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답하라 1997> 신원호 PD “지상파에서 했다면..”[대담]

[엔터미디어=TV남녀공감백서] "사실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은 치밀하게 얼개가 짜여 진 드라마였습니다. 흘러가는 게 아닌, 화장실 한 번 다녀오면 단초를 놓치는 드라마, 미드처럼 단서를 툭툭 던져 놓고 그게 나중에 반전의 쾌감을 주는 드라마 말입니다."-신원호 PD
tvN <응답하라 1997>에는 추억이 있고 복고가 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랑 이야기가 있다. 누구나 그리워하는 멀지 않은 과거, 그 시절의 기억을 쫓아 정석희, 정덕현 칼럼니스트와 신원호 PD가 만났다.
(대담-정석희, 정덕현, 신원호. 정리- 최정은)

정덕현: 다른 드라마와 달리 tvN <응답하라 1997>은 화요일 하루에 두 편을 연속 방영 하는 색다른 형태더군요. 드라마 같기도 하고 시트콤 같기도,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장르로 명명해도 되겠어요. 처음부터 계획된 건가요?

신원호: 원래는 30분씩 두 편으로 하루에 60분을 생각했습니다. 드라마에 익숙지 않아 쓰다 보니 분량이 넘쳐 난거죠. 그러나 회별로 강약을 주고 있는 줄거리에 이번 회가 에피소드 중심이었으면 다음 회는 러브 스토리로 가는 등, 짝을 맞춰 가는 구조라 월화 드라마로 나눠 나갈 수는 없었습니다. 한 회에 이야기가 마무리 되지 않으면 산만하니까요.

정석희: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 전 휩쓸고 지나간 복고 코드에 편승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었어요. 시대를 주름잡았던 조상급 아이돌도 나오고, 거대 팬클럽 얘기도 나온다니 노림수가 엿보인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제작진의 면면을 보니 누굴 따라할 사람들이 아니더군요. KBS2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의 연출자과 ‘1박2일’ 작가라니,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첫 회부터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디테일이 살아 있더라고요.

신원호: <건축학 개론>을 보고 낙담했어요. 누가 봐도 우리 드라마가 아류작처럼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월 편성 예정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뒤로 밀리면서 영화가 나온 후 방송하게 된 것도 아쉬웠고요. 예능 PD들은 원래 ‘처음’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경향이 있거든요. 영화를 보면서 놀란 게 우리가 하려고 했던 ‘GUESS 티셔츠’, ‘기억의 습작’ 등이 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첫 촬영 전 날까지 많은 고민을 했어요. 티셔츠를 바지로 바꿔 봤다가 ‘안전지대’ 티셔츠로도 바꿔 봤다가...

그런데 그 전에 한 번 더 놀란 것이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을 보는데 거기에도 GUESS가 나오는 거예요. 누나 청바지를 입고 나간 남학생이 여자 것을 입었다며 친구들로부터 놀림 받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확실히 그 시대에 GUESS는 비싼 옷이라는 일종의 아우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해보자 했습니다. 다행히 아류작이라는 이야기가 없어 안심했죠.

정석희: 지상파가 아니라서 상표 공개에 관대했을 법도 한데요. 케이블이라서 유리한 점도 있지 않나요? 청소년들의 음주 장면도 나오고요. 말투도 지상파에서는 쓰기 어려운 거친 부분도 꽤 있잖아요?

신원호: GUESS는 여전히 팔리는 상표라서 조금 고민을 하기는 했는데 짝퉁은 상관없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원칙은 있었습니다. 시대는 미장센일 뿐이지 결코 주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시대를 전면에 내세워 소품을 줌인 하고 커트 줘 가면서 살릴 생각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케이블이라서 좀 더 강렬하게 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은 했지만 그게 더 과장되게 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리얼’인 경우 똑같이 가자는 생각을 한 거죠. 실제로 친구들끼리 바르고 고운 말만 쓰지는 않잖아요? 욕도 하고 치고받기도 하고요. 이를테면 시원이 부모님이 차에서 사랑을 나누다 들키는 장면도 주변의 경험담을 듣고 재미있겠다 싶어 넣은 장면입니다. 저는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꽤 있더라고요. 만약 지상파에서 방송했으면 리얼함을 어떻게 살릴지 고민 많이 했겠네요.



정덕현: KBS2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 제작에 참여하긴 했어도 드라마는 처음인데, 예능 PD가 어떻게 드라마를 제작하게 되었나요?

신원호: 원래 저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어요. 영화판에서 고생하며 클 자신이 없어 방송국에 입사하기는 했지만 브라운관을 채우는 것과 스크린을 채우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에 다큐멘터리를 지원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예능을 하게 됐던 거죠. 물론 드라마를 영화보다 낮춰 보는 건 아니에요.

