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닝맨’, 어떻게 일요 예능 지배자로 진화했나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SBS ‘런닝맨’은 안정적인 일요예능이 됐다. 게스트에 의존하거나 특별한 장치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상시 시스템만으로 인기 예능이 됐다. 1년 반이 흐른 지금 동시간대 최고의 예능 콘텐츠로 발전했다.

그 상시 시스템이라는 것은 초기에는 특정 공간을 뛰어다니며 나열돼 있는 단순한 게임들을 계속 수행하면서 제작진이 숨겨놓은 런닝볼을 찾았고, 멤버의 등 뒤에 붙은 이름표를 뜯어 개인전, 또는 팀전의 승자를 가리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지능적인 심리게임으로 바뀌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단계별로 물고 물리는 접전을 펼치게 된다. 그래서 방송하는 80분 내내 흐름과 분위기가 처지지 않고 긴장도를 유지할 수 있다.  

최근 이다해가 게스트로 출연한 ‘스파이 게임’에서는 1~2명의 스파이를 심어놓던 종전방식을 바꿔 7명의 멤버 전원에게 스파이로 만들어 게스트인 이다해에게 스파이 전원을 아웃시키는 게임방식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멤버들도 자신만, 또는 멤버 중에서 한 명 정도만 스파이가 있을 것으로 알고 전원이 스파이임을 모르기 때문에 예측불가한 게임이 펼쳐졌다. 유재석은 끝까지 이다해가 적인 줄 모르고 충실하게 이다해의 오른팔 역할을 수행해, 미모로 학력 등 모든 걸 속였던 드라마 ‘미스 리플리’ 이다해에게 이용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런닝맨’은 단순 게임버라이어티에서 스토리를 갖춘 미션을 부여하고, 멤버들이 각자 풀어나가는 지능적인 심리게임으로 진화했다. 그래서 두뇌싸움은 더욱 치열해졌다. 단계별 미션들을 푸는 과정에서 어떨 때는 두뇌를 활용해야 하지만, 몸을 써야 할 때도 제법 많다. 스파이게임에서는 물이 든 풍선을 많이 터트려야 하고 오지호가 게스트로 참가한 ‘보따리 레이스’에서는 팀별로 모래사장에 묻혀있는 자신의 팀원 이름이 적힌 골프공을 빨리 찾아야 하는 것 등이다.

제작진의 개입은 최소로 하면서 출연자들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예상하지 못하는 대로 가는 게 ‘런닝맨’의 매력이다. 부산 앞바다의 유람선에서 벌어진 셜록홈즈 특집편에서 송지효가 숫자가 쓰여있는 메모지에서 힌트를 얻어 지석진이 범인 괴도루팡임을 알아내고 송지효와 김종국이 범인 제거에 성공한 것도 두뇌플레이를 감상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셜록홈즈편은 게스트인 윤도현과 김제동이 마치 대단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투입시켜 혼선을 빚게 함으로써 반전 스릴러를 방불케 했다.





초능력자 특집도 성공작이었다. 분신술을 지녀 ‘롤롤’과 함께 활보하던 개리는 송지효에게 잡혀 감옥에 갇혔지만 시간지배 능력을 활용한 하하 덕분에 살아나 공간지배자인 유재석과 경쟁을 벌여 우승한 것은 반전의 승부를 감상한 기분이었다. 개리는 우승 선물로 유럽여행을 떠났지만 유럽 여행지에서 했던 모든 일들이 또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는 바람에 여행을 만끽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추리하는 재미를 위해 희생했다고 보면 된다.
 
최근 송지효가 소속사 사장과 열애하는 기사들이 잇따라 나오면서 캐릭터와 관계의 위축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송지효는 혼자 빵빵 터뜨리는 멤버가 아니다. 개리와 ‘월요커플’뿐만 아니라 김종국, 이광수, 유재석 등 많은 멤버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캐릭터라 ‘런닝맨’의 위기가 오리라는 예상도 있었다.
 
하지만 열애설이 나온 이후 첫 방송에서 멤버들이 “러브라인이 필요한 시기”라는 말도 나왔고 개리도 3일 동안 술을 먹었다고 했지만 ‘월요커플’은 계속 유지될 전망이다. 오히려 리얼리티를 살리면서 변화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런닝맨’이 1년 반 동안 방송되는 사이 프로그램을 정착하게 만드는 데에는 나무와 숲 모두를 보는 ‘유혁’ 유재석의 공이 커지만, 다른 멤버들도 부지런히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김종국은 유재석의 독주를 견제하는 ‘능력자’ 캐릭터지만 간혹 과하다는 느낌이 날 때면, 이광수가 이를 눌러준다.

종국과 ‘호랑이와 기린’팀을 형성한 광수는 종국에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할 것 다 하고 무릎을 꿇는다. 광수는 때로는 지효와 때로는 종국과 ‘톰과 제리’ 관계를 만들어낸다. 광수는 ‘런닝맨’에서 비중상 결코 밀리지 않는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m.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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