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이태원 클라쓰’에 열광한 까닭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청춘의 시대정신을 설파한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가 화려한 막을 내렸다. 마지막회 시청률이 자체 최고인 16.5%로 뛰어오르면서 종편 드라마 역대 시청률 2위까지 기록했다. 물론, 많은 시청자들의 의견이나 기사나 칼럼에서 지적하듯 후반으로 갈수록 긴장이 무너진 데 대한 아쉬움이 없진 않다. 틀은 다윗과 골리앗의 고전적 갈등 구도이며, 스토리라인은 언더독의 정의구현과 권선징악, 사필귀정을 따르는 전형적인 이야기인데, 클라이막스를 16부작 중 10화 정도로 바짝 당겨놓았기 때문이다.

장가 회장 장대희(유재명)를 최종보스로 남겨놓긴 했지만 갈등의 주요 주체였던 장근원(안보현)이 쓸쓸하게 퇴장하면서 팽팽하던 긴장감은 급격하게 기울었다. 이 변곡점에서 박새로이는 헝그리한 청춘의 풋내를 벗고 기업가로 거듭나면서 성장 동력 또한 급감했다. 복수극이자 성장 드라마인데 악인이 벌을 받고, 주인공은 조숙해버렸으니 복수의 칼날을 위해 응축했던 에너지가 무뎌졌다. 게다가 스토리라인의 한 축을 담당한 삼각관계도 이 즈음 교통정리가 됐다. 당대 최고의 액션 스타 스티븐 시걸이 초반에 죽임을 당한 영화 <파이널 디시전>을 처음 봤을 때 충격처럼 클라이막스를 전진 배치한 그 뒷감당을 어떻게 풀어낼지, 전형적이라 할 수 있는 웹툰과는 얼마나 다른 버전의 결말을 선보일지 기대됐다.



하지만 아쉽게도 조이서(김다미)와 박새로이를 주축으로 한 신선한 캐릭터들과 가슴 깊이 밀고 들어온 명징한 메시지와 달리 그 뒤의 한방은 기대와 달리 너무 전형적이고 서둘렀다. 흔들림 없이, 소신을 지키면서 ‘으쌰으쌰’ 합심하던 이태원과 경리단의 청춘들은 어느덧 주가와 이사회, 글로벌 사업을 논하는 기업드라마의 주역으로 넘어가 있었고, 급기야 조폭들로부터 연인을 구하는 활극으로 변주되며 지극히 상투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게다가 마침표는 요즘 좀 잘 만들었다는 드라마들은 잘 택하지 않는 해피엔딩이다. 그것도 모두의 해피엔딩이다.

장가의 악인들은 벌을 받고, 그 외 모든 출연자들은 본인이 원하던 가치에 따라 성공이나 성장이나 행복을 누린다. 심지어 강민정 이사(김혜은)와 오 형사(윤경호)의 러브라인까지 매듭짓는 따뜻함까지 보여준다.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인물이 오수아(권나라)인데, 마음에 걸렸든지 무려 박보검을 붙여주면서 해피엔딩을 ‘마무리’한다.



이처럼 <이태원클라쓰>는 몰아치는 에너지와 다채롭고도 개성 넘치는 캐릭터에 비해 단순한 갈등 구조와 익숙한 서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다소 맥 빠지는 결말로 향한다. 그럼에도 폭발적인 인기를 유지한 이유는 드라마 전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이태원클라쓰>의 진짜 매력은 잘 짜인 스토리라인이나 기가 막히는 반전이 아니라, 박새로이의 인생관과 이를 표현하는 어록에 있다.

박새로이는 아버지가 정해준 가훈 ‘소신 있게 살자’를 정언명령과 같은 가치관으로 삼으면서 인생이 심하게 꼬인 인물이다. 우리 사회의 적폐를 상징하는 장 회장은 타협이란 달콤함으로, 합리적이란 지혜로, 힘의 논리에 굴복하면 편하다는 충고로 소신 따위 버리고 편하게 살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소신을 택했고 그 덕에 중졸 전과자라는 나락에 빠졌다. 그런 그가 교도소에 복역 중이면서도 “자기 값어치 헐값으로 매기면 호구”라며 “자신의 가치를 함부로 정하지마”라고 다른 죄수에게 충고하고, 초짜 포차 사장이지만 한 기업의 임원에게 “자신이 원하는 자유란 누구도 자신의 울타리 안에 사람들을 못 건드리도록 말과 행동에 힘이 실리고, 어떠한 부당함도 누군가에도 휘둘리지 않는 자신 삶에 주체가 자신인 것이 당연한, 소신의 대가가 없는 삶을 꿈꾼다”고 진지하게 웅변한다. “지금 한 번, 지금만 한 번, 마지막으로 한 번, 또 또 한 번 그 한 번들로 사람은 변해 가는 거야.”라고 일갈하는 데 뭔가 뜨끔하다.



그뿐 아니다. 트렌스젠더 직원인 마현이(이주영)는 돌덩이와 다이아를 논하며 “내가 나인 것에 다른 사람 납득은 필요 없다”고 말하고(이 또한 박새로이가 해준 말이다), 눈물을 담당했던 오수아도 누군가와 함께 일을 도모한다면 “바꾸려고 하지 말고 같이 걸을 각오를 해야 돼”라는 충고를 건넨다. “아이는 부모의 등짝을 보면서 자란다”는 강 이사의 말 또한 많은 부모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어쩌면 작가는 캐릭터를 통해 이 시대 청춘들, 혹은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낸 것인지 모르겠다.

허나 노회한 관점에서 보면 아직 어려서, 사회를 잘 몰라서 그렇다는 애송이 취급을 받기 딱 좋은 말과 결기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는 익숙하고 상투적인 성공스토리에 하고자한 메시지를 얹으며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역으로 이야기한다. 박새로이의 성공 신화는 일반적으로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가깝지만 실제 지명을 활용해 획득한 리얼리티와 지극히 익숙한 스토리라인를 통해 메시지에 현실감각을 입혔다.



그 과정에서 한결같은 박새로이는 어른의 길, 좋은 리더에 대한 표본이 된다. 신뢰와 신념을 지키며 살아도 다치지 않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이용하지 않으면서 성장하고 자신의 것을 지킬 수 있는 사회, 잘못을 사과할 줄 아는 염치, 성공은 사람 사이의 신뢰에서 나온다는 인본주의, 타인을 자신에게 맞추고 이용하거나 바꾸려 들기보다 더디더라도 이해해보고 함께 걷고자 하는 마음가짐은 꼰대와 대척점을 형성한다. 상황과 처지가 어떻든 타인과 세상을 탓하는 대신 그 누구보다 자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자존감과 단단한 심지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든다. 의지하고 싶은 어른의 존재,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할 말하고 사는 통쾌함, 그럼에도 대가를 치루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대한 열망이 박새로이에게 투영된다.

박서준도 “박새로이는 소신이 뚜렷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단단한 인물이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그의 모습은 나뿐만 아니라 드라마를 보시는 분들에게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이태원 클라쓰>는 스토리가 아닌 메시지가 여운을 남기는 드라마다. 팍팍한 리얼리티와 통쾌한 판타지가 뒤섞인 이태원에서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시대정신을 담아냈다. 전형의 극단을 달리는 설정과 결말이지만 이태원의 밤거리를 헤집고 들어가 찾아낸 본질이 청춘을 강타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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