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모른다’면서 잘하는 PD들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개그에 대해 잘 모른다”(서수민 PD) “여행에 대해 잘 모른다”(나영석 PD) “음악에 대해 잘 모른다”(김영희 PD)
 
세 PD들은 모두 개그, 여행, 음악에 대해 각각 잘 모른다고 말한다. 그런 그들이 최고의 개그 프로그램, 최고의 여행 버라이어티, 최고의 음악예능물을 만들었다.
 
이들이 잘 모른다고 한 건 겸손의 표현이 아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의 감성으로, 잘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뜻이다. 시청자중 대다수는 ‘잘 모르는 사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평소 여행도 하지 않고, 여행을 즐기지도 않는 나영석 PD는 여행전문가, 여행마니아를 대상으로 하는 여행버라이어티가 아니라, 1년에 한번, 또는 5~10년에 한두번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여행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했다.

나 PD는 “나는 어디를 가나 호기심이 생겼다. 여행전문가에겐 빤하지만 나에게는 신기한 게 많았다. 내가 여행전문가였더라면 ‘1박2일’은 다른 그림이 나왔을 것이다”면서 “일년에 여행을 한 번도 안가는 사람에게 ‘1박2일’ 같은 야생체험보다는 호텔을 가거나 패키지 여행이 좋을 수도 있다. 은퇴해서 시간이 있거나 여행을 제법 해본 사람에게는 ‘1박2일’ 같은 여행도 해볼만할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개그콘서트'의 서수민 PD도 전문가적인 관점에서 연출하지 않는다. 다른 PD에 비해 섬세하고, 깨알 같은 웃음을 추구한다는 차별성과 개성은 지니고 있지만 ‘개그박사' 행세를 하지 않는다. ‘개콘' 창설시 박중민PD밑에서 조연출을 2년이나 했고 ‘폭소클럽’과 ‘개그사냥’ 연출도 했다면 코미디 전문가나 다름없다. 그동안 몇 차례 만나서 대화를 나눠봤는데, 웃음과 개그, 코미디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도 어렵지가 않았다.



 
박성광은 ‘용감한 녀석들' 코너에서 “개콘 여자PD 진짜 못생겼어”라고 세 번이나 말했지만 서수민 PD는 “괜찮아요. 사실이 아니니까”라고 말한다. 이런 모습이 개콘 소속 개그맨들이 방송보다 더 무서운 것이 서수민PD의 ‘검사'라고 하면서도, 개그맨들이 누나처럼, 언니처럼 여기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개콘'에는 얼마전 ‘다큐 3일'에서 소개됐듯이 100여명의 개그맨들이 있다. ‘개콘'의 성공에는 선후배들이 호흡이 척척 맞아 돌아가는 시스템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서수민 PD는 개그맨중 누가 사랑에 빠졌는지, 어제 술 마신 사람은 누구인지, 요즘 행사에는 누가 자주 나가는지를 훤하게 꿰고 있다. 누나처럼, 엄마처럼 상담도 해준다. 개그맨들은 서수민의 ‘관리'를 받고싶어한다.

‘나는 가수다'를 만들었고, 새롭게 단장할 ‘나가수'의 연출을 맡을 것으로 보이는 김영희 PD도 음악을 잘 모른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가 예능PD로서 맡았던 프로그램들은 거의 공익예능, 버라이어티 예능, 콩트 코미디물이며 음악프로그램이 아니었다. 김영희 PD의 강점은 음악을 잘 모른다고 말하기 때문에 보편적인 정서와 감성을 중요시하는 데다, ‘나가수'가 성공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출연자 섭외에서 막강 파워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m.com


[사진=엔터미디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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