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 안영미, 그 의미와 가치는?

[엔터미디어=배국남의 눈] ‘할리 라예’ ‘간디 작살’ ‘마 도온나~섹시해’ ‘이런 면 저업~같은’…그녀가 외치는 대사는 다음날 유행어가 된다. “간디 흰 팬티 완전 내 취향!”“(저승사자는) 올 블랙슈트에 연상녀 킬러”“(프랑켄슈타인은) 관자놀이에 피어싱 한 어깨 뽕쟁이”“(히틀러는) 나쁜 남자”“(산타클로스는) 살찐 빨갱이 영감”…그녀가 말한 코미디 내용은 다음날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의 내용이 되고 화제가 된다. 그리고 그녀의 복장과 자세는 만화에 등장하고 추종하는(?) 사람마저 생겼다.

그야말로 인기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요즘말로 그녀는 확실한 대세다. 민소매 쫄티에 요즘 중고생들의 제2의 교복이라는 점퍼를 입고 펑키 한 염색머리, 코와 입에 피어싱 한 4차원 폭주족 ‘김꽃두레’의 안영미다.

안영미를 화려한 부활을 하며 개그우먼 대세로 부상시킨 진원지는 케이블 채널 tvN에서 지난해 9월17일 첫 선을 보인 ‘코미디 빅리그’. 이 프로그램은 KBS, MBC, SBS 방송사 등에서 활동하거나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는 다양한 개그맨들이 나와 관객의 투표로 경쟁을 벌이는 개그 배틀 프로그램이다.

시즌1에 이어 지난해 12월24일부터 시즌2가 재개돼 방송되고 있다. 김미려 정주리와 함께 아메리카노팀을 결성해 웃음사냥에 나선 안영미는 시즌1 초반 고전을 했으나 새롭게 단장한 ‘내겐 너무 벅찬 그녀’ 코너에서 김꽃두레 캐릭터로 나와 관객과 시청자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으며 인기 반전에 성공해 2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시즌2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단연 돋보이는 파격적 외모, 상대를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내뱉는 욕설을 연상하는 걸걸한 말투, 개념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지만 순진무구하게 보이는 행태, 관성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는 놀라운 발상 등을 드러내는 안영미의 김꽃두레는 어떤 이에게는 개그 프로그램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여성 캐릭터로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 받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기존 주류문화에 대한 전복과 저항의 코드로 읽히기도 한다.

그리고 일부는 청소년과 시청자의 정서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우려하기도 하고 일부는 현실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는 시대적 트렌드로 해독하기도 한다. 다양한 의미와 방식으로 해독된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높은 관심과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이리라.

안영미는 요즘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KBS‘개그콘서트’, MBC ‘웃고 또 웃고’, SBS ‘개그 투나잇’지상파 방송 3사 개그 프로그램에 나온 개그맨들을 압도하는 인기를 얻고 있다.



‘할리라예’를 외치며 등장하는 안영미에 환호를 보내는 시청자와 관객들과 개그맨 대세라는 찬사를 쏟아내는 대중매체를 보면서 떠오른 것은 한국에서 개그맨 특히 개그우먼으로 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다.

수백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개그맨이 된 뒤에도 앞날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가장 많은 노력과 고생을 하지만 노력이나 고생만큼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 개그맨이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하나의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구체화한 뒤 완성되면 자연스러운 개그를 보여주기 위해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다. 일주일에 7일 동안을 3분짜리 한 코너를 위해서 땀을 흘리는 것이다. 인기를 얻지 못하면 코너와 함께 개그맨 수명도 단명 한다.

엄용수 코미디언협회장은 “일주일에 6일씩 방송사에 나와 하루 5만원의 일당을 받고 일하는 코미디언들의 수명은 길어봐야 5개월 뿐이다”라고 말을 할 정도다. 극단적인 부분은 있지만 개그맨의 적나라한 현실을 드러낸 말이다.

