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품달’ 김수현, 어떻게 중장년층까지 사로 잡았나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김수현(23)에 대한 열광이 엄청나다. ‘드림하이’의 송삼동 때보다 훨씬 강하다. 그 매력은 애인줄 알았는데 남자라는 점이다. 유승호는 귀여운 (국민)남동생이다. 하지만 김수현은 소년 얼굴을 가진 남동생이면서도 제법 남자 스멜이 난다.
 
여기에다 판타지를 극도로 올려놓았다. MBC ‘해를 품은 달’는 사극순정만화요, 사극판 ‘가을동화’쯤 된다. ‘가을동화’에서 송승헌의 등에 업혀 죽은 송혜교, 이들이 사극으로 환생해 시즌2를 찍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요즘 사람들은 ‘반전캐릭터’에 열광한다. ‘무한도전’도 정준하 노홍철 정형돈 등 ‘반전’ 캐릭터로 인상을 남긴 적이 있다. 김수현은 얼굴 자체가 반전을 내포하고 있다. 김수현이 맡고 있는 왕인 이훤은 가벼움과 진중함, 영특함, 유머스러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비주얼은 미소년이지만 이렇게 복합적인 캐릭터다. 대체적으로 이렇게 설정된 왕은 바보스러운 면을 지니고 있는 법인데 이훤은 그렇지 않다. 김수현은 내면 연기도 얼마든지 해내기 때문에 이훤이라는 캐릭터는 제대로 소비되고 있다.

이훤이 월(한가인)에게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가 그 아이인지 그저 너인지 혼란스럽다. 내가 혼란을 잠재울 때까지 이 감정이 뭔지 알 수 있을 때까지 내 앞에서 멀어지지 말라”고 했는 때는 ‘완전 남자’다. “어명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어서 물러나거라. 당장”이라고 소리 칠때는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또 “내가 잘 생긴 건 잘 안다만 그만 쳐다보거라. 게다가 일국의 왕이기까지 하니 얼마나 멋있겠느냐”라고 말할 때는 ‘자뻑’의 귀여운 어린 왕으로 다가온다.
 
많은 궁녀를 거느릴 수 있는 일국의 왕이 8년 전 죽은 한 여자만을 여전히 사랑하고 중전과는 합방도 거부하는 순정을 지니고 있다. 멋있다. 하지만 그는 과거에 빠져 매일 술에 취해 망가지지는 않는다. 어린 왕이지만 냉철하고 명석한 두뇌로 궁궐의 권력을 장악한 능구렁이 같은, 노회한 외척세력들과 외로이 싸워나간다. 제대로 된 ‘순정마초’다.

소녀들이 김수현을 좋아하는 건 당연하다. 판타지 남친으로서 최고의 남자다. 하지만 중년 여성들도 김수현을 좋아한다. ‘미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역시 아이구나’라고 하면 중년 여성들이 오랫동안 좋아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아이의 모습이지만 속은 성인이고 때로는 카리스마도 드러나는 ‘남자’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게다가 ‘해품달’은 순정만화풍 픽션사극이지만 분위기는 가볍지 않고 진중한 맛이 있어 40~50대 시청자들이 보기에도 간지럽지 않다.



시청자들은 명품 아역, 여진구(훤)와 김유정(연우)에게서도 설렘과 절절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성인으로 바뀐 지금 김수현은 여전히 그 감성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궁에서 월담하다 만난 연우와의 과거를 회상하고 그리워할 때는 보는 사람도 절절해진다. 하지만 아직 김수현과 성인 연우인 한가인과의 ‘케미’(조합)는 시청자들이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렇게 블링블링한 사극에 이미 늙은(?) 한가인이 들어간다는 자체가 용납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마음 아파하는 이훤을 보여주면서 김유정이 더블캐스팅처럼 한 번씩 등장하는 것도 한가인에게 쉽게 감정이입하기 힘들게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한가인은 연우가 아닌 무녀 ‘월’을 연기한다는 점에서 시간은 어느 정도 벌었다고 볼 수 있다. 한가인이 기억상실에서 돌아와 연우가 되는 시점에서 시청자들이 보여줄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한가인은 초반 감정이 실리지 않는 대사 처리를 지적받았지만 점점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애초부터 성인 연우 역은 여배우들이 부담스러워했다. 시놉시스를 받아본 여배우들이 아역 분량이 너무 길다며 난색을 표명했다. 20부작중 아역이 6회까지 나온다면 이를 이어받는 성인이 힘들다는 것이다. 김수현 덕에 ‘아역의 저주’ 없이 아역에서 성인으로 자연스럽게 넘어왔다. 하지만 사극 출연이 처음인 10년차 배우 한가인은 더욱 힘들어졌다. 한가인 입장에서는 성인 왕이 지진희였다면 부담이 덜했을 것이다. 남자주인공 라인은 ‘뿌리 깊은 나무’의 송중기-한석규 라인처럼 아역과 성인 교체가 잘 이뤄졌지만 여주인공 라인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김수현이 처음 등장한 한 회만 보고 한 케이블 채널에서 마련한 여배우 연기력 논란에 대한 대담에 참가한 적이 있다. 한가인이 어색한 연기력으로 욕을 많이 먹고 있는 상황을 얘기하면서 김수현도 사극체 대사가 조금은 어색하게 들릴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수현이 처음 봤을 때는 대사를 일정한 톤에 실어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김수현은 이후 바로 자신의 옷을 입은듯한 안정된 연기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눈빛만으로도 시청자의 감정을 따라오게 하는 김수현의 연기, 나는 인정한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m.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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