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은 이름에 불과할 뿐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꼬마 때 장난감 차를 바닥에 밀며 놀았어요. 차에 가로로 달린 투명한 통 속에 구슬이 있었죠. 차를 갑자기 밀면 구슬이 일제히 뒤로 밀려나잖아요. 신기해서 아버지한테 가서 말했죠.”

아버지는 그에게 이렇게 들려줬다.

“그걸 ‘관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설명은 현상에 이름만 붙인 것일 뿐,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란다.”

꼬마 리처드 파인만은 이 말에서 그럴싸한 용어로 현상을 표현하는 일과 현상의 원리를 파악하는 과학적인 탐구는 다름을 깨달았다.

유니폼 세일즈맨이었던 파인만의 아버지는 아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백과사전의 항목을 읽어주곤 했다. 파인만의 아버지는 그렇게 아들의 지적인 호기심과 사물과 현상의 근원을 탐구하는 태도를 싹틔워줬다.

파인만은 손꼽히는 물리학자가 돼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강단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는 학생에게도 물리의 심오한 세계를 보여줬다. 파인만은 노벨상을 받은 내공에 강의를 어찌나 재미나게 하는지, 그의 강의실은 늘 학생으로 가득했다고 들었다.

나도 한참 전에 그의 물리학 강의를 정리한 책을 샀다. 제목은 까먹었다. 명불허전이라고 감탄하며 읽을 줄 기대했건만, 내용이 어려웠다. 일반인에게 물리학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보다 더 해독이 까다롭다.

그 어려운 파인만을 인터넷에서 친숙한 이야기로 만났다. 내가 왜, 어떻게 파인만을 인터넷에서 만나게 됐는지는 잊어버렸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야기한 동영상이어서인지, 쉬웠다. 보고 또 봤다. 앞에 전한 파인만이 들려준 아버지 얘기도 인터넷 동영상으로 들었다.

리처드 파인만은 참 훌륭한 선생님이다. 스스로 흥겨워 하면서 지식을 펼쳐보인다. 신바람이 보고 듣는 사람에게 전해진다. 신기하다. 그는 1988년에 숨졌고 그가 남긴 동영상은 단지 이미지와 소리의 조합일 뿐이다. 그러나 동영상을 보면 그가 지닌 강력한 호기심의 파장이 우리에게 전해진다.

파인만의 영상을 강력 추천한다. 그는 자석이 왜 같은 극끼리는 밀치고 다른 극끼리는 붙는지 설명한다. 유튜브에서 Feynman과 magnet을 입력해 검색하면 나온다. 파인만에게서 직접 듣는 즐거움을 방해하면 안 되겠기에, 내용은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파인만이 꼬마 때 아버지가 설명한 방식을 자석에 적용하면 이렇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자석의 성질, 즉 자석에는 N극과 S극이 있는데, 같은 극끼리는 밀치고 다른 극끼리는 붙는다. 지구도 하나의 거대한 자석이어서 나침반의 N극은 북쪽을 가리킨다. 이건 현상에 이름을 붙였을 뿐, 원리는 아니다. 용어는 용어일 뿐이다.

식물이 땅 속의 영양성분을 끌어올려 흡수해 성장하는 게 아니라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에서 탄소를 분리해 자란다는 설명도 흥미롭다. 탄소 외에 성장에 필요한 성분이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건 이산화탄소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 말이 맞다. 나무를 불완전연소하면 탄소 성분인 숯이 되니까 말이다.

어버이 날과 스승의 날이 지났다. 파인만은 훌륭한 아버지이자 교육자를 만나 뛰어난 학자이자 교수가 됐다.

나는 그저 파인만의 강의를 즐길 뿐이다. 사람이 왜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는 과정을 즐기는지 의문을 갖게 될 정도로 그의 강의는 흥미진진하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smitten@naver.com


[사진=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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