨왔다. 안정되고 폭 넓은 연기력은 물론이고 날이 갈수록 아름다움을 더 하고 있는 권나라는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개성 넘치는 매력이 돋보이는 캐릭터를 완성한 김다미의 발견을 비롯해 배우들 모두 확실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특히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매번 놀라움을 선사하는 유재명의 어두운 카리스마는 자칫 유치할 수도 있을 갈등 구도에 긴장감을 더해준다.



젊은 세대 시청자들이 <이태원 클라쓰>에 열광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오수아(권나라)말 그대로 ‘새로이는 거짓말을 안 하기’ 때문이다. 박새로이는 출신 그대로 만화적 인물이다. 아버지가 정해준 가훈 ‘소신 있게 살자’를 삶의 기준으로 정하고 살다보니 인생이 심하게 꼬였다. 누군가는 오지랖이라고 하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 그렇게 발생하는 불이익이 있더라도 기꺼이 감내한다. 물론 몇 차례의 타협 기회가 있었으나 그 순간, 순간들이 쌓여 사람을 바뀌게 만드는 것이라며 단호히 거절한다. 대신 자신이 믿는 방법으로 무기를 고르고 싸우며 버틴다. 목표가 확고함으로 그 어떤 파도에도 지치거나 풀이 죽지 않는다.

박새로이의 자존감은 특히 새겨볼만하다. 상황과 처지가 어떻든 타인과 세상을 욕하고 탓하며 머무르는 대신 그 누구보다 자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단단한 심지, 뚝심 있는 캐릭터인 자기 자신을 위한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다 보면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든다. 의지하고 싶은 어른의 존재,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할 말하고 사는 통쾌함, 그럼에도 대가를 치루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대한 열망이 박새로이에게 투영된다.



그래서 박새로이는 어른의 길, 좋은 리더에 대한 표본이 된다. 신뢰와 신념을 지키며 살아도 다치지 않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이용하지 않으면서 성장하고 자신의 것을 지킬 수 있는 사회, 잘못에는 사과할 줄 아는 염치, 강한 것이나 장사의 성공은 사람 사이의 신뢰에서 나온다는 인본주의, 타인을 자신에게 맞추고 이용하거나 바꾸려 들기보다 더디더라도 이해해보고 함께 걷고자 하는 마음가짐은 꼰대와의 완벽한 대척점이다.

그리고 여기에 올바름이나 판타지만으로 정의할 수 없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반영되어 있다. 국내 최대 요식업 기업의 회장(유재명)은 박새로이를 무너뜨리기 위해 이태원 단밤의 건물을 매수하고 임대차보호법의 맹점을 이용해 쫓아내려 한다. 그러자 새로이는 주주로서 힘을 키우려던 계획을 멈추고 주식 투자금을 회수해 경리단의 작은 건물을 산다. 장 회장의 훼방과 임차인의 불안과 설움에서부터 한방에 해방되고, 단밤 식구들의 생태계를 보존한다. 판타지와 이상적인 삶의 가치를 제안을 넘어 ‘실질적인 대안’ 제시다. 어떤 풍파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울타리 안쪽을 지켜낼 수 있는 자유,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자립은 최근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불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와 맞닿은 가치이자 로망이다.



<이태원 클라쓰>는 이처럼 매력적인 배우들의 열연과 팍팍한 리얼리티와 통쾌한 판타지가 뒤섞인 이태원에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시대정신을 담아냈다. 단순한 갈등 구조, 익숙한 서사, 이태원의 밤거리란 화려함 속을 헤집고 들어가 찾아낸 시대정신이란 본질이 스토리가 드러나 있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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