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 2세와 결혼하는 법? 어렵지 않아요!

[엔터미디어=배국남의 눈] “잘 생기고 돈 많은 재벌 2세와 결혼하려면 우선 여자는 ‘지․ 옥․ 고’ 즉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살아야 해요. 그리고 재벌 2세와 함께 가끔 길거리에서 오뎅과 순대, 떡볶이를 먹어야 해요. 재벌 2세가 싸가지 없는 행동 할 때 뺨 한대 때리고 명품 선물을 해도 의연하게 거절하면 되요. 그럼 재벌 2세와 결혼할 수 있어요.”

만약 재벌2세와 결혼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을 때 KBS ‘개그콘서트-사마귀 유치원’ 일수꾼 최효종은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재벌 2세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들이 홍수를 이루지만 이들 드라마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남녀 주인공들의 성격과 행태를 천편일률적으로 그리기 때문이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부터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보스를 지켜라’ 오는 3월 방송할 ‘패션왕’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 초반 트렌디 드라마의 등장과 함께 본격화된 재벌2세 주인공 드라마는 2012년 오늘까지도 안방을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드라마의 주인공의 모습은 연기자만 다를 뿐 성격과 외양은 변함이 없다.

한 매체 조사에 따르면 2011년 1월부터 9월까지 KBS, MBC, SBS등 방송 3사에서 방송한 월화·수목 미니시리즈와 주말·일일·아침 드라마 47편(총 53편 가운데 사극 6편 제외)중 재벌2세나 재벌2세에 준하는 남성이 제1, 2 주인공으로 등장한 드라마가 무려 72%인 34편에 달했다. 그야말로 일일 드라마에서 주말드라마, 미니시리즈까지 재벌 2세가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드라마는 재벌2세 공화국이 된지 이미 오래다.

경기침체와 고용 없는 상황이 장기간 전개되면서 88만원 세대로 통칭된 알바생과 비정규직 사람들이 쏟아지고 돈이 없어 연애도, 결혼도, 그리고 자녀도 포기한다는 ‘삼포세대’, 집을 가지고 있지만 늘 빚에 허덕이는 ‘하우스 푸어족’, 결혼과 함께 막대한 채무에 숨막혀 하는 ‘허니문 푸어족’들이 현실의 모습이 되고 있다.

반면 일감 몰아주기,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골목상권 장악하기 등으로 재벌 2세들은 점점 더 배를 불리고 성장의 과실을 독점한 재벌들은 최소한의 사회적 의무마저 외면한 채 오로지 무자비한 자본의 탐욕의 증식에만 혈안이 돼 있다. 우리사회가 1%의 가진 자들의 공화국으로 전락하면서 1%에 대한 99%의 이유 있는 비판과 비난, 항의가 쏟아지고 있다. 그동안 악화일로를 걷던 재벌 폐해와 행태에 모르쇠로 일관하던 뻔뻔한 정치권은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표를 구걸하기위해 갑자기 재벌개혁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기대도 하지 않지만 이 나라 국민으로서 법과 의무는 제대로 지켜야한다는 최소한의 의무마저 외면한 채 편법과 불법을 동원해 돈벌이에만 혈안이 돼 있는 일부 재벌과 재벌2세들 행태는 이제 전 국민의 비판대상이 되고 있고 이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실에서의 이러한 재벌과 재벌2세의 모습은 안방에서 방송되는 수많은 드라마에선 보이지 않는다. 1990년대 초반 생겨난 트렌디 드라마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재벌과 재벌2세들은 20여년 동안 수많은 안방 드라마를 점령했다. 현실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99%의 일반 서민들은 드라마 속에서도 배척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대부분 드라마는 오로지 재벌 2세로 대변되는 1%의 가진 자들의 세상만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드라마에선 재벌로 대변되는 1%를 현실성 있게 그릴까. 전혀 그렇지 않다. 드라마의 재벌2세 주인공 캐릭터는 한결같이 외모는 출중하고 성격은 조금 까칠하며 집안의 거센 반대에도 계급과 신분을 뛰어넘으며 가난한 여성과 지순한 사랑을 일궈가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재벌 2세 드라마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 모습을 하고 있다.

99%의 사람들을 그리는 모습도 현실성과 개연성 없기는 마찬가지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 살아가는 가난한 여성으로 이시대의 최고의 힘을 가진 자본의 화신 재벌2세에게도 당당하지만 이내 남자에 목숨 거는 여자로 돌변한다. 재벌 2세 드라마 속에선 여주인공이 사는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은 현실의 곤궁함과 고단함은 완벽하게 거세된 채 신분을 뛰어넘는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 장소로만의 의미를 드러낼 뿐이다.

모든 드라마가 모두 현실성과 리얼리티를 갖춰야하는 것은 아니다. 극적 재미나 흥미를 위해 현실성 없는 캐릭터도 스토리도 필요하다. 더 나아가 판타지도 필요하다. 하지만 하나같이 똑같은 모습으로 그것도 리얼리티나 개연성 없는 재벌2세 그리고 가난한 여성이 그려지는 것은 문제다. 더 나아가 현실 속 모습과 너무 다른 왜곡된 모습의 획일화는 현실 속 사람들의 인식을 질곡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그의 저서 ‘프리 라이더’ 등을 통해 “실제 한국 재벌 2, 3세들은 경영 능력을 충분히 검증 받지 않은 상태로 소수의 지분을 가지고 그룹을 경영하면서 탈,불법적인 방법으로 탈세를 한다. 제대로 상속세, 증여세 등을 내지도 않으면서 막대한 특권층 지위를 세습하고 있다. 한국 재벌가와의 사랑을 다른 드라마가 온갖 세금 탈루와 공적자금 유용 등 추악한 일들을 저지른 무임 승차자, 일부 재벌들을 미화해 이들에 대한 폐해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마취효과가 큰 문제다”지적한다.

물론 시청자의 지적수준, 교육정도, 경험, 연령, 가치관, 성별, 지역, 빈부계층 등에 따라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의 정도가 다르고 드라마 해독방식과 의미수용도 다양하다. 하지만 수많은 드라마 속에서 획일적으로 재현되는 것들은 현실 속 사람들의 인식을 잠식하며 현실을 재는 잣대 역할을 하게 된다. 드라마가 디자인한 시선으로 세상과 현실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이다.

20년 동안 우리 안방을 지배해온 재벌2세 드라마들과 돈, 학력, 외모 등 물화된 조건이 지배하는 2012년의 사랑과 결혼시장이 무관한 것일까.


칼럼니스트 배국남 knbae@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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