개그 프로그램의 트렌드 변화와 웃음 코드의 급변으로 개그맨들의 수명은 점차 짧아지고 있다. “개그맨의 평균 수명은 코너가 유지되는 6개월~3년이라고 봅니다. 길어야 5년입니다.” KBS에서 코미디 전문PD로 30여년 연출을 담당했던 김웅래 전 인덕대학 교수의 냉철한 현실 진단이다.

그나마 개그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고 스타덤에 오르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진출하지만 빼어난 스타들이 많은 그곳에서 생존자체가 너무 힘들다. 그렇다고 아이돌 가수처럼 드라마에 진출해 그럴듯한 주연이나 비중 있는 배역을 맡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출연하고 있던 개그 프로그램에서의 하차는 개그맨으로서의 수명을 단축하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신선한 아이디어와 독창적인 코너로 무장한 젊은 개그맨들이 방송사로 끊임없이 유입되기 때문에 그렇다. 남자 개그맨들보다 여자 개그맨들은 상황이 더욱 힘들다. 남자 개그맨들은 프로그램 하차한 뒤 절치부심하고 노력을 하면 다시 개그 프로그램 무대에 서 부활의 기회를 갖지만 개그우먼의 경우, 그 기회가 훨씬 적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남자 스타들이 득세하는 버라이어티에서 개그우먼들의 설자리는 매우 비좁다. 따라서 개그우먼들이 코너 폐지와 함께 개그 프로그램을 하차하면 개그우먼으로서 생명은 단축될 뿐만 아니라 아예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안영미는 2004년 KBS개그맨 공채로 연예계에 데뷔한 뒤 ‘고고 예술 속으로’로 존재감을 알렸고 골룸 분장을 하고 “영광인줄 알어! 이것들아”를 외친 KBS ‘개그콘서트’의 코너‘분장실의 강선생님’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그리고 스타 개그맨들의 일반적인 진로인 버라이어티로 그녀 역시 진출했다. 하지만 ‘분장실의 강선생님’종방과 함께 안영미의 존재감도 시청자의 뇌리에 점차 사라졌다.

“‘분장실의 강 선생님’ 이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 방송 활동은 했지만 개그 무대에 서질 않으니 힘도 빠지고 자신감도 사라졌다. 버라이어티에 나가도 개그맨은 무대에 서지 않으면 자신감을 가질 수가 없다. 가수가 음반을 안 내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너무 힘들었고 두려웠다.”



안명미의 개그무대에 서지 못한 2년간의 슬럼프는 개그우먼으로서의 존재감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 극단적 상황이었다. 이 같은 상황은 안영미 뿐만 아니라 대다수 개그맨들의 운명 같은 굴레다.

개그우먼들은 개그맨들이 처한 일반적 상황에서 초래되는 어려움과 함께 개그우먼으로서 의 특수성과 편견에서 오는 어려움까지 겹쳐 개그우먼의 수명은 더 짧다. 안영미 역시 개그맨으로서 어려움뿐만 아니라 개그우먼으로서 고충까지 이중고를 겪었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개그우먼들은 일반적으로 예쁘거나 못생긴 캐릭터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개그우먼들의 역량을 매우 한정하는 원인으로 작용을 한다. 버라이어티에서는 캐릭터의 한계를 더 절감한다. 남자한테 막 들이대고 늘 망가지고하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회의도 많이 든다”

개그우먼으로서 생명이 끝날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안영미는 ‘코미디 빅리그’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척박하고 열악한 상황으로 단명의 개그맨들이 홍수를 이루는 시대에서 코미디 연기에 대한 열정과 노력으로 ‘김꽃두레’라는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어 결국 안영미는 다시 대중의 박수를 받으며 개그우먼으로서 생명력을 얻었다.

안영미의 개그우먼으로서의 부활은 단순히 인기를 다시 얻는 차원이 아니다. 프로그램 하차와 함께 생명이 끝나게 되는 개그우먼으로서의 운명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후배 개그우먼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모델 역할을 하며 한국 개그계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값진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다. 대중은 나이 들어서도 늘 코미디로 웃음을 주는 안영미이기를 기대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배국남 knbae@entermedia.co.kr


[사진=tvN,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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