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정의의 균형감각, ‘하이에나’가 찾아낸 해법

[엔터미디어=정덕현] 아이가 아이가 아니다. 아버지가 대표면 아이도 대표처럼 군다. 그래서 나이 지긋한 운전기사에게 “확 잘라 버린다”는 말까지 하고, 윤희재(주지훈) 변호사를 ‘아빠 따까리’라고 부른다. 어른한테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 하자 대뜸 나오는 말이 “아저씨 꼰대냐”는 거다. SBS 금토드라마 <하이에나>에 등장하는 재벌가 아이들은 갑질이 일상이다. 윤희재는 그 아이들의 문제까지 챙겨야 하는 변호사이고.

하지만 아이들 싸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어른들 싸움으로 번져간다. 아버지들이 나서서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저마다 오너리스크를 마치 협박용 카드로 내세우며 합의조건을 내건다. 이런 상황들이 처음인 어시 변호사는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윤희재는 그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결과를 생각해. SNS 한 줄에 기업 가치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세상이야. 네가 뭘 막았는지 그거에 집중해.”



사실 변호사라는 직업이 번드르르 해보이지만 때론 그들은 개인적인 도덕이나 윤리 혹은 정의와는 위배되는 일들도 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갑질을 일삼는 대표들이나 그 대표들을 똑 닮아 위아래도 없는 아이들을 변호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속에서는 배알이 뒤틀리는 일이지만 그걸 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기도 하니까.

결국 윤희재는 자신이 변호를 맡은 재벌가 아이에 유리한 영상을 확보한다. 그 아이가 상대방 아이의 팔을 부러뜨린 건 집단 따돌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증거하는 영상이다. 이를 통해 좋은 합의조건을 얻어내고 그 클라이언트가 송&김으로 법률대리인을 바꾸겠다고 말하지만 윤희재는 이 부분에서 클라이언트에게 아이가 운전기사에게 했던 막말을 녹음한 걸 들려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제가 다시 이대표님 대리하는 이상 리스크 관리 들어갑니다. 아드님 문제 감당하기 어려워지기 전에 픽스하시죠.”



윤희재는 자신이 맡은 일을 해결하면서도 또한 갑질을 일삼는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 선택을 한다. 논리로 내세우는 건 ‘리스크 관리’다. 지금 그 아이의 그런 행동들을 방치하다가는 나중에 더 큰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설득시키는 것. 결국 대표는 화를 내면서도 그 말을 수긍한다.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만의 정의와 윤리를 지키는 것. 이런 균형감각은 <하이에나>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안겨주는 슬기로운 방식이 아닐 수 없다. D&T라는 회사의 상장을 두고 벌어진 소송에서도 이런 균형감각은 돋보였다. 정금자(김혜수)와 윤희재의 공조로 손진수(박신우) 대표는 승소하지만, 갑질을 일삼는 그에게 이 사건을 폭로한 김영준(한준우)을 그만 괴롭히라 으름장을 놓는 장면이 그렇다.



<하이에나>는 그래서 이 윤리도 도덕도 클라이언트라는 이유로 접어두고 무조건 이겨야 하는 치열한 정글에서 하이에나로 살아야 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면서도 나름의 윤리적 선택을 해나가는 ‘슬기로운 변호사 생활’을 그리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전혀 다른 삶의 환경을 가진 윤희재와 정금자가 어떻게 일과 사랑에서 물어뜯으면서도 공조하고 서로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사랑하는가의 이야기도 담겨져 있다.

최근의 드라마 시청자들은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도 그렇다고 너무 비현실적인 판타지도 원하지 않는다. 너무 현실적인 건 고구마가 되기 쉽고, 너무 판타지인 건 공감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현실의 비정함을 있는 그대로 가져오고 그 속에서 하이에나가 될 수밖에 없는 삶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들만의 나름의 소신을 보이는 지점은 이 드라마가 찾아낸 슬기로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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