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기의 신' 최민식이 작가 김수현·노희경을 만나면

[엔터미디어=배국남의 눈] “얼마 전 한 후배도 이것 때문에 문제가 있었는데 쪽대본과 제작환경 때문에 너무 힘들어 매니저가 도망갈 정도였다. 장진 감독과 연극 ‘택시 드리벌’ 에 대한 6, 7시간의 대본연습과 분석을 했는데 너무 초조하게 느껴지더라. 그 순간 뭔가 잘못 됐다고 생각했고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배우 최민식이 지난 6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에 출연해 드라마 출연을 왜 안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드라마 출연 안하는 이유로 이혼, 부상과 함께 꼽았던 것이 바로 ‘쪽대본’으로 대변되는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이다.

배우 최민식이 지칭한 후배는 한예슬이다. 한예슬이 지난해 8월 KBS 드라마 ‘스파이 명월’ 촬영도중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을 지적하며 무단으로 촬영펑크를 내 드라마가 결방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촬영지각 등 불성실한 촬영태도, 연기력 부족, 스타권력화 등 한예슬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저의 상황이 얼마나 어렵고 열악한지 모든 국민들이 알아주셨으면 했다. 저 같은 이런 희생자가 다시는 생기면 안 된다고 저는 굳게 믿는다. 다른 관계자들과 많은 분들께 피해를 주고 어려움을 준 것에 대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로 개선되지 않을 이런 상황 때문에 저는 제가 옳은 일을 했다고 믿고 싶다”라는 한예슬의 말이 일정부분 공감을 얻은 것은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의 심각성과 문제점에 대해 연기자나 시청자 모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시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평가받는 최민식이 드라마를 안 하는 이유로 꼽았고 한예슬이 문제 제기를 하며 촬영장을 박차고 나가게 했던 드라마 제작환경은 한예슬 사태 이후 변화가 있을까.

전혀 변화가 없다. 아니 더 심각해졌다. 지난해 12월부터 종편의 가세로 드라마 편수 제작이 늘면서 드라마 제작환경이 더욱 더 열악해졌다는 것이 연기자, 제작자, 스태프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여전히 쪽대본은 횡행하고 배우들의 건강과 체력을 위협하는 휴식 없는 촬영의 강행군 등 생방송 드라마 제작환경은 개선은 커녕 더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사와 제작사로 인해 더욱 열악해지고 있는 드라마 제작환경은 우리 드라마의 완성도와 질을 추락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다. 쪽대본 등으로 배우들이 철저히 캐릭터를 분석하고 충분히 대사나 상대배우와의 연기호흡 등을 연구하거나 연습하지 못해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드라마의 질 저하로 직결되고 있다.

“촉박한 방송일정에 밀려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주일 내내 촬영을 한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는 암묵적인 강요가 횡행하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연습하고 연구하지 못함으로써 드라마의 질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방송연기자협회가 한예슬 사태 직후 발표한 성명서의 일부다.

드라마의 열악한 제작환경의 악화는 전적으로 방송사와 제작사의 구조적인 문제로 촉발되고 있다. 방송사와 제작사의 문제로 인해 갈수록 힘들어지고 열악해지는 드라마 제작환경 속에서도 작품의 완성도를 위한 치열한 노력과 책임감으로 쪽대본을 단 한 번도 내지 않은 작가가 바로 김수현과 노희경이다.




완성도 높은 드라마로 시청자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했던 김수현과 노희경은 연기자와 스태프들이 오롯이 드라마에 전념할 수 있도록 미리 완성된 극본을 넘기고 있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두 작가의 작품이 일정 정도의 완성도를 유지하고 연기자들의 연기력과 연기조화가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이같은 두 작가의 치열한 작가정신과 태도 때문이다.

김수현 작가의 작품을 많이 소화한 중견 연기자 김해숙과 이순재는 “오랜 시간 최고의 드라마를 집필한 김수현 작가와 함께 작업을 했는데 단 한 번도 쪽 대본을 준적이 없다. 완성된 극본으로 충분하게 연습을 해 드라마에 임하니까 연기자도 드라마도 보기 좋은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 7일 끝난 종편 jTBC 드라마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의 주연을 맡은 한지민은 “노희경 작가와 작업하면서 완성 극본이 방송 훨씬 전에 나와 준비할 시간이 많아 너무 좋았다”고 말했고 ‘꽃보다 아름다워’의 고두심은 “노희경 작가가 촬영 직전 5~6회 먼저 극본을 주는 것을 보고 놀랐다. 촬영당일 쪽대본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5~6회 극본을 미리 주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쪽대본은 작가의 자존심을 상실한 처사다. 정말 심각한 문제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한 작품에 매달린 사람(연기자와 스태프)이 얼마나 많은가. 작가가 그 사람들에 폐가 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작가가 다른 사람을 고생시킬 권한은 없는 것이다”라는 김수현과 “극본 마감이 늦으면 연기자를 비롯한 수백명 사람들이 고생한다. 방송 전 개미와 같이 극본을 같다. 방송을 안 할 때도 극본을 하루에 한 줄은 쓴다. 대체적으로 드라마 방송 전 극본의 절반 혹은 3분2는 완성하는 경우가 많다”라는 노희경 같은 작가가 있기에 제작환경의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 드라마가 진화하는 것이다.

만약 최민식이 김수현과 노희경 같은 작가를 만났다면 드라마를 하지 않는다고 말을 했을까?


칼럼니스트 배국남 knbae@entermedia.co.kr


[사진=SBS, 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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