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의 트렌드]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예능 프로그램은 MBC ‘일밤-나는 가수다’다. ‘나는 가수다’가 방송되기 전과 방송 후의 변화가 확연하다. 음원차트에서는 아이돌그룹 빅뱅이 때 아니게 박정현과 이소라와 경쟁하고 있는 등 가창력이 뛰어나다는 기성 가수 7명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이들이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아이돌들의 춤과 노래가 왜소하게 보인다는 반응도 더러 나온다.

이들에게 어떤 노래를 부르게 하는 미션이 부여되고 서바이벌 형식에서 누가 탈락되는 지에 대해 스포일러가 돌아다니는 자체가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방증한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가수다’의 정체성 논란이 해결되지 않은 것 같다. 재능있는 기성가수들을 대상으로 가창능력을 평가해 등수를 매겨 줄세우는 방식이 ‘무리수’ ‘못돼먹은 프로그램’ ‘최악’ ‘무례’ 등으로 보는 견해가 여전히 기성가수들로부터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500여명의 청중평가단이 가창력만으로 이들을 평가할까? 오히려 취향으로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제작진은 전문심사위원이 아닌 일반인 평가단을 다양한 연령대에 걸쳐 골고루 배치했다. 가령, 정엽이 7위를 했다해서 정엽의 가창력을 7위로 보는 시청자는 거의 없다.

필자의 경우도 청중평가단과 비슷했다. 정엽이 ‘nothing better’를 부르면 가창력은 좋은 것 같은데 너무 천천히 불러 지루하게 느껴진다. 2배속으로 빨리 듣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늘어뜨리면서 부르는 게 잘 어울린다는 사람도 많다.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다. 정엽은 2회에서 트로트 ‘짝사랑’을 소울풍으로 재해석해 완전히 상황을 역전시켰다.

이소라, 정엽, 백지영, 김범수, 윤도현, 박정현, 김건모. 이들 일곱 출연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아무런 궁금증이 생기지 않는 가수들이라는 점이다. 백지영이 드라마 OST를 계속 히트시켜 조금 현재진행형 가수로 다가오지만 다른 가수들은 가창력은 좋을지 몰라도 현재로서는 대중이 궁금할만한 요소를 거의 갖추고 있지 않다.

가수가 노래만 잘 부르면 되지 무슨 궁금증과 이야기까지 갖춰야 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요소가 없다면 대중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대중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가수의 미래는? 말할 필요가 없다.



7명은 평소 가끔씩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곳에서 노래를 불러왔다. 그런데 노래 잘한다는 반응,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는 가수들에게 진짜 이야기를 만들어준다. ‘나는 가수다’의 이야기는 100% 리얼이다. ‘무한도전’과 ‘1박2일’ 등 소위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더 리얼하다. 가수들이 곡을 선택하고 편곡하는 미션의 과정이 모두 리얼이다. 재미도 있다. 그동안 한 번도 안보여줬기 때문이다.

예능은 결과보다 과정과 흐름이 중요한데, ‘나는 가수다’는 가수들의 이런 과정을 다차원에서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음악프로그램과 여느 버라이어티 예능은 가수의 노래와 입담만 보여준다. 반면 ‘나는 가수다’는 노래를 하기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를 훨씬 더 다차원적으로,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선곡과정에서 “이 곡은 내가 소화할 수 없어. 원곡자의 명예를 손상시킬지도 몰라” 등의 말을 하는 것 자체에서 가수가 단순히 노래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 이상을 보여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나는 가수다’를 보고 ‘뮤직뱅크’나 ‘음악중심’을 보면 시시해질 수도 있다.

오히려 ‘나는 가수다’는 버라이어티 예능임에도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음향 시설과 세션 등은 방송프로그램 제작용이 아니라 공연용을 겨냥했다. 혹자는 등수매기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걱정마시라. 순수예술하는 사람들도 콩쿠르에서 등수를 매긴다. 

물론 노래를 잘 부르는 모든 가수가 이 시스템에 들어와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가수다’는 현 음악 매체 환경에서 가수들과 대중을 소통시키는 하나의 장치요 방법이며 대안일 뿐이다.
 
과거 100만장 이상의 음반을 판 가수들도 이젠 팬과 새로운 소통법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소통법을 찾지 못하면 대중가수로서의 존재 기반이 흔들린다. 가수가 노래를 불러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계속 내놓을 수 없다. 하지만 가수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면 노래를 계속 내놔야 한다. 시인이 시집이 잘 알팔리는 줄 알면서도 시를 안내놓을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를 쓰지 않는 사람은 시인이 아니듯 노래를 안내놓는 사람은 가수가 아니다.

점점 잊혀지는 가수가 될래, 새로운 방식으로 노래하는 걸 선택할래?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대중문화전문기자 > wp@heraldm.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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