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 숨겨져 있었던 저의 고난의 얘기를 오늘 여러분에게 전함으로써 여러분들이 보다 더 괜찮은 여러분의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리고 더 용기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 되기를 바라면서 부족하지만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 KBS2 <이야기쇼 두드림>에서 윤석화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제작진이 홈페이지에 밝혀둔 바에 따르면 <이야기쇼 두드림>은 대중들이 닮고 싶은 이 시대의 멘토를 초대해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두드림 특강’을 듣고 MC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주 초대 강사는 연극배우 윤석화 씨, 그렇다면 제작진에게 묻고 싶다. “윤석화 씨가 요즘 젊은이들이 닮고 싶어 하는 멘토, 맞나요?” 그녀가 누군가. 2007년 사회 전반에 걸쳐 일었던 학력 위조 파문의 대상이 아닌가. 따라서 시청자는 의당 학력 위조에 대한 깊은 회한과 반성이 주가 되려니 예상할 밖에.

하지만 그녀는 짐작과는 달리 지난 날 겪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을 먼저 풀어놓기 시작했다. 떨리는 어조로 급작스런 남편의 사업 실패로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는 얘기며, 그래서 심지어 남편이 자살을 하면 어쩌나 조바심을 했었다는 얘기부터 꺼냈으니까.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대형 뮤지컬 제작에 뛰어들었지만 제작에 방해를 받는 게 싫어서 투자도 받지 않았다나. 그러니 자금이 달리는 건 당연지사가 아니겠나. 급기야 당장에 1억이라는 큰돈을 구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가는 절박한 상황, 본인 또한 자살을 떠올리는 위기의 순간이었다는데 하룻밤을 울며 기도를 하고 났더니 기적처럼 지방 아파트 광고가 들어왔단다. 그것도 더도 덜도 아닌 딱 1억 원짜리 광고가.

그 순간 얼마나 진심을 다 해 기도를 했으면 기적이 일어났겠느냐며 감동을 해야 옳건만 듣는 나로서는 헛웃음이 나왔다. 위기 대처 방법이 대형 뮤지컬 제작이라는 것도, 1억 원을 구하지 못해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는 것도 기가 막히다. 고뇌의 레벨이 아예 다르다고 해야 되나? 더구나 웃자고 하는 얘기겠지만 관절약이나 감기약 CF는 이미지에 안 맞으니 피해달라고 구체적으로 기도했다는 부분에선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뮤지컬 성공 스토리와 그간 언론을 통해 접해온 입양 얘기가 한참 진행된 뒤에야 모두가 기다렸던 바로 그 대목을 꺼내 들었다.

“아시잖아요. 한 번의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실패할 수도 있고 실수 할 수도 있지만 그 절망을 통해서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더 나아가는 것이고, 지금 젊었을 때 뭔가를 이루기보다는 좀 더 길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는 것이 좀 더 축복된 삶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편집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허무하게도 이렇게 강의는 끝나버렸다. ‘실수 할 수도 있지만’, 이 말은 남이 위로 차원에서 해준다면 모를까 본인 스스로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니지 않을까? 또한 한 번의 잘못으로 보기는 어렵지 싶다. 순간의 실수로 잘못 꿴 단추였다고 해도 그 단추를 30년씩이나 풀지 않고 유지한 건 그녀 자신이니까.





사실 그녀가 데뷔했던 그 시절만 해도 요즘 키나 몸무게를 속이듯 학력을 속이는 연예인들이 허다했었다. 지금처럼 대번에 인터넷을 통해 속속들이 밝혀지는 때도 아니었고 대중들도 악착같지 않아서 그러려니 하고 알면서도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속아주고 그랬다. 다만 양심들은 있어서 스스로 나 어디 다닙네, 어디 나왔네, 떠들고 다니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윤석화 씨, 그녀는 스스럼없이 본인 입에 올리곤 했던 것이다. 나도 언젠가 TV 토크쇼에서 ‘이대 다녔을 때’라고 말하는 걸 똑똑히 보고 들은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야기쇼 두드림>에서 ‘고백을 했을 당시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고 MC가 말을 꺼내자 그녀는 친구에게 묻어 간 신입생 환영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녀를 보고 감탄한 음악평론가 이백천 씨에게 친구가 둘러댔던 거짓말이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라며 친구 핑계를 댔다. 그리고 그 후 이백천 씨가 당시 <젊음의 행진>을 비롯한 방송계에 그렇게 소개를 했기 때문에 꼬리표가 따라 붙었던 것이라고, 이번엔 이백천 씨에게 책임을 돌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에 의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라는 식이다. 참 이상한 일이 아닌가. 학력 위조에 관련된 모든 사람은 한결 같은 답을 한다. 나는 속일 생각이 결코 없었는데 남들이 그렇게 떠들었다, 라고. 말은 바로 하랬다고 그녀가 용기를 내 고백을 했다고 볼 수도 없다. 저녁 뉴스를 통해 이미 입학 사실이 없다는 보도가 나가고 난 후, 다음 날 홈페이지에 그 사실을 인정한 것이니까. 한 마디로 말해 자발적이 아닌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한 사과가 아니었나.





그날의 게스트 이준과 양세형이 지나친 솔직함으로 인한 고민을 토로하자 “저는 굉장히 솔직한 편이에요. 솔직한 건 나의 성품이니까, 나쁜 건 아니죠. 안 솔직한 게 나쁜 거죠. 솔직한 걸 곡해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건 그 사람의 문제죠.”라고 답한 윤석화 씨. 다행히 그 며칠 전에 모습을 보인 JTBC <박경림의 오! 해피데이>에서는 단출한 현장 분위기 덕인지 아니면 자녀들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눈 덕인지 조금 다른 느낌을 줬지만 KBS2 <여유만만>에서도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에서도 시종일관 ‘진실’과 ‘솔직함’을 생의 모토인양 앞세워 아쉬움을 남겼다.

토크쇼는 대중에게 진심을 내보일, 대중의 마음을 내게 돌릴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다. 왜 누군가에게는 평생 한 번도 주어지지 않을 귀한 기회들을 그리 흘려보낸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야기쇼 두드림>에서 한 그 강의가 정말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꿈을 주리라고 믿은 것일까?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사진=KBS2, JTBC,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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