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기생 손현주·이병헌, 그들의 존재 의미와 가치

[엔터미디어=배국남의 눈] 요즘 40대 후반의 한 연기자가 안방극장을 강타하고 있다. 수많은 시청자와 대중매체는 약속이라도 한 듯 그의 연기를 ‘미친 연기’라며 찬사를 쏟아내고 그가 아니면 캐릭터의 진정성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극찬을 서슴지 않는다. 그는 바로 SBS 월화 미니시리즈 <추적자 The Chaser>의 손현주(47)다.

우리 방송계에서 미니시리즈의 주연은 20~30대 스타의 전유물로 전락한지 오래다. 아이돌 스타, 톱스타, 한류 스타들이 월화, 수목 그리고 주말 미니시리즈를 점령하고 있다. 미니시리즈 뿐만 아니다. 일일극, 주말극 주연도 이제는 20~30대 젊은 연기자들 차지다.

KBS, MBC, SBS 방송 3사의 수많은 드라마 중 40대 이상이 주연으로 전면에 나선 드라마는 12년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장동건(40) 주연의 SBS <신사의 품격>, 유준상(43)-김남주(41) 연기 앙상블이 돋보이는 KBS <넝쿨째 굴러온 당신> 등 단 두 편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40대 후반, 그것도 톱스타가 아닌 손현주가 미니시리즈 <추적자>의 주연으로 전면에 나섰다는 사실만으로 관심과 눈길을 끌었다.

손현주의 <추적자> 주연은 우리 방송계에서 그만큼 이례적이고 의미가 있다. 그런 때문인지 더 많은 부담감이 손현주의 어깨를 짓눌렀을 것이다. 주연 손현주의 연기와 드라마 <추적자>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이 앞으로 안방극장에서 사라진 40~60대 주연 드라마 복원 여부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적자> 제작발표회 때 손현주는 “부담감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간 월화드라마를 젊은 배우들이 채워줬다면 우리 배우들은 30~60대가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진정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기자들 중 쉽게 가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만족하며 목숨을 내어놓고 촬영하고 있다”라고 밝힌 소감에서 부담감의 무게를 어렴풋하게 읽을 수 있다.

<추적자>는 강력계 형사인 아버지가 딸의 죽음 뒤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진실을 은폐하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등 거대 세력과 맞서는 과정을 담은 느와르풍 드라마다. 손현주는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사는 강력계 형사로 자신 목숨보다 사랑한 딸을 뺑소니 사고로 잃은 후 죽음의 진실을 밝힌 뒤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으려는 백홍석역을 맡았다.

손현주는 5월 28, 29일 1,2회에서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하는 피고에게 진실을 말하라고 절규하다 뒤엉켜 싸우다 죽이는 충격적인 장면에서 목숨보다 더 아끼는 딸이 뺑소니차에 치여 사경을 헤매다 죽는 것을 목격하는 가장 슬픈 일을 겪은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죽음의 진실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숨 막히게 보여줬다.

혐의를 부인하는 피의자를 보며 절규와 분노를 드러내는 연기에서부터 사경을 헤매고 있는 딸을 생각하며 맥없이 ‘클레멘타인’을 부르는 연기에 이르기까지 시청자 모두를 백홍석이라는 인물에 몰입시켜 함께 분노하며 함께 슬퍼하게 만들었다. 이 땅의 아버지라면, 아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손현주가 생명력을 불어넣은 백홍석이라는 캐릭터의 진정성을 흠뻑 느꼈을 것이다. 손현주의 단단하게 쌓인 연기의 내공이 찬연하게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손현주는 <추적자> 1,2회에서 그동안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그의 연기력을 인정한 수많은 시청자들을 주연으로 드라마 전반을 이끌어가는 장악력과 강렬한 존재감까지 수긍하게 만들었다.





손현주는 1991년 이병헌 김호진 김정난 배도환 김정균 임성민 등과 함께 KBS14기 탤런트 공채로 TV연기자로 선을 보였다. 손현주는 탤런트 공채 이전 극단 ‘미추’단원으로 마당극에 출연하며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손현주는 동기인 이병헌과 사뭇 다른 연기자의 길을 걸어왔다. 이병헌은 연기자로 데뷔한 뒤 곧바로 <내일은 사랑> 등 청춘물로 스타덤에 올라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의 주연을 맡아 최고의 톱스타로 부상한 뒤 한류스타로 국내외 팬들의 높은 사랑을 받는 엘리트 코스의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반면 손현주는 오랜시간 수많은 드라마에서 단역에서부터 출발해 조연으로 활동하다 주연급, 그리고 주연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연기자로서 진화를 거듭해왔다. 손현주는 오랜시간이 걸렸지만 그 과정에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연기의 세기와 캐릭터 소화력, 그리고 출중한 연기력을 갖췄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연기를 버팀목으로 주연이나 다른 연기자가 빛을 발할 수 있게 만들었다.

KBS, MBC, SBS 방송 3사 수많은 연출자들이 한결같이 손현주에 대해 “어떠한 캐릭터가 주어져도 시청자들이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게 만드는 연기자가 손현주다”라고 말할 뿐 아니라 시대극 사극에서부터 현대극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홈드라마에서 스릴러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를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몇 안되는 연기자 중 한사람으로 꼽는다.

손현주는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1992년 시청률조사 실시 이후로 65.8%라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첫사랑>에서 청승맞게 노래를 부르며 송채환과의 천연스러운 사랑을 일궈가는 주정남역으로 주연에 버금가는 조연 연기자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다. 가정 문제 등으로 최대 위기에 빠졌다가 연기를 재개한 최진실과 함께 출연한 <장밋빛 인생>에서 손현주는 못된 남편 반성문역을 맡아 최진실이 스타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는 버팀목 역할을 하는 연기로 눈길을 끌었다.



또한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에선 대사 한마디, 표정 하나로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안타까움을 자아내 “역시 손현주!”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솔약국집 아들들>에서 특유의 생활 냄새나는 소시민 캐릭터를 잘 소화해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다. 손현주의 최고의 진가는 막장 드라마로 비판을 받았던 <조강지처 클럽>같은 드라마에서 조차 캐릭터에 진정성과 개연성을 느낄 수 있도록 연기에 최선을 다한데서 드러난다.

손현주는 늘 말한다. “연기라는 게 결국 진정성에 대한 문제다. 시청자들은 연기자의 거짓과 진실을 모두 구별할 수 있다. 생명력 없는 연기, 진정성 없는 연기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저 자신에게 말한다. ‘목숨 걸고 연기하자’고”

톱스타 이병헌 같은 연기자도 있어야 하지만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 비중을 소화하는 손현주 같은 연기파 배우도 꼭 있어야한다. 탤런트 동기 이병헌처럼 톱스타의 길을 걷지 않았지만 우리 드라마와 영화에서 꼭 필요한 연기자, 그리고 배역의 비중은 있지만 결코 작은 배우는 없다는 것을 연기로 증명한 우리시대의 최고 연기파 배우가 바로 손현주다.

“어떤 배우가 되겠다는 목표는 세워본 적 없지만, 살아 숨 쉴 때까지 주어지는 연기가 있으면 다 해보겠다”는 손현주, 그가 펼칠 <추적자>의 주연으로서의 진정성 있는 연기 그리고 앞으로 그가 보여줄 연기 세계에 기대와 관심을 갖는 것은 그가 21년 동안 연기자로서 보여 온 진지함과 진실성 때문이다.


대중문화전문기자 배국남 knbae@entermedia.co.kr


[사진=KBS, SBS, 영화 <광해:왕이 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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