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품달’ 한가인, 밋밋한 연기 두고두고 후회할 것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사극에 로맨스를 차용하면 현대 멜로물과는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 왕이 거주하는 궁궐이라는 정치공간은 의외로 외로운 곳이고, 신분차이의 벽이나, 절대권력자처럼 보이는 왕이 무려 8년이나 중전과 합방을 거부하는 상황 등은 현대극에서는 만들기 어려운 장치다.

‘해를 품은 달’의 김수현은 그런 상황에서 마음껏 연기를 펼치며 여성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을 최고조로 이끌어내고 있다. 대왕대비 윤씨 김영애와 성수청 국무 장씨를 맡은 전미선의 안정된 명품 연기는 극의 무게를 잡아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중전인 김민서마저도 8년전 교태전의 주인인 연우가 돌아온 데 대한 불안한 모습이 평소 눈에 힘을 주는 연기 습관과 잘 매치돼 광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멘탈 붕괴' 연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하지만 연우와 월을 연기하는 한가인은 시청률 40%를 넘긴 드라마의 명성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첫 등장한 7회부터 연기력 논란이 일어나더니, 촬영강행으로 “피부가 썩어가고 있다”고 푸념을 털어놔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감정이 실리지 않는 한가인의 연기는 시청자들의 큰 불만사항이다. 지금은 왕(김수현)이 월이 8년 전 죽었던 연우라는 사실을 수사를 통해 알아차리고 한가인에게 다가가는 시기인 만큼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의 감정을 거세게 몰아붙이는 시기다. 애절함의 극치에서 감정이 표현돼 궁중로맨스가 급피치를 올려야 하는 타이밍이다.
 
하지만 한가인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을 뿐 감정이 제대로 실리지 않은 것 같은 연기를 펼치고 있다. 본인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고 있을지 모르지만, 두 사람의 감정이 확실하게 타오르면서 교류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김수현과 한가인간의 '조합'(케미)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잘 어울려야 감동이 살아날 수 있는 시점이지만 이 부분이 약하다. 한가인은 연기 10년차이지만 사극을 처음 하다보니, 왕과 양명(정일우)을 바라볼 때 시선 처리가 자연스럽지 않고, 발성과 톤 모두 사극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최근 구혜선이 늘 똑 같은 연기 패턴으로 지적을 받았다. 드라마는 달라졌는데 연기 패턴은 똑같았기 때문이다. 한가인도 마찬가지다. 현대극에서 사극으로 바뀌고, 상황과 분위기, 극적 맥락이 달라지면 연기도 그에 따라 변화해야 하지만 별로 달라지는 것 같지 않다.

한가인이 많은 시청자들의 질타와 지적에 주눅이 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29일 방송된 17회에서 김수현은 한가인과 두 차례나 키스를 했는데 한가인의 지나치게 수세적인 연기로 그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 없었다.
 
한가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어차피 욕 먹을 각오는 해야 한다. 그러므로 한번이라도 감정을 제대로 실어 불꽃 연기 투혼을 발휘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끝나고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30대 유부녀가 20대 초반의 총각을 넘본다고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연기가 아닌가?

김수현은 지난 1일 연우의 죽음에 일조한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피붙이란 사실을 확인하고 폭풍 오열연기를 펼쳐 많은 칭찬을 받고 있다. 한가인도 한번이라도 시원하게 연기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주고 물러나야 한다. 밋밋한 연기는 두고두고 후회될 것이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m.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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