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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물건 확 버리고 싶어도 꾹 참는 까닭
기사입력 :[ 2012-03-17 15:40 ]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삶은 쓰레기를 만들다 떠나는 여정이라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너나 할 것 없이 어느 가정이든 쓰지도 버리지도 못한 채 이고 지고 사는 애물단지들이 꽤 있다. 철마다 한 번씩 큰 맘 먹고 정리 정돈에 나서보지만 얼마 안 있어 주인으로부터 외면당한 물건들은 또 다시 집안 이 구석 저 구석에 쌓이기 마련이니까. 박스 그대로 방치된 홈쇼핑 인기 상품이며, 비닐 포장도 뜯지 않은 클래식 음악 전집, 필요도 없고 마음에 들지도 않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담겼기에 차마 버릴 수는 없는 선물 꾸러미들, 정돈할 여력이 없어 뒤죽박죽 얽힌 인간관계처럼 삶의 흔적과 잔재들은 자꾸 늘어만 간다. 혼자 꾸려가는 살림이어도 정리가 버거운 판에 결혼이라는 절차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합쳤으니 오죽할까.

‘댁의 아내도 이사할 때 남편의 물건을 함부로 버립니까?’, 이번 주 SBS <자기야>에서 남편 대표 김성주가 제안한 토크 주제만 봐도, 또 출연자들의 공감어린 표정만 봐도 집집마다 이 문제로 얼마나 분란이 자주 이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필요 없는 물건들이 늘어가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난제는 아무리 사랑해서 만나 결혼한 사이여도 애물단지라고 여기는 품목만큼은 여간해서 일치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지 싶다.

한쪽은 무조건 버리려 들고 한쪽은 극구 반대에 나서고, 한 나라 대통령을 뽑는 중차대한 사안도 아니건만 까짓 물건 하나 버리면서 왜 그리 의견 일치를 보기가 어려운 건지. 내 모든 걸 소중히 생각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아내가 이사 때마다 매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신의 물건들을 내다버리는 통에 서운하다는 주장이었는데, 김성주로서는 평생토록 보관하고 싶은 소지품들을 아내 진수정 씨 쪽에서는 하찮게 본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러나 이건 화성인과 금성인처럼 판이하게 다르다는 남녀의 생각 차이라기보다는 기호와 취향의 문제가 아닐는지. 사람은 누구나 중히 여기는 부분이 각기 다르지 않나. 최대한 잘 먹는 게 우선인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보다는 옷차림이나 주거 환경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이 있듯이 추억이 담긴 낙방 당시의 입사지원서라든지 상장, 철 지난 옷들, 누렇게 바랜 갱신 전의 주민등록증 같은 과거의 기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모아둘 필요가 없는 물건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는 법. 따라서 살림을 주로 맡는 쪽이 아내여서 버리는 역할도 겸하게 되는 것이지 만약 남편이 살림을 한다면 그들 또한 다르지 않으리라.









자우림 멤버 구태훈 부부의 경우 남편은 딱 한번 쓰고 넣어둔 로봇 청소기가 불만이었고 아내는 단 한 차례도 쓰인 적이 없는 공구 세트가 불만이었으니까. 구태훈이 1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면 필요한 사람에게 양도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의 준말) 장터에 내놓겠다고 하자 아내 김영애는 명색이 혼수거늘 남을 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강하게 항변했는데 어찌나 억울했던지 눈물이 살짝 맺히기까지 했다.

여자 입장에서 보자면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기계가 닳을까 아까워서, 전기세가 아까워서 사용이 주저되었을 수도 있으련만,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면 시원스레 써보리라 마음먹었으련만 속 모르고 나서는 남편이 얼마나 야속했겠는가. 구태훈 역시 대부분의 남자들이 다 그렇듯 언젠가는 쓸 예정이라고 주장하면서 공구 세트에 대한 집착을 쉬이 버리지 못했다.

물론 프로그램이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이미 답을 알고 있지 않은가.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관계에서 사랑을 키워가고 건강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간격이 필수 조건이라는 사실을. 내가 아무리 싫어도 상대방의 취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걸 절대로 포용할 수 없다고 거부한다면 결혼 생활은 평탄하게 이어지기 어렵다. 나 또한 버리고 싶은 물건들이 숱하게 많다. 그러나 아무리 눈에 거슬려도 내 소유가 아닌 이상 결코 손을 대지 않으리라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오늘 이 시간 또 한 번 다짐해본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그림 정덕주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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