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음악 소통 방식을 고민할 때
-‘나는 가수다’, 가요계의 서글픈 현실?

[서병기의 트렌드] 음악 소비 환경이 변한 지는 꽤 됐다. 음반 시장이 위축되고 음원시장이 커졌다. 음원시장은 음악 유통을 담당하는 통신사와 수익을 배분해야 하는데, 아직 작곡가와 가수, 제작자에게 충분히 분배의 몫이 돌아가는 구조가 아니다. 누누히 지적되어온 바이지만 하루 아침에 고쳐질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고 음악인들이 노래를 안내놓을 수는 없다.

1~2주 단위로 음악 차트 1위곡이 바뀌고 1등을 했던 곡도 한 달만 지나도 방송을 탈 수 없는 매체 환경탓만을 할 수도 없다. 음악소비 주기가 짧아지면서 좋은 노래도 빛을 못보고, 심지어 좋은 노래를 선별할 수 있는 안목도 길러지지 않는 음악환경이다. 이런 음악 환경에서는 갈수록 명곡인데도 빛을 못보는 노래들이 늘어날 것이다.

위기는 기회다. 아이돌과 엔터테이너 음악으로 장르 쏠림 현상이 우려되지만 여기서 밀린 가수와 창작자들이 한숨만 쉬고 있을 일이 아니다. 변화한 매체 환경에 적응해 음악의 소통방식을 잘 포착한다면 과거 죽은 명곡도 다시 살려낼 수가 있다. 훌륭한 재활용곡이다. ‘나는 가수다’가 그 일을 해냈다.

‘나는 가수다’의 김영희 PD는 “첫 방송이 나가고 너무 기분이 좋았던 것은 박정현의 ‘꿈에’가 재발견된 것이고,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발표된 지 7년 만에 음원차트 1위를 한 것이다”면서 “명곡인데 주목을 못받았는데, 다시 주목을 받고 재조명됐다는 데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알렉스가 2008년 ‘우리결혼했어요’에서 가상아내인 신애를 향해 부른 러브홀릭의 ‘화분’이 음원차트를 장악하며 크게 히트했다. 가수 성시경은 이런 현상을 두고 “대중에게 크게 알려지지 못했지만 소통 방식만 잘 잡는다면 새롭게 조명될 수 있는 좋은 노래들이 많다”면서 “요즘 음악환경에서는 스토리가 있으면 유리하다”고 말했다. 신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로맨틱 가이 알렉스는 남성들의 공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뚜렷한 ‘스토리’를 갖추고 있었다.

‘무한도전’ 듀엣가요제에서 ‘영계백숙’과 ‘냉면’이 뜬 것과 윤종신이 불러 히트하지 못한 ‘본능적으로’를 ‘슈퍼스타K2’에서 강승윤이 불러 엄청난 인기를 얻은 것도 마찬가지다.
 
이제 음원차트에서 바람을 일으키려면 일단 예능이건 드라마건 콘텐츠를 띄워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박정현과 이소라는 이전에도 지상파의 심야 라이브 음악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노래를 간간히 불렀다. 그리고 항상 가창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때는 음원 차트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들이 주말 저녁 시간대에 방송되는 버라이어티 예능에서 서바이벌 게임 형식으로 자신의 노래를 선보이자 음원차트에 큰 바람을 몰고온 것이다. 이는 음반 제작자들이 신보를 홍보하는 데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미 가수 매니저들 사이에서는 음악프로그램에 10번 출연하는 것보다 ‘1박2일’이나 ‘무한도전’의 BGM으로 한 번 깔리는 게 효과가 더 낫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고, MBC 가상결혼 버라이어티 ‘우리 결혼했어요’에 들어가고 싶어 대기하는 남녀 아이돌 가수들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은 음악 소비 환경의 변화를 실감나게 해준다.  
 
이런 현상을 두고 가요계에선 서글픈 현실이라는 말도 한다. 하지만 너무 심각하게 볼 필요는 없다. 요즘 몇몇 음원차트에서는 해병대에서 열심히 훈련중인 현빈이 뱅크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가질 수 없는 너’가 1위에 올라있다. 가수도 아닌 배우가 홍보 활동 한번 없이 남의 과거 노래를 불러 1위에 오르는 게 오늘의 가요시장 현실이다.

‘나도 가수다’가 서바이벌 형식을 취해 노래 잘하는 기성가수를 수직으로 서열화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한 명이 나가야 새로운 가수가 들어올 수 있다. 등수를 매기면 ‘쪼우는’ 맛이 생긴다.
 
일요일 저녁 예능은 ‘리얼’과 ‘긴장성’ 없이 만들기는 어렵다. 너무 느슨한 구조라면 채널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가수다’가 착한 프로그램은 아니다. 가혹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에서 7등으로 탈락해도 여전히 가수다. 이를 가수의 자존심 문제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제 음악 소통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대중이 좋아할만한 노래를 담은 CD와 뮤직비디오를 깔아놓기만 하면 100만장 이상 팔리는 시대는 이미 조성모의 4집에서 마감됐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전문기자> wp@heraldm.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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