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김서형이 그려낸 어른들의 슬픈 성장드라마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SBS 월화드라마 <아무도 모른다>는 사람들의 관심을 오랫동안 모았던 기대작이다. 본디 지난해 가을에 방영될 예정이었던 이 작품은 방영 7개월 전부터 촬영을 시작했고, 오랜 준비기간은 자연스레 웰메이드 드라마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책임감을 상기시키는 어두운 수사 스릴러라는 특징은 같은 장르의 걸작이었던 MBC <붉은 달 푸른 해>(2018-2019)를 연상케 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연기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배역을 만나지 못했던 김서형이 제1주연을 맡아 형사로 분한다는 점에서, 그를 응원하던 수많은 팬들의 기대치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기대치가 너무 높으면 충족시키기 어려운 법인데도, 첫 주 방영 후 <아무도 모른다>를 둘러싼 시청 평들은 놀랄 만큼 호평 일색이다.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석희 평론가는 2회만에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전개를 펼쳐 보인 작품의 속도에 감탄하면서, 그 속도에도 작품이 흔들리지 않은 비결로 중심을 탄탄히 잡은 김서형의 연기를 상찬했다. 김선영 평론가는 <아무도 모른다>를 단순한 수사 스릴러를 넘어 제 아픔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어른들이 다음 세대와 자기 자신을 구원해야 하는 과제를 해 나가는 성장 드라마라고 평했다. 이승한 평론가는 아무도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보지 않아 원자화 된 시대에 썩 필요한 이야기가 도착했다는 호평을 남겼다.



◆ 김서형이 그려낸 책임감의 무게

“모르면서, 아무 것도 모르잖아요.” 은호(안지호)는 어린 시절부터 믿고 의지해온 영진(김서형)에게 원망어린 눈빛을 보냈다. 불과 얼마 전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왜 내가 모르겠느냐’ 단언해준 영진이 자신의 일에 도무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영진이 처한 상황이 은호의 심경을 헤아리기 어려웠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러나 우리는 은호가 어떤 일에 휘말렸는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단짝 친구 수정(김시은)의 비참한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경찰이 되어 사건을 쫓아온 영진. 겨우 범인을 잡았다고 여겼는데 사건은 끝이 아니었다. 과거에는 수정의 전화를 받지 않아서, 이번에는 은호의 구조 사인을 허투루 흘려보내서, 그래서 영진은 몹시 괴롭다. 해결은커녕 또 다른 죄책감이 더해진 셈이다. 살다보면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모르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때 그러지만 않았더라면, 후회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자책 자체를 않는 이도 있고 쉽게 잊는 이도 있으나 영진의 책임감은 가히 대한민국 톱이다.



2회 안에 벌써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났다. 한 치 앞을 가늠키 어려운 빠른 전개다. 속도감 있는 스토리도 흥미롭고 배우들의 불꽃 튀는 열연도 볼만하다. 김서형의 연기는 그야말로 명불허전, 은호를 보듬을 때의 다정함과 연쇄 살인범 서상원(강신일)을 대할 때의 피를 토하는 듯한 분노, 수정 어머니(서이숙)을 대할 때의 처절한 슬픔이 몇 분 간격으로 교차하는 통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영진의 어린 시절을 맡은 김새론과 성인역 김서형의 매끄러운 연결도 돋보인다. 아무리 김서형의 연기가 빼어나도 아역 분량이 흔들렸다면 몰입감이 떨어졌을 테니까. <낭만닥터 김사부 2>가 떠난 아쉬움을 <아무도 모른다>가 순식간에 채웠다.

정석희 TV 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어두운 방 밖으로 나오기

아이가 어른의 세계로 나가는 길목에는 깊고 어두운 방이 있게 마련이다. 영진(김서형)에게는 그것이 성흔 연쇄살인 사건의 상처와 분노였다. 가장 아끼던 친구 수정(김시은)을 잃은 영진은 방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대신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강한 어른으로 성장했지만, 미처 다 풀어내지 못한 고통을 간직한 채 일에만 매달리는 메마른 삶을 산다.

선우(류덕환)에게도 검은 방이 존재한다. 신성재단 초대 이사장인 아버지가 탄탄하게 닦아놓은 길을 따라 곱게 살아왔던 그는 첫 발령을 받은 학교에서 뒤늦게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아버지의 유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단으로 돌아왔으나, 선우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 때문에 학생들과 거리를 둔다. 영진과 선우의 어두운 방은 아직 완전히 ‘치워지지’ 않았다.



한편, 영진의 이웃이자 선우의 제자인 15살 은호(안지호)의 비극은 너무나 일찍 검은 방에 들어섰다는 데 있었다. 어린 시절 사고로 아빠를 잃은 은호는 히스테리에 시달리는 엄마 소연(장영남)과 매번 바뀌는 그녀의 애인들로부터 학대를 받으며 자란다. 영진은 은호의 “나쁜 꿈”을 막기 위해 성흔 연쇄살인 사건 자료가 있는 작은 방 출입을 금지시키지만, 은호에게 세상은 이미 진작부터 악몽이었다.

2회에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은호는 끝내 어두운 방에 갇혔고, 이제 영진과 선우에게는 은호와 함께 그들 자신을 방 바깥으로 탈출시켜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요컨대 <아무도 모른다>는 너무 빨리 잔혹한 어른의 세계로 내몰린 아이들과 자기 안의 슬픔을 보느라 앞으로 더 나가지 못하고 주저했던 어른들의 슬픈 성장드라마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 타인의 심연을 들여본다는 것

영진(김서형)이 성흔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을 그토록 절박한 마음으로 찾아 헤맨 이유는, 영진을 빼면 아무도 모른다. 영진은 친구 수정(김시은)이 죽음의 공포 속에서 간절히 자신을 찾을 때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짓눌려 있던 상태에서 진범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원래 너를 죽이려 했는데 네가 없어 너 대신 네 친구를 죽였다.”며 이죽거리는 진범의 목소리는 영진을 돌이킬 수 없는 분노와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그를 이끌어 준 황인범(문성근) 계장도 평생 진범을 찾아 헤맸지만, 영진의 마음에 비할 바는 못될 것이다. 영진은 가장 가까운 이를 잃은 유족이자 진범의 전화를 받은 당사자니까. 세상엔 당사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이란 게 있는 것이다.

은호(안지호) 또한 그럴 것이다. 영진은 윗집 아랫집 사이를 넘어 가장 가까운 가족처럼 지내는 소년 은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이 제일 먼저 알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은호가 어떤 상황을 겪으며 어떤 공포를 느끼고 있었는지 하나도 알지 못했다. 아무리 가장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겉보기에는 별 다른 어둠이 없어 보인다 하더라도, 타인이 마음 속 깊이 품은 심연은 애정을 가지고 파헤치지 않는 이상 알아채기 어렵다. 영진은 자신만이 이해하는 고통을 들여다보는 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가장 가까운 가족인 은호가 품은 심연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허공으로 몸을 던진 은호를 위해, 이제 영진은 잘 안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던 은호를 이해해야 한다.



<아무도 모른다>는 이처럼 누구의 이해도 받지 못한 채 혼자 아파하던 사람들의 비밀을 실타래 풀 듯 천천히 바라본다. 첫 주 방영분만 보고 단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첫 인상만 보면 <아무도 모른다>는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것을 구원의 실마리로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도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관심을 두지 않아 오로지 당사자만이 고통을 부둥켜안고 오래 앓도록 방치하는 이 원자화된 세상에 썩 필요한 이야기가 아닌가.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사진·영상=SBS, 그래픽=이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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