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인자 오모씨와 <화성인> <안녕하세요>

[엔터미디어=배국남의 눈] 온 나라가 경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잔악한 살인과 시체 훼손에 말할 수 없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살인과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피의자 오모씨(42)에 의해 지난 1일 밤 저질러진 ‘수원 여성 살인사건’입니다. 오모씨의 잔혹하고 엽기적인 범행수법에 경악과 분노로 치를 떨고 있습니다. 범죄가 날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흉포해지고 있습니다.

범죄뿐만 아닙니다. 언어생활에서부터 사람의 행동에 이르기까지 날로 험해지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의 막말에서부터 지하철의 막말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언어는 점점 더 자극성과 폭력성의 강도를 더해가는 막말로 점철되고 있습니다. 악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거짓과 조작, 인격살해까지 서슴지 않는 악플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리고 우리들이 독함의 무한경쟁을 벌이듯 자극성과 독함을 확대재생산에 혈안이 돼 있습니다. 우리사회가 그리고 우리가 더욱 더 자극적으로, 더욱 더 폭력적으로, 더욱 더 독하게 변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하고 있는 자극성과 독함, 막장의 확대재생산과 대표적인 미디어 TV는 무관한 걸까요. TV는 이제 대중의 정서와 언행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가장 대표적인 미디어라는데 이견이 없을 겁니다. 물론 대중의 욕망과 우리 사회가 막장이기에 TV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면서 드라마나 예능이 막장으로 치닫고 막장 드라마와 예능이 눈길을 끄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면이 강합니다.

TV가 앞장서서 그 막장과 독함으로 눈길을 끌기위해 더욱 강화된 독함을 내장한 프로그램들로 승부하면서 우리 사회와 대중을 더욱 더 독하게 변모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완성도 보다는 자극과 선정성, 폭력성 등으로 승부하려는 막장 드라마는 더욱 강한 독기를 뿜어 시청자의 눈길을 잡는 데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예능 역시 자극성과 독한 내용으로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위해 출연자가 사생활이나 신변잡기를 조작하고 거짓말 하는 행태까지 서슴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요즘 시청자의 눈길을 끌고 있는 두 개의 예능 프로그램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작진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KBS <안녕하세요>와 tvN의 <화성인 바이러스>는 독함과 자극성을 확대재생산 하는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말 못할 고민까지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감동으로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눔으로서 소통부재로 인한 사람들 사이의 벽을 허물어보고자 한다’는 KBS <안녕하세요> 제작진이 밝힌 기획의도입니다.

‘우리와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화성인이라 부른다. 화성인! 그들은 과연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그리고 왜!! 그런 삶을 살게 됐을까..?? 대한민국 곳곳에 숨어있는 화성인들을 찾아 그들만의 특별한 인생철학을 들어보는 이색 토크쇼!’ 이것은 <화성인 바이러스> 제작진이 밝힌 기획의도입니다.

이들 프로그램을 몇 번만 시청하면 이 기획의도가 한낱 허울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제작진은 정말 자신들이 만든 <안녕하세요>와 <화성인 바이러스>를 보면서 소소한 이야기에서부터 말 못할 고민을 이야기 하며 웃음과 감동을 주며 소통하는 것을 느끼는지 혹은 우리와는 조금만(?) 다른 것을 체감하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화성인 바이러스>와 이보다 뒤늦게 방송을 시작한 <안녕하세요>는 일반인이 출연하는 토크쇼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포맷은 약간 다르지만 최근 들어 비슷한 형태로 방송이 되고 있습니다. “요즘 <화성인 바이러스>와 비슷한 프로그램이 많다. 대표적으로 <안녕하세요>가 있다”는 <화성인 바이러스> MC 이경규의 지적처럼 두 프로그램은 내용이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일반인(지구인)과 다른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를 나누는 <화성인 바이러스>와 일반인의 고민을 들으면서 더 심한 고민을 판단하는 <안녕하세요>는 근래 들어 엽기에 가까운 아주 극단적인 형태의 경쟁의 장으로 전락했습니다.

