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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원전 위기, 취약성 경고에도 발생한 이유
기사입력 :[ 2011-03-18 10:48 ]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예고된 위기는 오지 않는다’고 한다. 경고등이 켜진 사안은 관련된 경제 주체와 정책 당국이 대비책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모든 법칙엔 예외가 있다’고 한다. 예고된 위기가 발생하기도 한다. 깜박이는 위기 경고등을 대다수 사람이 보지 못한 탓이다. 보지 못한 것은 눈 탓이 아니다. 사람이 닫은 마음 탓이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는 GE가 설계해 1960년대부터 만든 ‘마크1 원자로’ 방식을 채택했다. 마크1 원자로는 냉각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 내부의 핵 연료봉이 과열돼 원자로 격납용기가 폭발할 위험이 크다. 현재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2호기와 3호기는 격납용기가 손상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가압수형 원자로는 철과 콘크리트로 된 두꺼운 무덤 모양 용기가 감싸고 있다. 세계 원자로의 대부분은 더 안전한 가압수형이다.

마크1 원자로의 취약성은 이미 1972년에 지적됐다. 당시 미국 원자력위원회의 한 위원은 “마크1은 격납용기가 작아 수소 발생에 의한 폭발과 파괴에 더욱 취약하다”며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에서 “마크1 원자로의 연료봉이 과열돼 녹을 경우 원자로가 터질 확률이 90%에 달한다”는 경고가 나왔다.

위기가 터진 다음엔 물론 최선을 다 해야 한다. 하지만 머릿 속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 한다.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 원전을 가동하는 도쿄전력은 그러나 초기에 갈팡질팡하며 안이하게 판단하고 대응했다. 후쿠시마 원자로 1호기의 격납용기를 감싸고 있는 콘크리트가 폭발한 12일 도쿄전력이 밝힌 사실은 “원자로 1호기 근처에서 폭음과 하얀 연기가 기록돼 조사 중”이라는 것뿐이었다. 초기에 일본 정부는 사태를 장악하지 않은 채 도쿄전력으로부터 지연된 정보를 받으며 뒷전에 머물러 있었다.

일본 원전 사태는 원자력발전소라는 하드웨어와, 이를 운영하며 위기에 대응하는 발전소 및 정부가 맡은 소프트웨어 양측 모두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재앙에 미리 대비한 경우를 전한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딜로이트 투시의 CEO였던 윌리엄 파렛이 그렇게 했다. 2001년 뉴욕 9·11 테러 때 딜로이트 직원은 단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

원래 딜로이트는 세계무역센터의93~95층과 97~101층을 합해 모두 8개 층을 쓰고 있었다. 미국 딜로이트 전체 직원 2400명 중 반 이상이 여기서 근무했다. 1993년 2월 26일 12시가 조금 지난 시각, 빌딩에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9·11에 비하면 미미한 테러였지만 빌딩은 큰 혼란에 빠졌다.

파렛은 계단을 통해 지상 400m 높이의 사무실에서 지상으로 내려왔다. 1층에 이르기까지 세 시간 넘게 걸렸다. 파렛은 ‘다시 세계무역센터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사무실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마침 더 넓은 사무실이 필요하기도 해, 몇 년에 걸쳐 길 건너 세계금융센터로 이전했다. CEO의 민감한 촉수가 재앙으로부터 직원들을 구한 것이다.

일본 원전 위기는 진행형이다. 아직 최악의 사태에 이르진 않았다. 일본 정부와 자위대, 도쿄전력이 비상한 노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 사태를 수습할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 본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cobalt@joongang.co.kr

[사진 = 구글]

(참고자료)
IHT, Warnings over Fukushima-type reactors began in 1972, 2011.3.17
윌리엄 G. 파렛 지음, 양승우 옮김, 위기의 CEO, 중앙북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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