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만 원하는 일본 남성층, 그럼 아이유는?

[엔터미디어=이문원의 쇼비지니스] 일본 걸그룹 판도에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단 압도적 걸그룹 AKB48이 마침내 정점을 치고 내려앉는 모양새다. 최근 발표한 24번째 싱글 ‘위에서부터 마리코’는 발매 8주차 현재 129만2626장을 판매, 최종 132~3만 장대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 직전 23번째 싱글 ‘바람은 불고 있어’의 144만6483장보다 다소 떨어진 수치고, 다시 그 전 22번째 싱글 ‘플라잉 겟'의 160만6348장보다는 약 19.5%까지 감소한 수치다. 이대로라면 1~2 싱글 내로 연속 100만 장 신화가 깨지리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물론 한국 팬들과 업계 입장에선 그 반사이익을 한국 걸그룹들이 얻었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상황은 그렇지가 못하다. 반사이익은 일단 AKB48 자매그룹 SKE48이 얻어가고 있다. 지난달 25일 발매한 8번째 싱글 ‘짝사랑 파이널리’는 발매 첫 주 49만5809장을 팔아 전작 ‘오키도키’의 38만2802장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29.5% 성장이다.

그밖에 노스리브스, 와타리로카하시리타이, 프렌치키스, 낫 옛 등 각종 AKB48 파생 유닛들도 서서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그 외 걸그룹들도 차츰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예컨대 데뷔 4년차를 맞이한 후지TV 걸그룹 아이도링구!!!는 18번째 싱글 ‘MAMORE!!!’를 1월 넷째 주 동안 5만6232장 팔아 전작 ‘Don't Think, Feel!!!’의 3만8999장에서 44.2%나 성장했다. 한 마디로, AKB48이 떨어진 만큼 여타 걸그룹들은 상승했다는 얘기다. 결국 파이는 일본 걸그룹들 내에서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단순하다. 일본 걸그룹들이 표방하는 ‘소녀’ 콘셉트의 절대 파이는 깨질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사실상 단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다. 한국 걸그룹들 성과는 기존 걸그룹들이 놓치고 있던 시장, 즉 10~20대 여성층과 40대 이상 여성층, 그리고 딱히 소녀 콘셉트에 노출되지 않았던 일부 남성층을 ‘개발’해 얻어낸 것이다. 이미 ‘있는 시장’을 부숴 얻어낸 성과는 아니란 얘기다.

그럼 대체 일본시장에 있어 소녀 콘셉트란 어떤 성격,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일까. 하나씩 살펴보자.



◆ ‘소녀’는 철저히 남성층 시각으로 바라본 ‘만들어진’ 개념

일본은 확실히 ‘소녀’ 콘셉트의 종주국인 만큼 그에 대한 연구도 다양한 차원에서 진행된 바 있다. 비판적 자세도 많고, 한계도 명확히 지적되고 있다.

일단 일본에서 ‘소녀’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닌 단어인지부터 정리하고 넘어가자. 여성학자 무라세 히로미는 저서 ‘페미니즘·서브 컬처 비판선언’에서 “여자아이는 자신을 ‘소녀’라고 부르지 않는다.”며 “‘소녀’라는 말, 혹은 개념 자체가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다. ‘소녀’라는 개념은 남자를 기준으로 한 것이고 그 기준에 본 대상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소녀’란 대화의 대상으로서밖에 존재하지 않으며 얘기하는 주체와는 분리돼있다.”고 주장한다. 즉 ‘소녀’란 철저히 남성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란 얘기다.

그럼 그 개념은 어떤 식으로 이뤄져 있을까. 오사카부립대 교수 모리오카 마사히로는 “소녀는 성적으로 미성숙해야 한다.”며 “성적으로 성숙해가면 어머니에 접근해버리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해서 여자라고 전혀 느끼게 하지 못하는 아이여서도 안 된다. 불어오는 바람에 치마가 날려도 그것이 남성에게 보이고 있는 상황의 의미를 아직 모르는 것이 소녀”라고 규정한다.

앞선 무라세도 이와 비슷한 개념을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히로인에 빗대 주장한 바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의) 히로인들은 성의 비밀을 알지 못한다. 자신의 성적매력도, 성적욕망도 최후까지 깨닫지 못한다.”면서 “여기서 시선을 집중한 것이 오타쿠 안에서도 로리콘이라 일컬어지는 인간들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소녀를 자신이 좋아한다고 하는 판타지가 계속 이어진 것”이라 지적했다.

결국 알고 보면 ‘소녀’라는 건 꽤나 변태적인 개념에 가깝다는 얘기다. 남성 자신은 상대방을 성적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서 인식하지만, 상대방 본인들은 그런 가능성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그 상태 자체를 즐기는 개념인 셈이다. 이를 스타산업 논리로 옮겨 보면, 손에 닿을 수 없는 존재인 아이돌에 대해 소비자인 남성층이 자신의 성적 성숙도로써 지배코자 하는 심리가 투영된 개념이다.

