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의 반’의 감성적 서사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엔터미디어=정덕현] “불행해지면 연락 줘.” 하원(정해인)은 오랜 영혼의 단짝이자 좋아했던 첫사랑 지수가 오랜만에 만나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렇게 말했다. 지수는 자신의 선택(결혼)을 존중해달라고 했고, 그러자 하원 역시 자신이 지수를 앞으로도 마음에 두고 살아갈 거라며 그 선택 또한 존중해달라고 했다. 다만 힘겨워지게 되면 자신에게 연락하라는 것.

tvN 월화드라마 <반의 반>은 이처럼 짝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하원이 인공지능프로그래머로 인공지능을 활용해 고통스런 감정까지 치료해줄 수 있는 대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는 설정은 바로 짝사랑의 다른 말처럼 보인다. 하원은 자신의 기억과 경험에 대한 데이터들을 그 프로그램에 채워 넣고는 마치 친구처럼 그 프로그램과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그 기억의 많은 부분들은 지수와의 공유된 경험과 기억으로 채워져 있다. 하원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지수의 목소리 같은 ‘반의 반’만 있어도 충분하다 말하지만, 그렇게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를 프로그램과의 대화를 통해서나마 채우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노르웨이에서 어린 시절과 성장기를 모두 함께 보내며 영혼의 단짝으로 살아왔던 하원과 지수가 이렇게 갈라져서 살아가게 됐고, 서로 여전히 좋아하면서도 한 사람이 다가가면 다른 사람이 멀어지는 같은 극의 자석 같은 관계가 됐는지에 대한 납득될만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하원의 어머니가 무엇 때문인지 사망한 후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됐다는 사실이다. 하원이 미국에 간 동안 지수는 하원도 알고 있는 피아니스트 인욱(김성규)을 만나 결혼하게 됐다. 지수가 하원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건 그의 어머니의 죽음과 연관된 어떤 사건 때문이 아닐까 싶다.



확실한 이유를 들려주지 않고 그 결과로서 멀리 떨어져 서로 그리워하기만 하고 아파하기만 하는 이들을 보여주고 있어, 어딘지 답답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감정의 파고를 담아내는 서정적인 영상들과 대사들, 은유적인 공간 설정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이 드라마를 빠져서 보게 만드는 이유다.

노르웨이로 함께 가자며 만나기로 했지만 결국 나타나지 않은 지수 때문에 매일 같이 그 카페에서 기다리는 하원의 모습은 마치 식물 같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사랑법이기도 하다. 그는 떠나가도 계속 그 자리에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힘겨워지거나 불행해지면 자신을 찾아오라고 한다. 그런 하원에게 지수는 다가가지 못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지수가 하원의 어머니 무덤가에서 사과하는 장면과 관련이 있을 게다.



하원과 지수가 마치 에덴동산에서 하나였다 반쪽으로 분리되어 갈라진 운명의 인물들이라면 그 둘 사이에 끼어버린 서우(채수빈)는 그들을 연결해주는 고리다. 하원이 기다리고 있는 카페 앞에서 발길을 되돌려 서우의 녹음실을 찾은 지수는 서우에게 하원에게도 하지 못했던 심경을 털어놓는다. 그에게 무슨 일인가가 벌어졌고 그것이 그의 삶을 다 뒤집어놓았다고 한다. 서우는 굳이 그 일이 무엇인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지수가 듣고 싶은 말이 있지 않냐고 묻는다. 지수는 “괜찮다.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서우는 “누구나 실수한다”며 “자연도 실수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산불로 돌아가신 부모님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그러면서 “괜찮아. 아무 거도 아니야”라며 지수를 위로해준다. 그 말을 듣고 용기를 얻은 지수는 혼자 노르웨이로 떠난다.



노르웨이에서 폭설을 맞아 어린 시절 하원과 찾곤 했던 자그마한 대피소에서 지수는 두려움에 떨며 서우에게 전화를 했을 때 서우가 녹음했던 인욱의 피아노 연주소리가 들려오는 장면은 아이러니한 우리네 삶을 슬쩍 끄집어낸다. 인욱과의 어떤 일 때문에 도망치듯 노르웨이까지 왔고 그 곳에서 폭설에 떨고 있는 지수를 잠시나마 위로해주는 게 남편 인욱의 피아노 연주라는 것. 그런데 정작 지수는 그것이 인욱의 피아노 소리인 줄 모른다.

<반의 반>은 이처럼 서로 좋아한다고 해도 각각으로 분리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래서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의 삶을 그려낸다. 하지만 동시에 그 고통스러운 삶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외의 고리들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반의 반>의 주인공들은 그래서 저마다 외롭게 버텨내고 있지만, 이들의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들 보는 시청자들은 그들이 연결되어 있는 장면들을 보고 어떤 위로를 얻는다.



천장 가득 비춰진 나무 그늘을 지수가 바라보던 그 카페에 하원이 앉아 그걸 올려다보는 장면이 그렇고, 동네 한 가운데에 마치 커다란 스피커처럼 자리한 녹음실이 흘려보내는 음악으로 사람들의 귀를 묶어내는 장면이 그렇다.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담아낸 하원이 개발하는 AI 프로그램에도 무수히 많은 지수와의 경험들이 겹쳐지는 대목도 그렇다.

<반의 반>은 그래서 반의 절반인 4분의 1의 의미만이 아니라, 절반으로 나뉘어 나머지 절반과 떨어진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들은 각각 떨어져 있어 서로를 그리워하는 식물 같은 사랑을 한다. 그것은 각각 떨어져 고립된 채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어떤 연결고리들이 이어져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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