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존재허용적 사랑이란 말 들어본 적 있냐?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의 존재를 허용하는 것. 너 같이 무식한 사람을 위해 설명하자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나의 기대, 자기 욕심, 나의 소유욕을 포기하고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지?”

- tvN <로맨스가 필요해 2012>에서 윤석현(이진욱)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tvN <로맨스가 필요해 2012>에서 윤석현(이진욱)이 여전히 주열매(정유미)를 사랑하고 있음을 눈치 챈 석현의 시나리오 공동 집필 작가 강나현(김예원)은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다. 열매는 석현을 떠나 이미 새로운 상대 신지훈(김지석)과 사랑에 빠져버렸으니까. 어떻게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키스를 했다는데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느냐며 속 터져 하는 나현에게 석현은 담담한 어조로 그럴듯하니 사랑론을 늘어놓는다. 서로 다른 정체성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사랑하는 ‘존재허용적 사랑’, 그게 바로 자신이 열매를 사랑하는 방식이라는 얘기. 스스로를 내려놓는 아름다운 사랑, 석현의 사랑이 그런 경지였었나?

하지만 샐쭉해서 물러났던 나현은 금세 쪼르르 달려와 ‘알고 보니 별 게 아니다, 앤서니 기든스가 말한 합류적 사랑(confluent love)하고 같은 개념이 아니냐’며 받아친다. “사랑하는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고 어떤 관계 내에서 지배를 당하기보다는 어떤 상호성을 이루는 방식? 또 내 욕심보다 상대방의 안녕과 성장에 더 관심을 쏟는 사랑. 맞죠? 저 글 쓰는 사람이에요. 책 좀 읽었다고요, 저도.” 어찌 보면 나현 역시 예의 ‘존재허용적 사랑’에 발을 들여 놓았는지도 모른다. 열매에 대한 석현의 사랑이 얼마만큼 깊은지 잘 알면서도 석현을 향한 해바라기를 멈추지 않으니 말이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 그건 조부모의 사랑에 해당되는 얘기가 아닐까? 부모들이야 아이가 백점만 맞아오길 기대하고 하다못해 어릴 적에는 뒤집기나 기기조차 다른 집 아이보다 한발 앞서길 바라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자에게 바라는 게 있을 리 없다.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스러우니까. 그러나 아무리 오래도록 열매와 가족이나 다름없이 지내온 사이라한들 석현의 사랑이 어찌 조부모의 사랑에 필적할 수 있으리.







‘존재 허용적 사랑’ 운운하며 누르고 또 눌러 왔던 질투의 감정은 결국 어느 한 순간 폭발하고 말았다. 하지만 열매를 잃지 않으려면 자신의 진심을 결코 들켜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석현. 석현과 열매는 언제까지 지금처럼 한 집에서 동고동락할 수 있을까? 과연 열매와 지훈의 사랑은 결혼까지 이어질까?

오랜만에 끝이 궁금해지는 드라마가 생겼다. 남녀 간의 삼각관계, 엎치락뒤치락 밀고 당기는 사랑 얘기라면 질색을 하는 나로서는 열매가 누굴 선택할지 궁금해졌다는 사실이 좀 신기하다. 여주인공의 선택을 두고 고민해본 게 대체 얼마만이지? 아마 KBS2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지현우와 김정민 이후 처음이지 싶은데 있는 그대로,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사랑하지는 못하지만 그러기 위해 홀로 애를 쓰는 석현의 사랑도 예쁘고, 사랑하는 여자를 마냥 오냐오냐 받아주는 게 아니라 달래고 길들일 줄 아는 지훈의 사랑도 그 못지않게 예쁘다.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할 줄 아는 열매는 또 어떻고.

그런가하면 나현의 짝사랑도 빼놓을 수 없다. 처음에는 한참 되바라진 아이려니 했는데 찬찬히 지켜본 결과 어느 누구보다 꼬인 구석이 없는 순수한 아이가 아니던가. 그러나 그렇다 해도 나현의 사랑이 석현의 마음에 소리 소문 없이 스며들길 바라지는 않는다. 드라마에서만이라도 늘 푸른 소나무처럼 변치 않는 남자의 사랑을 볼 수 있길 바라는 거지.

사실 나는 이 드라마의 끝이 다가오는 게 두렵다. 마치 어릴 때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바라보듯 아깝고도 아쉬운 심정. 드라마가 막을 내린다 해도 그들은 어딘가에서 예쁘게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또 한 가지 이 드라마가 내게 준 선물은 나로 하여금 요즘 젊은이들의 성모럴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만들었다는 것. 그들의 밝고 솔직하고 순수한 사랑이 나를 설득시켰다고 할까? 무장해제 시켰다고 할까? 케이블 채널이기에 가능했던 얘기들이지만 차차 지상파에서도 만나 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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