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얼마 전 조선일보 ‘단독기사’가 제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서울 거리에 널려 악취를 뿜던 은행나무 열매가 점차 사라질 전망이다. 서울시는 앞으로 도심 가로수로 은행나무를 심을 때 열매를 맺지 않는 수(男) 은행나무를 심기로 했다.

가을에 은행나무 열매로 도로가 지저분해지고 악취가 나는 현상을 막기 위해 서울시는 오래 전부터 수은행나무를 심도록 권장했지만, 문제는 은행나무의 수령이 어릴 때 암수를 구별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었다. 한 조경전문가는 “그동안 은행나무 가지가 위로 뻗으면 수컷, 아래로 내려가 있으면 암컷으로 분류했다”며 “정확도가 60%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산림과학원이 DNA를 이용한 성감별법을 개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산림과학원은 암나무에는 없고 수나무에만 있는 DNA 표지를 찾아냈고, 이 방법으로 1~2년생 은행나무도 암수를 가릴 수 있게 됐다. (끝)

저는 2009년 9월에 “어린 은행나무의 암수 판별이 어렵다면 한쪽을 솎아내자”고 제안했습니다. 블로그에 올린 ‘은행나무 냄새는 없애고 멋은 살리기’ 글에서 “가로수 은행나무 가운데 암나무만 남기고 수나무는 다 솎아내 도시 밖 먼 수목원 같은 곳에 심는 것”을 해결책으로 내놓았습니다.

기사를 보니 서울시내 은행나무 가로수 중 23%가 암은행나무입니다. 서울시가 수은행나무를 심도록 권장한 결과랍니다. 저는 가을 길에 깔린 은행나무 열매가 많아 보여 암은행나무가 더 많으리라고 짐작했는데, 반대로군요. 그러니 솎아낸다면 수은행나무가 아니라 암은행나무를 옮겨 심어야겠습니다. 가로수 수종이 꼭 단일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암은행나무를 멀리 옮겨심고, 그 자리엔 수은행나무와 어울리는 수종을 심으면 어떨까요?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는 아직 옮겨심기에는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앞으로 (새로) 심을 때’ 가로수 은행나무 성별을 수나무로 단일화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은행나무 열매가 밟히고 냄새가 나는 현상이 ‘점차’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점차’가 ‘멋 훗날’이 될지 모릅니다. 서울시는 은행나무 열매가 문제라고 인식한다면 ‘새로 심기’가 아니라 ‘옮겨심기’를 택해야 하지 않을까요?


칼럼니스트 백우진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smitten@naver.com


[사진=영등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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