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요 소녀들’이여, 이경실을 본받아라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돋보기] 우리나라 TV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 하나 있다. 바로 연예인 처자들이 담요로 무릎을 덮고 나오는 장면이다. 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주로 서양할머니들이 시린 무릎을 덮거나 어깨에 두르는 보온용 덮개가 우리나라에서는 여성 출연자의 다리를 가리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것. 사실 아나운서들도 뉴스를 진행할 때 상의는 정장이지만 하의는 청바지 같은 편안한 차림일 적이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카메라가 상반신만 잡는 상황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나.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들도 고충이 많았던지 최근 들어 SBS <강심장>에는 자체 제작 무릎 담요까지 등장했다. 출연진이 스무 명 가까이 되다보니 예측불허의 노출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터, 어쩔 수 없이 고육지책을 마련했나 보다. 화면 곳곳에서 눈에 띄는 ‘강심장’ 마크가 찍힌 노란색 담요를 보고 있노라면 제작진의 고뇌가 느껴진다. 돌발 상황일 때야 궁여지책으로 담요를 사용한다고 쳐도 <강심장>처럼 콘셉트가 이미 만천하에 공개된 프로그램에 굳이 운신이 불편한 의상을 입고 나오는 까닭을 도무지 모르겠다. 듣기 좋아 무릎 덮개지 이불의 일종이 아니냔 말이다.

노출 걱정이 없는 적당한 길이의 치마를 고르든지, 아니면 아예 바지를 입으면 될 일이 아닌가. 그도 아니라면 의상과 조화를 이룰 숄 종류를 미리 준비하는 센스를 보여주면 좀 좋은가. 이는 애써 옷을 만들고 협찬해준 디자이너에 대한 예의도 아니며 시청자에 대한 예의는 더더욱 아니다. 게다가 요즘은 편안한 분위기의 예능 프로그램 녹화가 아닌 제작발표회에서까지 담요를 사용하는 연예인들이 등장하고 있으니 점입가경이라 할 밖에. 애써 잔뜩 성장을 하고 나와서는 왜 옥에 티를 남기는지 원.

이와 같은 공공연한 담요 사용의 시작은 아마도 KBS <스타 골든벨>부터이지 싶은데, 짧은 교복 치마를 입은 다수의 여성 출연자들을 위한 제작진 측의 배려였던 것 같다. 그리고 KBS <해피투게더>에서는 목욕탕이라는 촬영 장소의 특성 상, MBC <놀러와> 또한 골방이라는 세트가 가진 특성 상 각기 목욕 수건과 이불 크기의 덮개가 등장하고 있지만, 그야 프로그램 콘셉트인지라 얼마든지 이해해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 외의 날씨와 무관한 촬영 현장에서 보이는 각양각색의 무릎 담요는 프로 근성의 부족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MBC <세바퀴>와 <추억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 중인 이경실 씨, 그녀는 한 나절 꼬박 걸리는 기나긴 녹화 시간 중에도 담요 사용을 결코 허용치 않는 프로 중의 프로다! 적재적소에 맞는 리액션과 화려한 입담도 그녀의 매력이지만 무엇보다 빛나는 건 시청자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는 바른 자세이지 싶다. 담요 소녀들이여, 부디 그녀의 자세를 보고 배우자.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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