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연적 방송사고, 유일한 대책은 일회용 사과뿐?

[엔터미디어=배국남의 직격탄] 갑자기 검은색 화면으로 변하더니 생뚱맞게 드라마 예고 영상이 나온 뒤 계속돼야할 드라마가 갑자기 중단되는 황당무계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계속 돼야할 드라마 대신 ‘본 방송사 사정으로 <적도의 남자> 19회를 여기서 마치고 마지막회(20회)는 내일(24일) 방송 하겠습니다’는 자막이 흘렀습니다. 19회가 방송되던 KBS수목드라마 <적도의 남자>는 23일 오후 10시 56분께 방송사고가 발생해 10여분 앞당겨 드라마를 끝내는 초유의 대형 방송사고가 일어난 것이지요.

<적도의 남자>의 황당한 방송 사고를 보면서 지난해 8월16일 KBS 신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장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스파이 명월> 여자 주연 한예슬이 열악하고 무리한 드라마 촬영 스케줄과 제작진과 불화를 이유로 촬영장을 이탈해 드라마 불방사고가 일어나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KBS 고영탁 드라마국장, 이강현 EP, 정성효 CP 등은 이례적으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KBS는 이런 사태(촬영장 이탈과 드라마 불방)를 야기한 한예슬의 행동은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이며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한예슬을 강력하게 성토한 뒤 드라마 제작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아직도 기자회견장에서의 KBS 드라마 관계자들의 목소리가 생생합니다.

그리고 23일 드라마 대형 방송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번 <적도의 남자> 사고 역시 ‘생방송 드라마’로 상징되는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이 낳은 필연적 사고입니다. KBS측 설명에 따르면 제작진의 편집 작업이 지연돼 드라마 마지막 10분 방송 편집분 테이프가 송출실에 제 때 전달되지 못해 일어난 사고라고 합니다. 상상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요.

지난해 8월16일 한예슬에 비난을 쏟아내며 제작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KBS 제작진은 그동안 뭘 했을까요.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위한 엄청난(?) 노력의 결과가 <적도의 남자> 대형 방송사고 인가요.

과연 KBS 제작진은 한예슬에게 비판했던 것이 부끄럽지도 않나요? 한예슬 사태 이후 KBS는 드라마 제작환경을 개선하기위해 내놓은 유일한 대책이 “시청자들에게 죄송하고 드라마 환경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내용도 담보되지 않은 면피성 일회용 사과뿐이었나요?



한예슬 사태 이후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에 대한 공허한 성토나 일회성 의견 표출은 많았지만 한예슬 사태가 공론화시켰던 드라마 제작을 둘러싼 근본적인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예슬 사태를 계기로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KBS, MBC, SBS 등 방송사는 물론이고 드라마 제작사 그리고 방송관련 단체 등은 이후에 한 일은 “나몰라” 행태뿐이었습니다.

‘쪽대본’ ‘당일치기 촬영과 편집’ 등 열악한 생방송(?) 드라마 제작환경은 여전했지요. 아니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의 한결같은 입장입니다. KBS, MBC, SBS 등 방송사나 드라마 제작사들은 방송사고가 나면“시청자 여러분께 사과 드립니다. 제작환경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위기모면용 일회용 사과만을 유일한 대책으로 남발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드라마 방송사고는 끊이지 않고 반복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류를 내세우며 대중문화 특히 드라마 강국이라고 떠드는 대한민국 방송환경에서 촬영도중 출연자가 부상 당해 결방된 <아테나>같은 방송 사고는 이제 흔한 일이 됐습니다. 방송 당일에도 제작이 완료되지 않아 스태프의 목소리가 드라마에 방송된 <시크릿 가든>, 오디오가 장시간 나오지 않고 드라마 중간 중간에 조정화면이 뜨는 <싸인>같은 드라마를 대한민국 시청자들은 쉽게 시청할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드라마 사고의 유일한 대책으로 시청자도 믿지 않는 일회용 사과만을 내놓을 건가요? 제2의 한예슬 사태가 일어나면 방송사는 또 그러겠지요. 특정 연기자에 방송사고의 원인을 떠 넘기며 책임을 모면하겠지요. KBS가 <스파이 명월>때 한예슬에게 한 것처럼 말입니다.

“얼마 전 한 후배(한예슬)도 이것 때문에 문제가 있었는데 (드라마의) 쪽대본과 제작환경 때문에 너무 힘들어 매니저가 도망갈 정도였다. 장진 감독과 연극 <택시 드리벌>에 대한 6, 7시간의 대본연습과 분석을 했는데 너무 초조하게 느껴지더라. 그 순간 뭔가 잘못 됐다고 생각했고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말은 우리시대의 최고의 연기자로 꼽히는 최민식이 지난 2월6일 SBS <힐링캠프>에 나와 드라마에 왜 오랫동안 출연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그리고 근래 들어 방송사고로 얼룩진 드라마를 외면하는 시청자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회용 시청자 사과만을 드라마 사고의 대안으로 내놓는 방송사와 제작사가 진정 귀 기울이고 눈을 떠 봐야할 말이고 현상입니다.


대중문화전문기자 배국남 knbae@entermedia.co.kr


[사진=KBS, SBS, 이김 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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