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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은 실제로 마법의 장소인가?
기사입력 :[ 2012-04-22 13:00 ]


- 당신은 ‘압서방’男과 ‘지옥고’女를 아시나요?

[엔터미디어=배국남의 눈] 공간은 이제 계급의 확고한 지표가 된지 오래다. 한강은 더 이상 서울 강남, 북을 가르는 지리적 표상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돈과 계급, 정치적 성향을 간명하고 극단적으로 구분하는 견고한 기호가 됐다.

서울 강남 그것도 압구정, 서초동, 방배동으로 대변되는 ‘압서방’의 남자는 그곳에 산다는 이유만으로도 여자와의 사랑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한다. 압서방에 살지 않는 한 남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압서방 남자를 만나는 모습 앞에서 한없는 무력감과 열패감을 느끼는 것은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압서방 이라는 공간은 이제 비압서방 사람들에게 사랑에서부터 소비, 교육에 이르기까지 넘을 수 없는 철옹성 같은 장벽으로 다가선다. 압서방은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부와 학력의 세습을 이루며 압서방과 비압서방의 양극화를 더욱 더 벌려나가고 있다.

‘압서방’이라는 화려한 공간의 광휘가 찬연하면 할수록 ‘지옥고’의 그림자는 더욱 짙게 드리워진다. 지옥의 고통에 비견된다는 의미의 ‘지옥고’는 지하, 옥탑방, 고시원이라는 주거 형태을 지칭한다. 한 대선후보가 서민을 위하겠다는 목소리를 높이다 옥탑방에 대해 묻자 그 뜻조차 몰라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 아픈 실소를 지은 적 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옥탑방, 그리고 눅눅함과 벗하며 비, 눈 내릴 때 늘 노심초사해야하는 지하방, 그리고 유령처럼 살아야하는 고시실 사람들은 그들 앞에 놓은 현실의 무게로 연애도, 결혼도, 자식도 포기해야하는 삼포의 강요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사랑을 해도 옥탑방에서 사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겠다”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젊은 여성의 말을 들으며 분노보다는 어쩔 수 없는 처지의 절망이 먼저 찾아온다. 지옥의 고통처럼 ‘지옥고’의 삶은 더욱 더 퍽퍽해지며 절망조차도 사치스러운 감정이 되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

‘압서방’은 이제 ‘지옥고’의 사람들에게 현실에선 넘볼 수 없는 계급의 공간이 된지 이미 오래다.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거듭하고 있는 양극화속에서 압서방과 지옥고 사람들은 각각 자신들만의 리그를 펼치고 있다. 사랑도, 소비도, 교육도.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현실 속에선 건널 수 없는 강이 돼버린 압서방과 지옥고의 사람들의 진실한(?) 사랑이 넘쳐나는 곳이 있다. 압서방 남자와 지옥고 여자가 시도 때도 없이 만나 진정한 사랑을 이루는 곳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수많은 드라마다.

압서방의 진골인 재벌 2세 한 남자(이재훈)는 반지하의 봉제공장에서 먹고 자고 일하는 부모도 없고 게다가 다른 남자를 마음에 둔 반지하녀(신세경)에 사랑에 빠진다(SBS <패션왕>). 300년 전 왕세자였다가 현재에는 재벌 3세로 둔갑한 남자(박유천)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워 살기 힘든 주택시설의 상징인 옥탑방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는 없고 새어머니와 이복언니에게 버림받은 옥탑방여(한지민)를 사랑하게 된다(SBS <옥탑방 왕세자>).



<옥탑방 고양이>에서부터 <파리의 여인><보스를 지켜라><옥탑방 왕세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드라마에서 압서방 남자와 지옥고 여자가 진정한 사랑을 하거나 압서방 남자의 지옥고 여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헌신적 사랑이 절절하게 펼쳐졌다.

드라마에서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공간과 장소는 시대와 상황을 적시해주는 사실적 정보를 전달해 줄뿐만 아니라 인물의 배경과 성격을 알려주는 단초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주제와 상징적 의미를 전달해주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적 중요성을 담보하는 공간과 장소가 우리의 수많은 드라마에선 한결같이 박제된 그것도 리얼리티가 사라진 기표로만 활용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꿈마저 꿀 수 없는 어두운 현실에서 고단한 삶을 지탱해나가고 있는 지옥고는 드라마 속에선 단지 견고하게 형성된 신분과 계급을 뛰어넘는 남녀 주인공의 지순한 사랑의 장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드라마 속 지옥고는 희망조차 갖지 못하는 현실의 암담함은 철저히 배제된 채 압서방의 멋진 남자와의 진정한 사랑이 완성되는 곳일 뿐이다.

현실 속에서 압서방과 지옥고는 결코 만날 수 없는 견고한 계급의 철옹성이지만 수많은 드라마는 약속이라도 한 듯 이곳들을 너무나 쉽게 진정한 사랑이 이뤄지는 마법의 장소로 둔갑시킨다.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물론 모든 드라마가 공간과 장소의 리얼리티를 갖춰야하는 것은 아니다. 극적 재미나 흥미를 위해 환타지적 성격도 때론 필요하다. 하지만 하나의 모범답안처럼 그려지는 드라마 속 압서방과 지옥고는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진부한(?) 비판으로 감당이 안 되는 현실 인식의 마비와 왜곡된 인식을 심화시키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현실이 사라지고 탐욕과 헛된 욕망이 밑바닥에 자리한 환타지로 무장한 천편일률적인 드라마 속 압서방과 지옥고는 잠시나마 고단한 현실을 도피하게 해주는 기능도 하지만 제대로 된 현실인식을 마비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의 욕망의 극대화, 탐욕적 자본의 무차별적 미화 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허구일지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실 속 사람들의 삶과 인식을 디자인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초등학교 한 교사가 말한다. 반 아이들의 꿈을 물었더니 적지 않은 여학생들이 장래 희망을 신데렐라가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드라마 작가 PD들은 자신들의 드라마를 보며 신데렐라 꿈을 키운 이 아이들을 만나면 어떤 말을 할까. 혹여 이렇게 무책임한 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드라마에선 지옥고 여자와 압서방 남자들이 사랑과 결혼을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기 힘들단다. 드라마는 드라마 일뿐이란다”라고.


대중문화전문기자 배국남 knbae@entermedia.co.kr


[사진=SBS, 명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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