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기자vs예능인’ 엄태웅, 어떻게 대중을 마비시켰나

[엔터미디어=배국남의 눈] “누나(엄정화)를 비롯한 영화계 선배나 연기자 동료들은 제 (낯을 심하게 가리는)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어요. 또 연기하는데 예능 프로그램 이미지가 방해가 되지 않을까 우려를 하는 선배도 계셨어요. 오히려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일상성이나 친근감 획득 등 연기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걱정을 자아내며 지난 2011년 3월 6일 KBS <1박2일> 새로운 멤버로 투입되면서 가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엄태웅이 한 말이다. 엄태웅에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사람은 동료 연기자들뿐만 아니었다. 엄태웅을 아끼는 수많은 팬과 시청자, 관객들도 기대 보다 우려를 표명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 번째는 연예인의 전쟁터이자 시청률의 경쟁의 선봉인 예능 프로그램, 그것도 매회 시청자의 반응이 엄청나게 쏟아지는 시청률 1위 프로그램 <1박2일>에서 순하고 낯을 심하게 가리는 엄태웅이 잘 적응할까에 대한 걱정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엄태웅의 본업이 시청자나 관객의 몰입을 요구하는 연기를 하는 연기자인데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콘셉트나 캐릭터, 이미지가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와 충돌했을 때 발생할 문제점으로 인해 연기자로서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였다.

엄태웅 역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은 실로 컸다. “4개월 전부터 제작진의 출연 섭외가 있었는데 많이 망설였어요. 제가 성격상 낯을 많이 가리는데다 예능 프로그램을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계속되는 제작진의 설득에 출연을 생각하게 됐어요.”

엄태웅이 <1박2일>을 출연한지 1년이 넘었다. 그리고 원년멤버 강호동이 퇴진한데 이어 이승기 은지원이 빠지고 새로운 멤버 김승우 차태현 성시경 주원, 기존 멤버 이수근 김종민 엄태웅 등과 함께 새로운 제작진이 투입된 시즌2 성격의 <1박2일>도 지난 3월 4일부터 시작됐다.

<1박2일>을 출연하던 지난 1년여 동안에도 엄태웅은 연기자로서도 활약은 대단했다. 영화 <특수본> <네버엔딩 스토리> <건축학 개론>의 주연을 맡았고 드라마 <적도의 남자>에 타이틀롤로 출연하고 있다. <1박2일> 예능인 엄태웅과 3개의 영화, 그리고 1개의 드라마 연기자 엄태웅이 지난 1년간 대중을 동시에 만난 것이다.

그렇다면 예능인과 연기자 병행의 엄태웅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그리고 <1박2일>에서의의 캐릭터․이미지와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가 충돌해 몰입 방해 등 예능인과 연기자 겸업에서 초래될 수 있는 문제점은 노출됐을까.

현재 관객과 시청자를 만나는 <건축학 개론>과 드라마 <적도의 남자>그리고 <1박2일>에서의 활약과 캐릭터, 이미지를 비교하면 이 질문에 답이 금세 나온다.

지난해 3월 6일부터 지난 1년여 동안 엄태웅은 <1박2일>에서 기존의 훈남적 이미지와 순둥이적 성격을 캐릭터에 녹여내 예능 프로그램에서 기대 이상으로 신속하게 뿌리를 내렸다. 초반부터 ‘순둥이’ ‘무당’ ‘엄포스’ ‘엄C’ ‘호동빠’ 등 다양한 성격을 드러내는 다면적 캐릭터와 콘셉트를 드러냄과 동시에 기존의 훈훈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견지하며 <1박2일>에 안착한 것이다.

분명 뛰어난 개인기, 분위기 장악력, 순발력 등에서 예능인으로서 여전히 부족한 부분을 드러내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남을 의외성과 반전의 연출 능력, 그리고 무조건 열심히 하는 태도, 다른 멤버들을 묵묵히 받쳐주는 희생력 등으로 <1박2일> 고정 멤버로 합격점을 받은 것이다.



최근 들어 복불복 게임이나 미션 수행 과정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몸개그를 하거나 애드립을 구사해 예능감의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있고 이전보다 더 다채로운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지만 <1박2일>에서 엄태웅은 단선적이고 강렬한 캐릭터는 부재한다. 그리고 그의 전반을 관통하는 것은 순수하고 착한 이미지다.