술로 하루를 보내는 여대생, 하루 24시간 수갑을 차고 생활하는 여성커플, 하나에서 열까지 무조건 미국을 찬양하는 백수청년, 하루 설탕을 2kg씩을 먹는 여성, 16년 동안 목욕을 거부한 여성, 손금 등 자신과 남친이 모든 것을 공유하고 같아야 한다는 미저리녀, 보는 사람을 시도때도 없이 무는 흡혈귀녀, 쌍커풀 6번 코 5번, 광대, 턱 보톡스, 애교살, 귀족 V라인 아큐리프트, 이마 자가 지방, 입술필러 등을 한 성형 찬양녀…

이 같은 ‘화성인 바이러스’의 출연자들은 기획의도에서 밝힌 일반인과 조금 다른 정도가 아니라 엽기와 극단의 사례의 연속입니다. 최근 들어 출연자의 엽기성과 자극성은 강도를 점점 더해가고 있습니다.

고민의 강도로 승부하는 <안녕하세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획의도에서 밝힌 소통은 뒷전이고 얼마나 엽기적이고 자극적인 출연자가 나오느냐에 혈안이 돼 있습니다. 31살 아들의 술자리와 여친과의 데이트에도 따라 다니는 스토커엄마, 거의 매일 나이트클럽을 찾는 나이트클럽 중독녀, 늘 자신의 몸매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노출녀까지 <안녕하세요>를 수놓은 일반인들 역시 엽기성과 자극성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화성인 바이러스>나 <안녕하세요’>는 이제 독하고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것으로 시청자들에게 인정투쟁을 받으려는 듯 엽기의 강도를 더 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 <안녕하세요>에선 불법과 자신과 타인을 죽일 수 있는 음주운전 중독자까지 고민으로 포장돼 소개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독함과 자극성은 계속 그 강도를 높여야만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화성인 바이러스>와 <안녕하세요>가 방송이 거듭될수록 보다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위해 더 독하고, 더 자극적이고, 더 엽기적인 일반인을 등장시키게 됩니다.



독함과 엽기성 그리고 자극성의 확대재생산 경쟁을 벌이는 <안녕하세요>와 <화성인 바이러스>를 보면서 시청자는 부지불식간에 독함과 엽기성 자극성 그리고 과장의 일상화 및 정상화를 꾀하게 됩니다. 엽기적이고 극단적인 사람이라도 TV를 통해 자주 보게 되면 시청자들의 의식 속에서 극단적인 경우의 사람을 일상화하고 정상적으로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는 과정에서 독함과 엽기성, 자극성은 자연스럽게 일상생활에 파고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화성인 바이러스>와 <안녕하세요>는 웃음을 주는 예능 프로그램이어서 시청자에게 끼치는 해악은 더욱 무섭습니다. 시청자들은 웃음으로 포장하기에 엽기성이나 독함의 폐해를 감지하기 어렵습니다. 웃음으로 교묘하게 버무리기 때문에 극단적인 사례의 자극성이나 독성의 무서운 병폐를 감지할 수 있는 의식이 마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살인행위나 마찬가지인 음주운전에 중독됐다는 고민을 들으면서 그 폐해에 경악하기 보다는 웃음을 짓습니다.

수십번의 성형수술을 했다는 고백과 함께 백지영이 무려 9살이나 어린 정석원을 사귈 수 있는 이유는 성형을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는 출연자를 보면서 성형부작용이나 외모 지상주의의 폐해를 인식 하기 보다는 그 성형의 극단성에 먼저 웃음을 짓는 것이 단적인 예입니다.

날로 흉포화 되가는 범죄, 막말로 점철되어가는 언어생활,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사회와 독함과 자극성의 확대재생산에 혈안이 돼 있는 일부 예능 프로그램과는 정말 관련이 없는 걸까요? 웃음을 주는 예능 프로그램에 엄숙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문제지만 이제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무서운 폐해와 해악은 심각하게 생각해볼 때입니다.


대중문화전문기자 배국남 knbae@entermedia.co.kr


[사진=KBS, CJ E&M]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