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왜 꼰대를 자처하나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꼰대’가 되는 유형의 사람을 알게 됐다. 나 같은 사람이다. 틀린 걸 지적해야 직성이 풀린다. 내 경우엔 우리말이 관심 영역이다.

단조로운 일상, 일부러라도 웃자며 <개그콘서트>라는 TV프로그램을 봤다. 집에는 TV가 없으니 스마트폰을 켰다.

꼰대는 TV프로그램을 볼 때도 유난을 떤다. 계속 시청하는 법이 없다. 거슬리는 코너가 나오면 TV를 꺼버렸다가 몇 분 뒤 다시 본다.

한 코너에서 이름이 붙지 않은 사물에 ‘이름 특허’를 낸다는 기발한 발상을 재미나게 꾸몄다. 예컨대 새 양말 두 짝을 연결하는 금속 조각을 무어라고 부르느냐는 것이다.

다른 대목이 거슬렸다. 개그맨은 책 읽은 부분을 표시하는 사물을 ‘책갈피’라고 불렀다. 또 책에 달린, 어디까지 읽었는지 표시해 두는 데 쓰는 끈에 이름이 없다며 “무어라고 부르면 된다”고 농담했다. 어럽쇼?

책갈피는 책장의 사이다. 책갈피에 끼우는 종이 따위는 ‘서표(書標)’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보람’이라고 부른다. 보람 구실을 하는 줄의 이름은 ‘보람줄’이나 ‘보람끈’이다.

혼자 꽁하면 꼰대가 아니다. 꼰대는 KBS 홈페이지에 들어간다. 시청자 게시판에 틀렸다고 지적하는 글을 올린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는다. 개그콘서트 홈페이지에도 같은 내용을 올린다.

(전략) 작가의 원고를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한 듯합니다.
매체에 데스크와 팩트체커가 있는 것처럼. (중략)
다음회에 정정 자막처리하지는 못하겠지만, 제작 과정은 개선해주십시오.

시청자 게시판에 답장 표시가 떴다. 서둘러 클릭한다.

안녕하세요? KBS 시청자상담실입니다.
<자유게시판>에 게시된 여러분의 의견은 건의사항의 합리성 등을 검토합니다.
백우진 님,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시청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견 개진을 바랍니다.
항상 시청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KBS가 되겠습니다.

달랑 이 말뿐이다. 다른 답장도 비슷하다. 기계음 ARS 응답이나 다름없다. 꼰대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는다. 다만 상대를 바꿀 뿐이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smitte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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