이 때문에 예능인으로서 엄태웅의 이미지나 모습들이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야하는 연기자 엄태웅과 충돌하거나 혹은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를 제약하거나 시청자나 관객으로 하여금 몰입을 방해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예능인 엄태웅과 연기자 엄태웅이 병립하면서도 시청자나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예능인 엄태웅과 연기자 엄태웅이 충돌하지 않은 이유는 사적 영역에서의 자연인 엄태웅이나 <1박2일>에서의 예능인 엄태웅에 대한 생각을 완벽하게 마비시키는 연기력과 캐릭터 표출력을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지난 1998년 영화 <기막힌 사내들> 단역으로 연기자의 길에 들어선 엄태웅은 영화 <실미도>, 드라마 <쾌걸 춘향> 등으로 연기자적 존재감을 알린 뒤 그리고 강렬한 포스를 드러낸 2005년 드라마 <부활>을 통해 스타덤에 오르며 주연 연기자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선덕여왕>처럼 사극에서 대사 연기나 캐릭터 구성력에 문제점을 노출하기도 했지만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성격이 다른 캐릭터를 소화하며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됐던 정교한 연기의 세기와 캐릭터 분석력을 확장시켰다.

엄태웅은 김명민 송강호 김윤석처럼 연기력으로 모든 것을 압도하는 빼어난 연기력의 소유자는 아니다. 하지만 어제보다 오늘의 연기력이 더 진화하는 연기자다. 그래서 내일의 모습을 기대하게 만드는 연기자다.

엄태웅은 <1박2일>에 출연하면서 요즘 영화 <건축학 개론>과 드라마 <적도의 남자>로 각각 관객과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엄태웅이 맡은 <건축학 개론>의 승민과 <적도의 남자>의 선우는 성격이 전혀 다른 캐릭터다. 승민은 일상성을 바탕으로 한 내 이웃같은 평범한 30대 남성이라면 선우는 강렬한 카리스마와 전형성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남성성이 강한 인물이다.

승민이 잔잔하고 세밀한 감성 연기로 일상적인 리얼리티와 개연성을 살려내야 한다면 선우는 강렬한 감정선으로 배신과 복수를 표현하는 선 굵은 연기가 필요하다. 여기에 선우는 친구의 배신으로 사고를 당해 한동안 시력을 잃어 시각장애인이 되기 때문에 앞을 보지 못하는 연기를 해야 한다. 두 캐릭터 모두 녹록치 않은 연기력이 필요하다.



<건축학개론>에서 30대 건축가로 15년 만에 갑자기 나타난 대학 1학년 시절의 첫사랑을 만났을 때의 승민을 연기해야 하는 엄태웅은 노출이나 자극적인 설정, 극단적 상황이 전혀 없이 관객의 공감을 유발해야하는 캐릭터적 특성 때문에 표정에서부터 대사 연기에 이르기까지 매우 정교하고 세밀해야할 뿐만 아니라 일상성과 리얼리티가 담겨 있어야했다. 엄태웅은 이전보다 더욱 세밀하고 정교한 연기력으로 일상성의 인물을 잘 표출했다.

그리고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갈등과 상황, 강한 성격이 분명한 캐릭터들이 난무하는 <적도의 남자>에선 강렬한 연기톤으로 선우를 잘 살려내고 있다. 특히 시각장애인이 된 선우를 연기하는 부분에선 철저한 관찰과 연구, 연습과 훈련의 결과로 시청자가 가슴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살아있는 캐릭터를 창출했다.

엄태웅은 이처럼 <1박2일>에서 다양한 캐릭터 역할 수행과 강렬한 단선적 캐릭터의 부재, 선하고 순한 그리고 훈훈한 이미지 구축과 영화 <건축학 개론> 드라마 <적도의 남자>에서 보여준 것처럼 일상성과 강렬한 전형성을 넘나드는 연기력과 캐릭터 창출력을 보여 예능인과 연기자로서의 좋은 평가를 획득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료 연기자와 그의 팬들이 우려했던 연기자와 예능인의 모습이 충돌해 경쟁력이 추락하는 문제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1박2일>에서의 모습이나 경험들을 연기에 활용하는 영리함까지 발휘해 엄태웅이라는 연기자의 스펙트럼을 더욱 더 확대시키기까지 했다.

“<1박2일> 예능은 편한 제 모습이다. 드라마는 제 할 일이다. 두 개를 겹쳐지게 봐주시지 않는 게 제게 행운인 것 같다.” <1박2일>에 투입되며 많은 걱정을 했던 엄태웅이 지난 5일가진 <적도의 남자>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대중문화전문기자 배국남 knbae@entermedia.co.kr


[사진=KBS, 명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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