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러2’ 불운한 여행 예능, 무엇이 문제일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JTBC 예능 <트래블러2>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정이 꼬여버린 여행과 같다. 방송이 시작될 때부터 이미 코로나19로 인해 여행 심리가 대폭 위축됐을 뿐 아니라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기도 어려웠다. 심리뿐 아니라 실제 운신의 폭도 좁아졌다. 지난 15일 외교부에 따르면 한국 출발 여행객에게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리거나 입국 절차를 강화한 국가는 총 137개국이고, <트래블러2>의 여행지인 아르헨티나도 현재 우리나라 여권 비자 발급을 일시 중단한 상황이다. 여행의 로망이란 말을 차마 꺼내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설상가상 지난주는 TV조선 <미스터트롯>까지 특별 생방송되면서 원투펀치를 제대로 맞았다.

그런 까닭에 움츠렸던 날씨가 풀리는 요즘이야말로 여행에 대한 로망과 설렘을 싹 틔우기 적절한 시즌이지만 5회까지 방송되는 동안 전혀 봄을 타지 못하고 있다. 이는 <트래블러2>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영석 사단의 <꽃보다 할배> 출현 이후 2014년부터 해외여행 증가세와 맞물려 매해 수많은 여행 예능이 쏟아지던 흐름도 크게 꺾였다. tvN <짠내투어>는 중국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면서 국내여행으로 전환했다가 이번 주 16일 방송분을 끝으로 당분간 휴지기를 가질 예정이고, 여행예능 전성시대의 한축을 담당했던 KBS2 <배틀트립>은 반일 감정에 이어 코로나19가 연이어 터지면서 결국 종영하기로 했다. 이미 지난 2월부터 휴방과 스페셜 편성으로 대체 중이다.



<트래블러2>의 경우 여행의 로망과 설렘을 앞세우는 수수한 여행 예능이기에 아쉬움이 더욱 크다. 하루하루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스레 느끼고 살아가는 오늘날 평화롭고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진 파타고니아의 노을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시즌1보다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오롯이 외부적 요인 때문만은 아니다. 압도적인 자연의 이국적인 풍광은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롭지만 이를 보여주는 방식이 새롭지 않기 때문이다. 5회째 진행 중인 여정 속에서 여행 심리가 위축된 이 상황을 타계하고 대리만족의 재미를 느낄만한 볼거리를 쉽게 찾지 못했다.

쿠바로 떠난 시즌1이 예능 차원의 조미료 없이도 부족함이 없었던 것은 다채로운 색감과 빛바랜 듯한 아바나를 자유롭게 거니는 류준열의 여유로운 시선과 패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을 평소 즐기고 경험이 많은 류준열이란 사람의 여행지에서의 하루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 배우, 스타라는 직업과 위치를 벗고, 우리와 똑같은 한 명의 여행객이 되는 수수함만으로는 부족하다. 평소에 여행을 즐기는 것으로 소문난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나 리얼리티가 없다면, <꽃보다 청춘> 시리즈의 반복되는 어려움, <정해인의 걸어보고서>가 겪은 한계, <트래블러> 쿠바편의 1,2회와 그 이외 편의 시청률 차이와 화제성 변화가 갖는 함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트래블러2>의 진단은 조금 달랐던 듯하다. 다큐멘터리 같은 포맷이 주는 담백함이란 정체성을 내세우는 한편으로 오디오가 비지 않게 한 명 더 늘린 출연진의 케미스트리를 기대요소로 꼽는다. 일명 떡밥이라 불리는 예능적 장치도 소극적이지만 활용한다. 기존 여행 예능의 문법은 배제하고 여행 자체의 매력에 충실하다면서도 제작진은 인터뷰에서 ‘강하늘, 옹성우, 안재홍의 유쾌하고 재밌는 케미가 돋보이는 장면을 충실히 담을 생각’이라고 한다. 뭔가 앞뒤가 안 맞고 혼란스럽다. 그 결과 시즌1이 류준열이란 여행가를 내세운 다큐형 방송이라면, 지금은 관광객의 시선을 담은 <꽃보다 청춘>에 가까워졌다.



여행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느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은 출연자가 리드를 해야 살아난다. 여행이 흔한 경험이 된 세상에서 시청자는 무엇이든 남는 것이 있어야 재미를 느끼고 따라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하는 여행인지가 중요한 거다. 아무리 인기 있는 스타라고 해도 특별한 프리즘이 되지 못한다면 1회가 끝이다. 하지만 <트래블러2>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평범한 관광도 그렇고, 여행 예능의 클리쉐에 해당하는 스카이다이빙에 무려 한 회를 할애한 것도 그렇고, 식사를 하면서 속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에 대한 고마움을 나누며 가까워지는 장면 등등 너무나 익숙한 그림들의 연속이다.

관찰 예능의 시대가 지속되는 이유는 사람 사는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공감대에서 비롯된 안정과 위안이다. 여행 예능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뻗어서 여행의 즐거움이나 정보 전달, 대리체험은 물론, 라이프스타일 제안까지 이어지는 장르적 진화를 거듭했다. 여행 예능은 <걸어서 세계속으로>처럼 단순히 견문의 차원이 아니라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또 다른 삶의 형태와 로망을 전시하면서 가치를 새로이 했다. 오늘보다 더 나은, 혹은 또 다른 삶과 일상이란 로망의 지점을 발견해주거나 이끌면서 재미로 받아들여졌다. <트래블러> 쿠바 편은 류준열이란 여행가의 존재로 인해 이 영역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보다 밝은 활기찬 에너지, 케미스트리로 구도를 잡은 <트래블러2>는 예능 문법과 시즌1의 정체성 사이에서 적당히 버무려진 평범한 착한 예능이 됐다. 워낙 많은 여행 예능이 거듭되면서 특별한 지향점이 없거나, 정보의 가치가 낮은 단순한 볼거리는 어떤 풍경을 담아오든 작고 소소해질 수밖에 없다. 세월이 좋아져 <트래블러3>을 준비하게 된다면, 다큐멘터리 형식, 여행의 본질, 여행자의 시선과 같은 <트래블러> 시리즈가 처음 나올 때 내세웠던 가치들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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