이런 식의 개념은 자연 상품개념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 뒤부턴 ‘소녀’의 확대재생산이 이뤄지게 된다. 도쿄대 교수 타카하시 야스시야의 지적처럼, “천재에 의해 새로운 콤플렉스가 이름을 얻고, 이름을 획득한 것에 의해 이것이 증폭되는 현상”에 가깝다.



◆ 일본 남성층의 초식남화가 AKB48 열풍 낳았다

물론 일본이라고 ‘소녀’ 콘셉트가 늘 인기 있었던 건 아니다. 1980년대까지는 마츠다 세이코를 필두로 소녀 솔로 아이돌들이 큰 인기를 누렸지만, 1990년대 들어서서는 이 같은 붐이 일시적으로 줄어든 적이 있다.

왜 그랬을까. 이에 대해 가장 독창적인 해석을 내놓은 건 일본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오키테 포르쉐다. 오키테는 “1990년 전후부터 아이돌은 빙하기를 맞이했다. 그 이유 중 한 가지로 AV(어덜트 비디오)의 보급을 들 수 있다”면서 “1980년대 중반 이후 AV의 보급에 의해 여성의 성욕이 일반 레벨에서도 인식되고 긍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남성의 순정이라는 숭고한 정신적 가치는 점차 퇴조했다. 결국 잘 나가는 남성들의 기호였던 ‘아이돌을 좋아한다, 아이돌을 응원한다’는 행위, 즉 유사연애적 행동이 여성의 성욕이 인정된 세상 속에서 점차 부끄러운 것으로 변해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결과 아이돌이라는 존재의 주변에서 잘 나가는 남성, 즉 반에서 싸움 좀 하는 녀석들이 사라져버렸다. 혈기왕성한 육식동물들이 사라진 공간에 들어온 것이 초식동물, 즉 반에서 얻어맞고 다니는 녀석들이었다. 그런 계층들이 1990년대 이후 아이돌 주요 팬층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라며 “얻어맞고 다니는 녀석들이 지지하는 장르는 일반적으로 마이너리티 화 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아이돌=오타쿠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도식이 생겨나 ‘오타쿠가 지지하는 기분 나쁜 존재’로 차별의 대상이 된 것이 현재의 아이돌”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 같은 분석은 AKB48이 밀리언셀러 신화를 이어나가기 전에 나온 것이다. 그러니 이 분석에는 추고가 요구된다. 데뷔 초만 해도 ‘오타쿠가 지지하는 기분 나쁜 존재’에 불과했던 AKB48이 수년 뒤 연속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고, 그와 유사한 소녀 콘셉트 걸그룹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현실은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답은 기계적으로 나온다. 지금 일본 남성층은 오타쿠고 뭐고 할 것 없이 ‘얻어맞고 다니는 녀석들’ ‘초식동물’ 성향을 전반적으로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제 불황 여파가 누적되면서 젊은 층 취업 불황은 극심할 정도에 이르렀고, 이에 사회적 자신감을 잃은 젊은 남성층의 초식남화도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자 이성에 대한 젊은 남성층의 자신감도 함께 떨어져, 성숙과 미성숙의 중간 단계에 놓인 소녀들, 한 마디로 남성으로서 떨어진 자신감을 위협하지 않는 ‘만만한’ 존재들을 추구하는 경향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 그러니 아무리 한국 걸그룹 열풍이 일어나도 AKB48을 필두로 한 소녀 콘셉트 위세는 일본 남성층 내에서 흔들림 없이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 나이 먹어도 여전히 교복 입어야 하는 AKB48

이 같은 경향은 일본 걸그룹 전략 전반에 있어서도 꽤나 기이한 방향성을 낳고 있다. 한국 입장에선 거의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일단 한국도 걸그룹 론칭 시 ‘소녀’ 콘셉트 전략을 안 쓰는 건 아니란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소녀시대도 카라도 처음엔 다들 소녀 이미지를 강조했었다. 그러나 한국 걸그룹은 활동 연차가 길어지고 그만큼 멤버들 연령이 높아지면 어느 순간 콘셉트를 전환해버린다. ‘소녀’에서 ‘여성’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소녀시대는 ‘소원을 말해봐’부턴 확실히 여성의 풍모를 과시하기 시작했고, 카라도 ‘미스터’ 정도부턴 여성 콘셉트로 갔다고 봐야한다.

