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에 자궁문이 이미 3cm가 열렸다는데요. 그때 제가 침대에 누워있을 상황이 안 됐었어요. 남들은 김혜연이가 통장에 몇 만원도 없었다면 안 믿어지겠지만 만삭에, 셋째 아이 출산 15일 전까지 무대에서 뛰었어요. 사실 그런 모양새로 무대에 오르는 게 도리는 아니지만 제가 몸을 사려버리면 저를 보러 오신 분들에게 행여나 즐거움을 못 드릴 수도 있는 일이라서 그냥 하던 대로 하이힐 신고 뛰어버렸어요. 그리고 다시 병원에 가서 진찰 받고, 또 다시 행사하러 가고 그랬죠. 그런데요. 애들은 엄마가 돈 없는 걸 귀신처럼 아나 봐요. 딸기 먹고 싶어요, 사과 먹고 싶어요, 피아노 학원에 돈 내야 되는데요. 자꾸 전화가 오는 거예요. 저는 행사비 받아서 빚 갚아야 되고 이자 내야 되는데요. 정말 가슴이 미어지더라고요.”

- JTBC <박경림이 오!해피데이>에서 김혜연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십여 년을 근검절약해가며 모은 알토란같은 돈이었다고 한다. 그 피 같은 돈을 사기를 당해 모조리 없앤 뒤 설상가상으로 빚까지 떠안았던 트로트 가수 김혜연 씨. 마침 남편의 사업조차 최악의 상황이었던지라 셋째 아이 출산 보름 전까지 무대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는데 함께 출연한 동료 가수 한혜진 씨도 그 당시의 심정을 보탰다. “멀리서 보면서 너무 가슴 아팠어요. 만삭의 몸으로 무대에 선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이 사람도 자존심이 강한 사람인데 팬들 앞에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었겠어요?”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돈 독이 올라 그 몸을 하고도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른다며 손가락질을 했지만 당장 아이들과 먹고 살아야 했고 엄청난 이자를 감당해야 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물론 MBC <세바퀴>를 비롯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지선 씨와 ‘다산의 여왕’ 베틀을 벌이며 늘 밝은 얼굴로 웃음 짓던 김혜연 씨에게 이처럼 가슴 아픈 사연이 있을 줄이야. 보통 사람 같으면 입원을 해야 마땅할 몸으로 하루에 십여 개씩 행사를 하러 다녔다니 짐작만으로도 눈물이 솟구친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신이 참으로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 꿈인가 생신가 싶게 감당키 어려운 인기와 재물을 안겨주는가 하면 또 어느 한 순간 남김없이 앗아가 버리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나 강남에 집 한 채는 너끈히 사고도 남을 만큼 큰돈을 단 한 번의 실수로 잃어버린 김혜연 씨는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긍정의 힘으로 극복했다고 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요, 진짜 열심히 살아요. 그리고 아, 이건 내 것이 아닌가보다. 더 열심히 살라고 하신 채찍질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잊어버렸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요.”

방송 내내 원망의 말 한 마디가 없는 걸 보면 자책 속에서 방황하며 하소연을 늘어놓는다거나 궁상을 떠는 게 자신과 가족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어차피 나와는 인연이 아닌 돈으로 치부해버리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데, 그 후 기적처럼 KBS2 <해피 선데이> ‘1박 2일’에서 일명 ‘뱀이다’로 불리는 ‘참아주세요’가 공식 기상송으로 쓰이는 바람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단다. 하룻밤 사이 밀려드는 행사 요청에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였다니 그야말로 드라마 같은 일이랄 밖에.

김혜연 씨 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빈털터리에서의 성공이 진정한 성공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땀 흘릴 각오를 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내 편이 되어 좋은 기회를 준다는 말도. 위기를 피나는 노력 끝에 재기로 바꾼 김혜연 씨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바이지만 한편으론 슬며시 걱정도 뒤따른다. 성공을 위해, 재기를 위해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 그런 사소한 기쁨들은 훗날 누리기로 하고 최선을 다해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기억했으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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