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주위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피해 학생인 친구, 혹시 내성적이세요? 본인도 성격적으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그런 문제점들이 없지 않아 있죠? 그러면은 그 친구들을 니가 왕따를 한번 시켜볼래?”

- Story on <이승연과 100인의 여자>에서 117 상담원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내 귀와 눈을 의심했다. “니가 왕따를 한번 시켜볼래?” 이름도 거창한 ‘학교 폭력 신고 상담 센터 117’ 상담원의 상담 내용이란다. 굳이 좋은 쪽으로 돌려 생각하자면 ‘네 쪽에서 세상을 왕따 시키는 건 어떻겠느냐’는 조언이었을까? 그러나 정신과 전문의에 따르면 상담에 있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말이 ‘네 잘못이 아니다. 네가 못나서, 네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라는데 상담의 기본도 되어 있지 않은 상담원은 너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일관했다. 제작진이 추궁해본 결과 자격증 소지 여부도 불투명했으며 센터를 직접 방문했을 당시 전화기 여섯 대는 모두 통화 거부 상태. 바로 그 순간, 위기에 처한 한 아이가 도움을 얻고자 애를 태우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117 상담센터의 잘잘못을 따지고 들자는 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임시방편의 대책들이 양산해낸 폐해가 아니겠냐는 얘기다. 들끓는 여론을 잠재울 요량으로 시설이나 제도를 부랴부랴 만들었지만 전시행정에 불과한 터라 실제로는 인력이며 시스템, 재원이 턱 없이 부족한 상태. 방청객으로 출연한 한 교사는 학교에도 상담 교사가 배치되어 있지만 실제로 학생이 상담 신청을 하면 몇 달씩 기다려야하는 실정임을 증언했다. 하기야 누가 누구 탓을 하겠는가. 너나 할 것 없이 무심했던 우리 모두의 잘못인 것을. 방송을 보는 내내 아이를 다 키웠다고 남의 집 불구경하듯 바라봐온 내 자신을 반성했다. 과연 남의 일일까? 내 아이가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겪게 될 일일 수도 있는데?

무엇보다 가슴에 와 닿았던 건 패널 김태훈의 말이다. “우리 아이가 피해자일 수 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시각을 바꿔서, 우리 아이가 가해자일 수 있다는 시각에서 생각을 해야 문제가 풀리죠. 피해자 입장에서 출발하면 해결은 치료 밖에 없어요. 가해자 입장에서 출발해야 예방이 되는 거예요.” 맞는 얘기다. 얼마 안 있으면 3월,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폭력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하고 있지 폭력을 저지르는 아이가 될까, 그 점을 두고 노심초사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때려서 문제가 일어나면 다 책임져 줄 테니 맞고는 오지 마라’는 말을 일삼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폭력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 뒤에 폭력을 수수방관해온 부모들이 존재하는 건 아닐는지. 실제로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이유미 단장에 의하면 가해자 부모가 자녀의 폭력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예가 훨씬 많다고 한다. 아이를 보호한답시고 폭력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겠지만 아이는 자신을 위하는 마음일지언정 부모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잘 알기에 뉘우침이 없고 따라서 악순환이 계속 될 수밖에 없다고.

양재진 정신과 전문의 또한 부모의 책임을 강조했다. “죄책감을 느끼려면 양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양심이라는 건 가정교육 내에서 만들어지는 겁니다. 해서 괜찮은 것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가려주는 게 어른의 역할인데, 어렸을 때는 그런 역할 없이 무조건 ‘아이고 우리 딸, 우리 아들’하며 키웁니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나면서, 부모와 자식 사이에 대화를 나눌 시간이 점점 없어지면서 초자아 즉, 우리에게 규범, 규칙, 도덕을 알려주는 양심이라는 정서가 제대로 형성이 안 되는 거죠.” 이젠 내 아이가 당할 피해만 걱정할 것이 아니라 혹시 내 아이가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는 아닌지 지켜봐야할 시점인 것이다. 나라가 제도적 장치를 갖춰주길 기대하기에 앞서, 부모들이 각기 제 역할을 다하지 않는 한 폭력 근절은 물론 재발 또한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새겨야 옳지 싶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사진=Story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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