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욱 PD “그나마 진중권 씨가 있기 때문에…”
-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김병욱 PD 심층인터뷰2

[엔터미디어=조민준의 드라마 스코프] 방영 직전 김병욱 PD를 만났을 때, <하이킥3>를 통해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지원과 계상의 관계를 통해 그 주제를 풀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까 둘의 이야기는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미리 설정된 서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지원과 계상의 이야기는 100회 무렵에 이르러서야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지원과 계상의 관계, 그리고 하선과 지석의 러브라인 등 <하이킥3>의 굵직한 줄기들은, 이 시트콤이 마치 드라마처럼 사전에 얼개가 짜여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구체적인 이야기의 진행은 캐릭터의 성장에 따라 유동적이었을지언정, 중요한 거점들은 사전에 마련해 두고 있었다는 것. 종전의 시트콤처럼 캐릭터와 시추에이션보다는 사건의 틀을 더 중시한 <하이킥3>의 드라마적인 성격은 세트 공간 활용에서도 새로운 관점을 필요로 했다.

- 계상과 지원

“애초 지원의 이야기는 미리 설정해 두었고, 결말까지도 거의 염두에 두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이킥3>의 메인 테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질랜드 촬영도 미리 해둔 거였고. 그런데 계상과 지원 라인에는 실패한 부분이 있다. 20회까지 잘 진행되다 둘의 이야기가 끊어지고 100회 무렵에서 다시 살아난다.

이유가 있었다. 초반부에 논란의 직격탄을 맞은 것 중에는 ‘원조교제’도 있었다. 그러니까 초반에는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곡해만 돌아오니 많이 힘들었다. 당연히 원조교제 이야기가 아닌데다 <하이킥3>에서 가장 무게를 두고 있었던 설정인데, 오해에 직면하니 조금 유보해야겠다는 판단이 있었다. 물론 포기할 설정은 아니고, 지석과 하선의 이야기가 좋으니까 그 라인을 진행시킨 다음 후반부에서 본격적으로 계상과 지원의 이야기를 풀겠다는 생각.

그런데 그렇게 유보시키다 보니 문제가 발생했다. 후반부의 시청자들 반응처럼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겠는데, 만약 지원의 학교생활이 즐겁지 못했다면 그런 에피소드가 더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말이 맞다. 계상이의 생각도 끝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과거의 상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더 설명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하이킥3>가 시트콤이라는 사실이었다. 너무 어두운 이야기만 하면 안 되지 않나. 어느 정도의 코미디를 유지하고자 하는 배합의 문제를 고민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사람들이 덜 공감하게 되었다. <하이킥3>가 놓친 부분이다.”

-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캐릭터들

“김지원을 통해서 코미디를 해보려고 노력은 했다. 너무 우울함만 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캐릭터 자체에 한계가 있다. 수정처럼 망가질 수가 없는 거다. 하선이의 개그를 지원에게 주면 캐릭터가 무너진다. 그러니까 지원 캐릭터를 통해 살릴 수 있는 코미디는 ‘모든 걸 글로 배운 계상’ 에피소드에서 계상이 장광설을 풀 때 ‘닥치고 그냥 가요.’하는 정도다. 코미디가 부족하다고 해서 억지로 소동을 일으킬 수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종방연 때 지원이에게 이야기했다. ‘네게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아는데 내가 그걸 보지 못해 미안하다.’고.

강승윤도 덜 개발된 편이다. 사실 이 캐릭터에도 사연이 있다. 알고 보면 나이도 제법 많다는 것부터 해서…. 승윤의 생일 에피소드를 보면 수정이 승윤의 집을 알고 있지 않은가. 원래는 수정이 승윤의 집을 알게 되는 이야기도 있었다. 회차가 더 길었다면 풀어야 할 부분들이 있었던 거다. 그런데 거기까지 돌아갈 틈이 없었다. 이야기를 발전시켜 보려다 안 풀려서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승윤이 좀 그랬다.

그 외에 윤건이라든가 덜 개발된 캐릭터가 보였다면 그것은 인물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하이킥3>의 또 다른 실책 중 하나는 캐릭터를 줄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너무 많다보니 인물들을 덜 활용한 것처럼 보이는데, 절대적인 숫자가 많았다기보다는 비슷한 연령대에 인물들이 몰려 있었다. <지붕킥>이 13명, <하이킥3>가 15명 정도인데 할아버지와 아이가 없으니 훨씬 많아 보인다. 비슷한 나이대가 많다 보니 소재가 중첩되어서 나누어서 풀 수 있는 이야기도 한정될 수밖에 없었고, 각각의 개성을 다 살리기에도 애로가 있었다,"



- 노량진, 땅굴, 그리고 세트공간

“강북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거침없이 하이킥!>의 흑석동이나 <지붕킥>의 성북동처럼 강북지역만 주로 배경으로 써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굳이 노량진으로 설정한 것은 고시촌에서 지내는 고영욱이 하선네 집에 자주 드나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외촬영은 주로 일산에서 했고, 그들이 살고 있는 집들은 개화동에 있다.

