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장사 같은 김정운이 통하는 이유

[서병기의 대중문화 트렌드] 김정운 명지대 교수가 예능 프로그램을 섭렵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승승장구'>에 나와 웃음을 주었던 김 교수는 26일 <힐링캠프>에서 또 한번 의미 있는 웃음을 선사했다.
 
김 교수는 오랫동안 한국 남자, 특히 중년 남자의 삶의 문제를 지적해왔다. 의무와 책임만 있고 재미는 잃어버린 이 시대 중년 남자들에게 그 이유를 알려주고 처방전을 내리고 있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 이어 최근 내놓은 책 ‘남자의 물건' 등 그가 쓴 거의 모든 책들은 사는 게 재미없는 남자들에게 자그마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날 방송에서도 김정운 교수는 남자들의 물건으로 심리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마이크와 야구 방망이를 가지고온 김제동에게 “성적으로 억압된 부분이 아주 많다. 왜소함에 대한 불만들이 있다”면서 “이 물건들로 (억압을) 풀고 있다. 곁에 여인이 생기는 게 중요하다”고 처방을 내렸다.
 
김정운 교수는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문화심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그 대학에서 전임강사를 하며 13년간 지냈지만 얼핏 보면 약장사 같다. 근엄과 진지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지식을 엔터테인먼트화해 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지식에듀테이너’라는 것이다. 독일 유학 중 유럽 방송을 통해 지식을 재미있게 전달하고 보급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힌트를 얻었다고 했다.

김정운 교수는 특강을 시작하자마자 잘난 체부터 한다. 연예인만 나온다는 <승승장구>에 출연해 경쟁 프로그램인 <강심장>의 시청률을 눌렀다고 하고, SBS 재능기부강연 <지식나눔콘서트 아이러브[人]>에서도 4명의 강연자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이 나왔다고 자랑한다. 자신이 출연한 <힐링캠프>는 지난주 차인표의 반응이 너무 강해 시청률이 조금 하락했지만, 어쨌든 연예인 못지않은 예능감을 지닌 것만은 확실하다.
 
그의 외모는 지금처럼 파마 머리가 아니었다.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런데 꽤 리얼리티가 있다. 독일에 살 때 외로울 때면 음악감상실을 찾아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등을 들으며 외로움을 달랬다. 특강이나 방송할 때 입는 옷과 헤어스타일은 슈베르트를 본뜬 것이다.

그를 만나보면 저렇게까지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데에 놀라게 된다. 글쓰기와 말하기는 ‘통속'과 ‘교양', ‘막장'과 ‘예술'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주변 친구들과 찌질하게 놀던 모습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보여준다. 흡사 막장드라마를 보는 것 같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는 막장 드라마 못지 않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솔직하게 인정할 때 해결책과 개선책도 함께 생기는 법이라고 한다.

김 교수는 특급호텔에 가서 자고 나오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왜 그런지를 생각해봤다고 했다. 간접조명과 하얀 시트, 이 두 가지였다. 그래서 자기 집 안방을 그렇게 만들어봤더니 부부관계가 좋아졌다고 전했다. 이런 말들은 그의 실제 경험이라 더욱 와닿는다. 김교수는 자신이 불안과 외로움, 소심함, 열등감 등 한국 중년남성이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다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의 강연은 심각해질 틈을 주지 않는다. 계속 웃긴다. 그러면서도 맥락을 짚어준다. 재미있게 강의한다는 건 김 교수의 최대 장점이자 이 시대의 미덕이다. 김 교수는 중년 남자의 삶이 재미없고 외로운 이유는 자신의 이야기가 빠져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이기만 하면 정치인 욕하고, 연예인 가십 묻고, 매일 남의 이야기만 한다. 중년남자들이 골프에 빠지는 이유도 적어도 4~8시간 동안은 직장에서 하지 못하던 자기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고 이를 들어줄 세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성이 불안한 건은 재미를 잃어버린 생활때문이라는 사실도 강조한다. 소풍가는 것 하나만 예를 들어도, 여성은 과정을 즐길 줄 알지만 남자는 결과만 생각한다. 과정이 생략된 삶은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문화가 없는 한국중년남자는 크고 거창한 걸 찾게 된다.
 
그러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회적 직책과 명함이 없어진 상태에서도 자신의 의미를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일상의 소소함 속에서 나를 구성하는 이야기가 있을 때 비로소 삶은 즐거워진다.

이를 위해 김 교수는 자신만의 일상 의식, 즉 ‘리추얼'(Ritual)을 만들라고 조언한다. 국기에 대한 경례 같은 국가적 리추얼 말고, 개인적 리추얼을 가능한 많이 만들라고 한다. 노천카페에 혼자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셔 보고, 뒷산 약수터를 아들과 함께 오르며, 석양에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러 나가 보라고 한다.
 
자기만의 스토리가 담긴 특별한 물건을 가질 것을 제안하는 것도 그 물건에 대한 이야기가 곧 그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건을 매개로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접촉 결핍의 시대에 부부가 오래 살기 위해서는 많이 만지라고 조언한다. 룸살롱과 아이폰의 공통점도 ‘터치'다. 현대인의 접촉결핍을 모티브로 삼은 상술이자 마케팅이다.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말들을 들어봤지만 김정운 교수만큼 재미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듣는 사람의 마음속까지 파이프라인을 타고 흘러들어가게 하는 김정운 교수에게 한번 주목할만하지 않은가. 특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 ‘꼰대'가 되어가며 한 방에 훅 갈지도 모르는 불안을 느끼는 이 땅의 아저씨라면 더욱 그래야 할 것 같다.


칼럼니스트 서병기 < 헤럴드경제 선임기자 > wp@heraldm.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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