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를 품은 달’, 삼포세대의 열광을 받는 이유

[엔터미디어=배국남의 눈] “잊어 달라 하였느냐 잊어주길 바라느냐 미안하구나 잊으려 하였으나 너를 잊지 못하였다” “내가 어찌 너를 잊을 수 있겠느냐” “모두가 세자의 사람이 되어도 좋다 허연우, 너만 나의 사람이 되어준다면” “그대와 그대의 가문은 원하는 것은 다 가질 것이오. 허나 나의 마음은 갖지 못합니다. 절대로 가질 수 없을 것이오”…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애절하게 그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런 화면 속 모습에 넋을 놓고 있다. 바로 편의점에서 알바 하는 여대생은 조그마한 손바닥 위에 놓인 휴대폰에 눈을 떼지 못한다. 손님이 물건 값을 지불하려고 카운터에 물건을 놓아도 그녀의 눈은 휴대폰 액정 화면에 집중돼 있다. 그리고 손님에게서 물건 값을 받고는 곧바로 다시 휴대폰 화면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눈길을 준다. 알바 하는 여대생의 눈을 사로잡은 조그마한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것은 바로 MBC 수목사극 ‘해를 품은 달’이다.

조선 시대 가상의 왕 이훤과 비밀 속에 쌓인 무녀와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정은궐의 동명소설을 드라마화한 ‘해를 품은 달’은 지난 1월 4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가파른 시청률 상승곡선을 이어가고 있다.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전환된 뒤에도 시청 열기는 더욱 뜨거워져 이제 ‘해품달’ 신드롬이 일고 있다.

왕세자와 왕세자비로 만난 이훤과 연우의 파란만장한 역정과 운명을 뛰어넘는 애절한 사랑과 연우를 사랑하면서도 해바라기처럼 지켜봐야하는 이훤의 형, 양명의 그림자 사랑이 절절이 녹아든‘해품달’은 화제의 진원지이자 드라마 트렌드의 선봉이 되고 있다.

완벽한 픽션사극인 ‘해품달’에 대한 열광의 원인은 원작의 유명성, 완성도 높은 극본, 탄탄한 내러티브, 감각적인 영상, 아역 및 성인 연기자들의 빼어난 캐릭터 소화력과 연기력 , 픽션 사극으로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극성과 갈등의 자연스러운 구사, 애절한 멜로라인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사랑도, 결혼도, 그리고 자식도 포기해야하는 삼포세대의 비루한 현실과 조건적인 사랑이 대세이고 일회용 인스턴트 사랑이 난무한 시대 역시 ‘해품달’에 몰입하게 만드는 원인은 아닐까.

‘고용 없는 성장’, ‘1%의 부자들의 끝없는 탐욕’, ‘88만원 세대의 양산’, ‘실업과 비정규직의 홍수’라는 단어와 수식어가 너무나 익숙한 시대다. 수많은 사람들이 등록금 대출을 해 겨우 학교를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어 실업자와 88만원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빈부의 양극화는 극단을 향해 치닫는 2012년 대한민국 현실에서 사랑도, 결혼도, 그리고 자식도 포기해야하는 삼포세대가 양산되고 있다. 20~30대 10명중 4명이 자신은 삼포세대라고 인식하고 있을 정도다. 고단한 삶과 비루한 현실이 우리를 휘감는다.

사랑 또한 어떠한가. 사람 아닌 자본이 사랑의 필요충분 조건이 돼버린 시대다. 사랑은 이제 물적 토대라는 외형적 조건의 만남의 또 다른 말이 된지 오래다. 수많은 사람들이 외모, 재산, 학벌, 직업, 연봉 등 스펙으로 대변되는 조건들이 남녀 간의 만남에서 우선시 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 힘든 상황과 현실, 운명을 뛰어넘는 진정한 사랑은 이제 박제된 신화가 된지 오래 이고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조차 추방될 위기에 놓여 있다.



삼포세대로 상징되는 고단한 현실과 물화된 사랑이 일상화된 상황이 삼포세대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을 역경과 운명마저 뛰어넘는 한 여자를 향한 그리고 한 남자를 향한 지순한 사랑을 그리는 ‘해품달’에 빠지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실이 비루하고 물화된 사랑이 대세이지만 사람들 가슴속에는 지순하고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갈망과 욕망은 여전하다. 아니 조건적인 사랑이 넘치면 넘쳐날수록 현실이 힘들면 힘들수록 순수한 사랑에 대한 갈망과 욕망은 더욱 더 커진다. 이러한 욕망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잠시나마 현실의 참담함과 조건적인 사랑의 참을 수 없는 속물성을 벗어나고자하는 열망이 ‘해품달’에 열광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천일의 약속’처럼 지순하고 진정한 사랑을 그리는 드라마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현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여서 시청자들은 곧 바로 우리를 둘러싼 현실과 드라마 속 상황을 끊임없이 비교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힘든 현실을, 그리고 돈으로 환산되는 사랑을 목도하며 드라마에 대리만족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동일시도 하지 못한다.

반면 ‘해를 품은 달’은 현실과 극중 상황을 비교하는 의식을 무력화시켜 드라마적 상황에 완전하게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사극의 외피를 입어 수용자에게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고단한 현실에서도 진정한 사랑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켜주며 대리만족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비록 시급 4천~5천원의 편의점 알바를 하는 여대생의 현실은 고달프지만 ‘해품달’을 보는 순간만은 알바의 고통도, 1년에 1000만원하는 등록금 걱정도 잠시 접어두고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 물론 ‘해품달’이 끝난 뒤 돌아온 현실은 한파주의보가 내린 칼바람의 겨울 날씨보다 더 차갑지만 말이다.

칼럼니스트 배국남 knbae@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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