땅굴이라는 공간도 처음 생각만큼 많이 활용하지는 못했다. 사실 많은 변화를 염두에 뒀고, 그 변화가 이야기의 진행이기도 할 것이라 말했었는데 못한 것이 많다. 땅굴이라는 장치를 통해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은유를 표현하려 한 것은 맞다. 예전처럼 실제 가족들은 많지 않지만 진희가 면접에서 꽃게탕을 예로 들며 이야기하듯, 피로 맺어지지 않은 사람들끼리도 서로 연결되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하이킥3>의 세트를 지을 때는 카메라가 안으로 들어가 움직이는 것이 중요했다. 일일연속극을 보면 별다른 동선도 없이 인물들이 평면적으로 움직이지 않는가. 사람들이 모여 고기를 구워 먹을 때도 카메라 방향의 식탁 면을 비워 놓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그런 부분에 시선이 빼앗겨서 드라마에 몰입이 안 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고기 구워 먹는 장면에서 카메라 방향에도 인물을 앉혔다. 헌데 그 인물의 정면을 찍으려면 카메라가 있던 자리에 벽이 나와야 하니까 그런 부분까지 고려해서 세트를 지었다. 많지는 않더라도 공간감과 역동성을 표현하기 위해 꼭 나와야 할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역동성을 표현하기 위해 세트에서도 가끔 DSLR 카메라, 캐논 5D 마크2를 보조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하선이 술에 취해서 계단에서 계속 굴러 떨어지고 가족들은 모른 척하던 에피소드에서도 5D 마크2를 썼다.“

<하이킥3>를 준비하던 중에 김병욱 PD는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책을 직접적으로 인용한 종석의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하이킥3>의 많은 이야기들에 녹아든 정의론은 내내 주제에 맞닿은 화두를 던져왔다. 영욱을 사랑하지 않는 감정과 도의적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는 하선, 자신의 이상과 사랑하는 이들의 반대 사이에서 갈등하는 지원까지, 모두가 ‘답을 내릴 수 없는 정의’의 영역에 있다.

답이 없는 현실. 그 막막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지난 칼럼에서 나는 <하이킥3>의 인물들 사이에서 공명했던 미약한 선의가 유일한 구원이라고 이야기했다. 마치 화장실을 뚫어버린 땅굴처럼, 사람들 마음 속 가장 내밀한 곳에 가닿았던 선의. 때문에 과거 김병욱 시트콤 속 인물들이 대가족 시스템 하에서도 모두 독립된 개별자들처럼 보였던 것에 반해 <하이킥3>에서는 남남이지만 오히려 혈연보다 끈끈한 관계처럼 보였다.

-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승윤이 그렇게 이야기한다. ‘되게 두꺼웠다는 기억? 다 읽어봐도 모르겠더라. 개코도.’ 나 역시 그 책을 읽고 나서도 화두만 늘었지 지침이 된 건 없다. 결국은 답을 낼 수 없다는 내용이니까. 시트콤이 좋은 것은 사회적인 함의를 담기에 훌륭한 그릇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사람들은 우리의 드라마가 너무 답을 주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섣불리 결론을 내리는 게 주제넘은 것은 아닐까? 답을 내리기 보다는 시청자들에게 환기시키고자 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포지셔닝이기도 하다.

종석이의 ‘정의란 무엇인가’ 에피소드는 내부고발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집단 이기주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떤 게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러바친 종석이가 나쁜 것도 아니고, 그런 종석이를 때리는 수정이가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도 나오듯 정의라는 건 언제나 늘 애매하다. 삶은 다단하고 복잡한데 우리는 너무 빨리 재단한다. 교통사고에도 100퍼센트 일방의 과실이란 좀처럼 없지 않은가.

진정으로 드라마를 통해 담고 싶었던 것은 우리 사회에 대한 우려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우리 사회만큼 파시즘이 지배하는 사회가 없다. 이렇게 흘러가지 않으면 좋겠는데, 사람들이 어떤 상징이나 이미지에 몰려가기 쉬운 사회다. 쉽게 판단을 내리고, 쉽게 어떤 사람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거나 영웅으로 만든다. 그러니까 ‘정의란 무엇인가’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논객 진중권 씨처럼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는 소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 생각에는 그나마 진중권 씨가 있기 때문에 이 사회가 균형을 찾고 있다고 본다. 아이러니하지만 우리는 1970년대보다도 훨씬 위험한 사회에 살고 있다."



- 역습의 진짜 의미

“사람들은 드라마 속 인물이 노력을 통해 성장해서 마침내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야기를 그렇게 풀어도 되지만 <하이킥3>의 인물들에게는 약간의 운들이 작용한다. 진희가 초반에 해고당하는 것도 운이 없어서였고, 마지막에 합격한 것도 어느 정도 운이 따라서였다. 내상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이 잘못해서 부도난 것도 아니고, 노력만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도 아니다.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해서 목표를 이룰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을 수도 있다. 성공하는 이들도 도중에 굴곡을 겪고 곁길로 샜다가 의외의 기회를 얻을 때도 있다. 그런 현실의 예측불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로또를 통한 재기가 무슨 역습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내상에게 결정적인 기회도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만약 내상이 크게 성공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면 시청자들은 거기서 뭘 얻을 수 있었을까? 그런 식으로 위안을 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마지막 회에 종석의 내레이션을 통해서 전한 메시지도 그거다. 삶의 예측불가능성. 어떻게 보면 허무적인 이야기인데, ‘이렇게 예측불가능한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강연을 가도 무조건 ‘꿈을 가져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말은 좋다. 꿈을 향해 끝까지 달리라고. 하지만 그건 결과를 책임져 줄 수도 없는 말이다.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하고 실패했을 때는 과감히 접을 줄도 알아야 한다. 다만 처음 꿈을 가졌을 때 당신의 마음, 그게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게 역습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다. 꿈을 품는 계기를 만드는 것, 역습을 위한 시작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도록 하고 싶다는 게 이 드라마를 시작한 이유였다.”


인터뷰•글 조민준 칼럼니스트 zilch92@gmail.com
사진 전성환,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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