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담동’, 종편이라 안타까운 시트콤인 이유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jtbc <청담동 살아요>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이 좋은 작품이 왜 하필이면 종편인가? 막장 코드가 있길 하나, 말도 안 되는 억지 설정이 있길 하나. 시트콤이긴 해도 어찌나 내용이 진국인지 매 에피소드마다 차곡차곡 마음에 담아 둘, 누구라도 한번쯤 생각해봐야 옳을 이야기들이 그득한 것을. 사람은 뭔가 맛있는 것, 좋은 걸 찾고 느끼게 되면 이리저리 알리고 싶은 법이 아니던가. 그러나 “<청담동 살아요>, 참 재미있어요. 한번 보세요.” 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니 이를 어쩌누. 어느 방송이냐고 묻는 질문에 jtbc라고 답을 하면 마치 ‘도를 아시나요’를 외치는 사람처럼 마뜩치 않은 시선이 태반이니 말이다.

인터넷 공간인들 다르지 않으리란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못할 에피소드 중 하나만 소개하자면 48화 ‘무슨 말을 하고 사십니까?’ 편. 우연히 시를 배우러 문화센터에 다니게 된 혜자(김혜자) 씨는 강사인 시인으로부터 지존파 두목이었던 김기환의 애달픈 일화를 전해 듣게 된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김기환이 미술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하자 담임선생님이라는 사람이 뺨을 후려치면서 ‘다음에는 훔쳐서라도 가져오라’ 하더란다. 혼이 나기 싫었던 김기환은 다음 시간엔 훔쳐서 가져갈 수밖에 없었고, 그게 도둑질의 시작이었고, 결국엔 끔찍한 범죄까지 저지르게 되었다는 것. 그때 그 말만 듣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며 사형 집행 전날 한탄을 했다는데 말을 얼마나 가려서 해야 하는지 새삼 일깨워주는 얘기이지 싶다.

시인은 회원들에게 그처럼 악 영향을 끼쳤던 말 말고 내 인생의 한 마디, 나를 좋은 쪽으로 변화시킨 한 마디, 내가 들었던 말 중에 가장 감동적인 말로 시를 써보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펜을 들고 앉았지만 안타깝게도 혜자 씨 뇌리를 스치는 건 감동적인 말이 아니라 마음을 아프게 했던 말들뿐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나 그건 진짜 못 잊어. 사흘 동안 코피 흘리고 기운 없어 앉아 있는데 뭐? 아프려면 집에 가서 아파?“
“5학년 때 고 얄미운 선생, ‘아 너 엄마 없지? 안되겠다.’”
“첫 직장에서 그 사장 놈이, ‘내 돈 먹기가 그렇게 쉬울 줄 알았어?’”
“결혼한 첫해 추석에 시어머니가, ‘니가 갈 친정이 어디 있니?’”
“그때 세 살던 집 주인 여자가, ‘남의 집 살면서 빨래 걷을 땐 주인 집 것도 걷어다 착착 개주는 게 예의지!’ 예의?”
“진주 미장원 그 여자가, ‘좀 계세요. 비싼 손님부터 해드리게.’”
“8번 버스 기사 고 놈이, 그것도 반말로, ‘아 대가리 치우라고! 백밀러 안 보인다고!’”






온종일 머리를 쥐어 짜내보지만 감동을 받은 말이 떠오르기는커녕 가슴에 대못을 박은 안 좋은 기억들만 왜 그리 많은지. 세상 살면서 감동스런 말이 이렇게까지 없었나, 혜자 씨는 이젠 억울하고 서운할 지경이다. 열 받은 걸 주제로 쓰라면 당장에 시 백편은 뚝딱 써내고도 남겠건만 어째 삶이 이 모양 이 꼴이냐며 속상해하는 사이 혜자 씨는 또 한 차례 무차별로 내뱉는 독설과 마주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인간은 희한하게 들은 말만 기억하지 스스로 쏟아낸 어마어마한 말들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성한다. 자신이 남들에게 상처 받은 만큼, 아니 어쩌면 훨씬 더 많은 상처를 주었으리라는 것을. 사실이 그렇다. 돌아온 감동이 없다면 내가 남에게 보낸 감동도 없다는 게 아니겠나. 배려나 양보가 점차 사라지는 요즘이 아닌가. 몸에 좋다는 걸 찾아 먹고, 몸에 좋은 운동으로 스스로를 관리하듯 좋은 말을 하며 살기 위한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지 싶다. ‘무슨 말을 하고 사십니까?’ 당장에 메모지에 써서 붙여둬야 되겠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그림 정덕주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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