이런 전략은 물론 소녀시대, 카라부터 처음 시작된 건 아니다. 과거 S.E.S.와 핑클 등도 어느 시점에 이르러 모두 소녀에서 여성으로 이미지 변환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런 콘셉트 변환이 더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또 남성층 입장에서도 이른바 ‘프린세스 메이커’적 감수성을 자극해 호응이 늘 좋았다.

그러나 일본은 상황이 다르다. 당장 AKB48만 봐도 그렇다. AKB48도 어느덧 결성 8년차를 맞이한 상황이다. 당연히 멤버들 연령대도 그만큼 올라가있다. 마에다 아츠코, 다카하시 마나미, 이타노 토모미, 카시와기 유키 등이 21세, 거기다 오오시마 유코 24세, 시노다 마리코 26세 등 주요 멤버 대부분이 성인연령을 훌쩍 넘긴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은 여전히 소녀 이미지를 팔고 있다. 여전히 교복풍 코스튬으로 등장해 소녀풍 캔디팝을 부른다.

실제나이가 몇 살이 됐건 이들을 소비하는 남성층은 계속 소녀만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녀에서 여성으로 탈바꿈하는 순간, 지지층은 와해돼버린다. 그러니 모닝구 무스메 같은 원로 걸그룹은 아예 ‘묵은’ 멤버들을 졸업시키고 계속 나이 어린 멤버들을 수혈해 소녀 이미지를 억지스럽게나마 유지하려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앞서 언급한 AKB48의 점진적 하락세도 바로 ‘나이’ 탓이란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리 소녀 이미지를 고수하려 해도 연령대가 받쳐주질 않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보기 민망해지고 있다는 것.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낮은 여타 소녀풍 걸그룹들로 팬층 이동이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그들도 수년이 지나 소녀적 풍모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면 또 다른 소녀들로 대체될 것이 자명하다. 여러모로 소모적인 전략인 셈이다.



◆ 아이유는 과연 일본 남성층 시장 뚫을 수 있을까

3월21일, ‘한국의 국민여동생’으로 홍보된 아이유가 일본 데뷔 싱글 ‘Good Day’를 발표하며 본격 일본진출에 나설 예정이다. 일본 현지 열기는 뜨겁다. 특히 공영방송 NHK는 지난달 24일 일본 쇼케이스를 전후로 30여분에 걸쳐 두 차례 아이유 특집을 편성할 정도로 열성적이다. NHK 측은 아이유 일본 상륙에 대해 한국미디어 저널리스트 후루야 마사유키의 소개, 즉 “지금까지의 한류가 ‘보는 한류’였다면, 아이유를 기점으로 ‘듣는 한류’가 도래할 것”이란 분석으로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유의 일본 상륙은 ‘듣는 한류’ 따위 거창한 차원에서 바라볼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이 일본시장에 내놓는 첫 번째 ‘소녀’ 콘셉트 아이돌이라는 점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물론 카라도 일본에선 점차 소녀 이미지를 강조하려 애쓰고 있지만, 국내활동 이미지와의 갭은 일본 개그맨 츠카지 무가 같은 인물까지도 방송에서 공공연히 지적할 정도로 잘 알려진 상태다. 웬만한 아이돌 팬층은 이미 ‘속아 넘어가지 않는’ 상태란 얘기다.

결국 아이유는 카라 같은 ‘이중생활’, 티아라 같은 ‘중간지대’가 아닌 진짜 ‘본진’, 즉 밀리언셀러까지 내줄 수 있는 일본 남성층 시장을 향해 곧바로 진입해야할 운명이란 얘기다. 그리고 그 전망은 다소 밝은 편이다. 소녀 콘셉트 내에서 프로페셔널리즘으로 무장한 아이유가 상륙한다면, 어쩌면 여성층과 남성층이 합세하는 효과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더라도, 아이유의 일본시장 한계는 뚜렷할 수밖에 없다. 아니 이는 비단 아이유만의 한계조차 아니다. 그 누구건 소녀 콘셉트로서 일본에 상륙해 남성층을 끌어내는 효과를 거뒀다 해도, 수년 뒤 여성 콘셉트로 전환하는 순간 ‘초식남’ 남성층은 팬층에서 이탈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몇 년이라도 더 소녀 이미지를 고수하려 했다간, 이번엔 국내시장에서의 환멸감을 감당해내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에서 여성아이돌 소비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남성층을 상대하기란 이토록 까다롭고 헷갈리는 일이다. 세계 2위 규모 시장이 이처럼 변질적 양상을 띠고 있다는 건 참 묘한 노릇이지만, 어찌됐건 아이유 외에도 걸스데이, 에이핑크 등 향후 일본진출을 목표로 하는 소녀 콘셉트 아이돌들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특성인 건 사실이다. 단순히 지켜보는 입장에선, 이처럼 자잘한 문화 환경 차이가 더 흥미를 돋우긴 하지만 말이다.


칼럼니스트 이문원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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