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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라도’ 여전히 강렬한 전도연, 썩 어울리지 않는 정우성
기사입력 :[ 2020-02-27 15:21 ]


‘지푸라기라도’ 원작과 달라서 더욱 음미할만한 돈 가방의 주인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일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는 나름 독특한 플롯을 갖는다. 챕터로 나누어 전개되고, 시간의 선형적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 서로 독립적인 듯 흘러가는 이야기가 후반부에서 맞물리는데, 특별한 반전은 없지만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데다, 나름 대칭적인 면도 있어서 흥미가 유발된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누가 주인공인지 알 수 없는 다중 플롯이다. 정우성, 배성우, 정만식, 윤여정, 진경, 신현빈 등이 무더기로 출연하는 와중에 중반부터 등장하는 전도연의 역할이 가장 강렬하다.



◆ 돈 가방, 빚, 평택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사우나 탈의실을 청소하던 종업원 중만(배성우)이 락커에 든 돈가방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영화는 그가 처한 곤궁한 상황들을 보여주지만, 돈 가방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말을 아낀다. 다른 인물들의 에피소드들이 죽 등장하고 나서야 비로소 돈 가방을 둘러싼 맥락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평택항 출입국 공무원인 태영(정우성)은 애인이 빚을 지고 사라지는 바람에 사채업자에게 협박을 당한다. 빚으로 파탄에 이른 또 다른 커플이 있다. 여자(신현빈)은 유흥업소에 나가고, 남자는 이게 다 네 탓이라며 여자를 두들겨 팬다. 태영은 돈이 될 만한 호구를 기다리다 형사를 불러들이고, 커플의 주위에선 엉뚱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영화에선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나지만, 괴상하진 않다. 영화의 시작부터 흘러나오는 뉴스 소리들이 우리 곁에서 갖가지 사건들이 다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암시하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들어도 그러려니 하지 않던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특히 평택이라는 지역이 지닌 불안정성을 극대화해서 보여준다. 꽤 넓고 오래된 지역인데다, 상당히 번화한 유흥지도 있고, 평택역과 평택항이 있어서 외부와의 접점도 크다. 그중에서도 평택항이 꽤 중요하게 그려진다. 사고를 치고 밀항하려는 사람들이나 중국인 입국자들이 끊임없이 들고 난다. 카메라는 사우나, 룸살롱, 아파트, 집, 평택항 등을 비추지만, 어느 곳이든 안착되어 있다는 느낌이 없다. 잠시 들렸거나 곧 떠나려는 임시방편의 장소 같다.



◆ 호구, 뒤통수

“이 판에서 누가 호구인줄 모르겠으면, 내가 바로 호구다.” 라는 말이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속 인물들은 다들 적당히 궁지에 몰려 있고, 적당히 지쳐 있다. 이들은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현실을 타개하려 애쓴다. 영화는 이들이 각자의 결핍과 욕망에 의해 움직이며, 서로 맞물리며 사태가 예기치 못하게 흘러가는 것을 보여준다. 인물들은 선악으로 나뉘지 않으며, 그때그때 뒤통수를 치는 자와 뒤통수를 맞는 자로 자리바꿈을 한다.



“큰돈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믿어서도 안 되고.” 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쓰이는데, 어쩌면 이 말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일 것이다. 영화는 앞뒤로 기묘한 반복과 차이를 만들어내며, 돈 가방이 최종적으로 누군가의 손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여준다. 마치 운명처럼 혹은 보상처럼 그의 손에 들어가는 결말은 원작과 달라서 더욱 음미할만하다.



아쉬운 점도 있다. 배우들의 활용이 다소 과하고 오용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윤여정의 배역은 배우의 품에 비해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는 역할이었다. 정우성도 배역과 썩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신현빈은 기대이상의 호연을 보여주었으며, 전도연은 언제나 그렇듯이 최고의 긴장과 집중을 만들어낸다. <돌로레스 클레이븐><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처럼 여성 연대를 보여 주는가 했지만, 반전을 만들어낸다. 그의 뜨악한 배신과 (하필이면 그런 장소에서 그런 식으로 맞이한) 최후는 여성 관객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에 충분하다.



그나마 최후의 승자가 누구인지에서 위안을 찾아야할까. 영화는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열심히 일했다”는 중만의 연설을 길게 담는다. 사실이다. 노동계급 남성인 그는 계속 일하고 있다. 그러나 중만보다 더 묵묵히 일하며 더 억울한 핍박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있다. 영화는 결말을 통해 가장 억압되어 있고 가장 비가시적인 존재를 환기시킨다. 하지만 여전히 욕망하는 여자는 처벌되고, 헌신하는 여자는 보상받는 것으로 읽히는 찜찜함은 어쩔 수 없다. 그게 최선이었을까.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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