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들의 만찬’, ‘대장금’을 기대했는데..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뜨거운 한류 열풍에도 불구하고 세계인에게 아직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해 아쉬운 한식. 그래서 요리를 두고 경쟁하는 두 여성의 이야기 MBC <신들의 만찬>이 <대장금>의 뒤를 이어 우리 한식 이야기를 다시금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어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8회까지 방송된 현재 애당초 앞세웠던 한식은 그저 홍보용 겉치레에 불과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모락모락 일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나. 흔하디흔한 동네 밥집도 아니고 명색이 국내 최고의 전통 한식당이거늘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이들이라면 결코 용납되기 어려운 실수들이 수시로 발견되는가 하면 그다지 의미도 없어 보이는 ‘천상식본’을 두고 벌이는 모함과 암투로 세월을 낭비하는 중이니 말이다. 이름도 거창하게 ‘명장’이라는데 도대체 명장다운 솜씨는 언제 제대로 구경을 하게 될는지 원. 지금쯤이면 요리 한두 가지가 화제가 될 법도 한데 감감 무소식이니 답답하지 않은가.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아쉬운 건 흥미를 끌기 위해 보태진 출생의 비밀이라는 식상한 설정이 마치 식품첨가물 MSG가 음식 맛을 해치듯이 한식이라는 소중히 여겨야 옳을 주제를 흐려놓고야 말았다는 사실이 아니겠나.

이런저런 안타까움들 속에 그나마 다행인 건 주인공들의 연기다. 세간의 화두인 연기력 논란을 찾아보기 어려움은 물론 오히려 성유리를 비롯한 젊은 연기자들의 연기 변신이 이 드라마를 주목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나 긍정적이면서도 실수만발인 캔디형 인물 고준영을 연기하는 성유리는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잘 살려 억지스럽지 않은 허당 캐릭터를 완성해냈다.

그렇다고 망가지는 연기에만 능한 것도 아니다. “나 혼자 잘 살았는데, 나 혼자도 다 잘했는데 자꾸 기다리게 되잖아요. 사랑하는 사람 있는 거 빤히 알면서도 자꾸 모른척하고 싶고.” 재하(주상욱)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순간 보인 애절한 눈물에서 더 이상은 아이돌 출신 연기자라는 꼬리표가 느껴지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반갑고 대견한 일인가. KBS2 <쾌도 홍길동>으로 가능성을 인정받기 시작한 그녀가 SBS <태양을 삼켜라>와 KBS2 <로맨스 타운>을 거치는 사이 자신만의 연기 색을 확실히 갖게 된 것이다.

그런가하면 능청맞으면서도 속 깊은, 키다리 아저씨와 같은 따뜻함을 보이며 쉼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주상욱. SBS <자이언트>에서의 가슴 서늘한 눈빛이며 OCN <특수사건전담반 TEN> 때의 민첩함은 온데간데없으니 어찌 칭찬을 아니 할 수 있겠나. 연기 변신으로 말하자면 이상우 또한 뒤지지 않는다. 전작 SBS <천일의 약속>에서 우직스러울 정도로 사촌여동생을 배려하여 뭇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가 이번에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때로는 나쁜 남자의 향기를 풍기기까지 하며 또 다시 여성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세 사람에 비해 이력이 짧은 서현진 역시 지난 해 MBC 8.15 특집 드라마 <절정>과는 차별되는 연기를 보이며 나날이 발전 중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젊은 연기자들의 선전에 비해 미흡하게 느껴지는 건 의외로 중견 캐릭터들. 워낙 토를 달 필요가 없는 연기자들인 만큼 연기 면에서야 흠잡을 구석이 없지만 과연 ‘명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설정인가 의구심을 품게 하는 부분들이 꽤 있다. 일단 머리며 옷차림이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리랑 4대 명장 성도희(전인화)는 요리 연구가라기보다는 혼주 화장을 막 마친 것 같은 모양새를 고수하는가 하면 라이벌 백설희(김보연)는 늘 파티에 초대라도 받은 양 성장한 차림이지 않은가. 성도희의 경우 신부 어머니가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만 살짝 걷어 올린 느낌이랄까?

지난주에는 거기에 두 사람의 스승이자 3대 명장인 선노인(정혜선)까지 가세하니 결혼식장이 따로 없었다. 더구나 대내외적인 행사 참석이 아닌 요리 심사를 위해 아리랑 주방에 들어선 상황인지라 지나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었는데 자신이 맡은 인물이 주방이 일터인 요리 연구가라는 사실을 하시라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굳이 <대장금>의 예를 들자면 한상궁(양미경)과 수랏간 최고 상궁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여야 했던 최상궁(견미리), 그녀는 권력 다툼에 휘말려 옳지 않은 길을 걷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지만 음식에 대한 열정만큼은 한상궁과 장금이 못지않지 않은 인물이었지 않나. 한복의 아름다움도, 세월을 거스르는 미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한식 요리에 대한 열정과 의지, 그리고 음식에 대한 철학이 곳곳에서 드러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쨌든 <신들의 만찬>은 한식 이야기이니까.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그림 정덕주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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