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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최근 레이컬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이 50주년을 맞았다는 기사와 글 몇 건이 미디어에 게재됐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학)는 이 책을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와 함께 소개하며 두 책이 던진 메시지를 오늘날 우리 사회가 잊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침묵의 봄> 내용과 파장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카슨의 <침묵의 봄>은 DDT의 악영향이 새의 수가 감소하는 것으로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DDT가 식품 잔류물로 발견돼 우리에게 암을 유발할 수 있으며, 미래에 새가 울지 않는 ‘침묵의 봄’을 맞게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중략) 카슨은 거대 화학회사와 화학자들의 원색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명예 훼손으로 고소 위협을 받았으며, 심지어 냉전의 상황 속에서 ‘공산주의자들의 꼭두각시’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침묵의 봄’은 독자들을 감동시켰고, TV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었으며, 시민사회와 정치권을 움직여 환경운동의 거대한 물꼬를 틀었다. 1970년에 미국 정부는 환경보호국을 설립했고, 1972년 이후에는 DDT와 다른 화학 살충제를 연이어 금지했다.

나는 DDT가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다. 그러나 DDT와 관련해 다른 주장이 있다는 사실은 안다. 카슨의 경고 이후 DDT 사용을 금지했던 세계 여러 나라가 다시 DDT를 살포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6년 DDT를 실내 벽면, 건물 지붕, 축사 등에 뿌리는 것을 ‘권장한다’고 발표했다.

DDT는 왜 복권됐나. DDT를 쓰지 않아 환경은 지켜졌는지 모르되, 그 환경에서 DDT를 쓰던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숨지게 됐다. 이는 여러 나라의 통계로 확인된다. 스리랑카에서는 1948년 말라리아 환자가 연간 280만 명 발생했다. DDT가 뿌려지면서 1962~64년에는 발병 건수가 31~150명에 그쳤다. 그러나 1964년 DDT를 금지시킨 후 환자가 1968년 100만 명, 1969년에는 250만 명으로 늘었다.

DDT가 말라리아를 퇴치하더라도 환경을 파괴하는 폐해를 간과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견해의 스펙트럼은 폭이 넓으니까.

내가 여기서 열을 올리는 쟁점은 ‘DDT 유해론, 맞나 틀리나’가 아니다. DDT 유해론을 전세계에 확산한 책을 다루면서, 그 책의 주장을 그 책이 나온 이후 밝혀진 다른 사실과 대조하지 않은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주장을 다룰 때는 반대되는 사실이 있는지 찾아봐야 한다.

주장이 앞서는 시대다. 사실에 더 힘을 실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중앙일보시사미디어 전문기자,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cobalt@joongang.co.kr


(자료)
- 홍성욱, 50년 전, 1962년, 동아일보, 2012.1.5
- 한삼희, 사카린과 DDT의 복권, 조선일보, 2011.12.24

[사진=에코리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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