정덕현: 영화 연출 공부도 했을 것 같은데요. 느낌이 묻어나는 게 있어요. 영상 자체가 주는 시선이 있더라고요.

신원호: 연출 공부를 따로 하지는 않았지만 영화를 정말 많이 봤습니다.

정석희: ‘남자의 자격’도 출발 당시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이경규 씨가 바닥을 쳤을 무렵이라서 그 멤버로 과연 잘 될까 싶었는데 그걸 살려 내더라고요. <응답하라 1997> 역시 출연진 명단을 보고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죠. 성동일 씨, 이일화 씨, 그리고 이시언 씨 말고는 믿음이 가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서인국 씨가 <사랑비>로 가능성을 인정받긴 했지만 그래도 주연은 무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웬 걸. 지금은 뺄 사람이 하나 없고 마음에 안 드는 캐릭터 하나가 없으니 대단한 거죠.

신원호: 예능에서 많이 단련 된 거예요. <해피선데이> ‘여걸식스’, ‘남자의 자격’ 등에서 출연자에게 기대서 가는 게 아니라 콘텐츠의 힘으로 가는 연습을 많이 했거든요. 저도 케이블로 옮긴 뒤 처음 하는 장르라 처음에는 A급 배우들을 찾았습니다. 계속 되는 거절로 상처를 진짜 많이 받았는데 어느 순간 그들이 뭘 믿고 나와 일을 하겠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능 만들던 사람이 드라마를 만든다는데, 게다가 지상파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하던 대로 하자 생각했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등급 없는 사람들을 등급을 만들어 주자, 함께 노력해서 한 단계라도 올려주자 한 거죠. 사람 키우는 데서 오는 희열이라는 게 있거든요. 지금 와서 보니 역시 잘한 결정이었습니다.

정덕현: 정은지의 연기가 정말 자연스럽데요. 원래 부산 사투리를 쓰던 친구인가요?

정석희: 생활 연기, 딱 자기 같은 배역을 맡았기에 더 잘하는 것 아닐까요? 주인공 정은지나 서인국 모두 본업인 노래 부를 때는 물론 KBS2 <출발 드림팀>이나 MBC <우리들의 일밤> ‘남심여심’ 등 다른 예능에서는 크게 도드라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매력적이더군요.

신원호: 두 사람 다 원래 부산 친구에요. 캐릭터와 닮은 구석이 많기는 한데 은지의 경우 기본적으로 센스가 정말 좋습니다. 사실 연기자로서는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죠. 그렇지만 그 모든 걸 커버하는 센스가 있어요. 기존 연기자들의 정형화 된 연기에서는 이런 느낌이 안 나오는데, 자유분방하고 리얼한 느낌으로 연기 하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빤한 대사 톤이 아니더라고요. 서인국도 마찬가지고 은지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은지원은 현장에서 손이 안가요. 연기를 많이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연예계 내공이 15년이니까요. 장르는 달라도 연기를 쉽게 하더라고요. 어려워하지 않아요.



정석희: 극 중에서 토니안은 토니로 나오는데 은지원은 고등학생으로 나오잖아요. 젝스키스 시절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하는 연기도 있고요. 민망해 하지는 않았나요?

신원호: ‘1박2일’ 때의 인연으로 이우정 작가와 은지원이 정말 신뢰하는 사이에요. 그래서 은지원 씨의 출연은 걱정도 안 했습니다. 본인한테 이야기도 안하고 이름 먼저 적었지요. 하하. 영화 <세븐틴>을 보는 장면 에서는 영화를 먼저 보여주고 배우들 대사를 땄는데, 차마 못 보겠다고 나가버리더군요(웃음).

정석희: 친구들에게 맞는 장면도 있던데 한참 어린 후배들에게 맞는 장면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신원호: 언제 세게 때릴 거냐고 묻고는 끝이었어요. 연기를 즐겨요. 신경 쓰지 않더군요.

정덕현: 특별히 부산을 배경으로 한 이유가 있나요?

신원호: 부산이 먼저가 아니고 사투리가 먼저였습니다. 60, 70년대의 복고는 우리가 잘 아는 전형적인 세트가 있어 오히려 쉽습니다. 그런데 15년 전 이야기면 지금의 실 공간으로 봐야 하기에 소품과 헤어 외에 복고를 강화 시켜줄 다른 무엇이 필요했습니다. 고민하다 사투리로 간 거죠. 사투리에는 푸근하고 아련한 정서가 있거든요. 우리가 익숙한 것을 하지 않으면 중간에 꼬이고 욕만 먹을 것 같아서 제작진 모두가 잘 아는 1997년, ‘빠순이’, 그리고 이우정 메인 작가의 고향인 경상도 사투리를 설정 했습니다.

사실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은 치밀하게 얼개가 짜여 진 드라마였습니다. 흘러가는 게 아닌, 화장실 한 번 다녀오면 단초를 놓치는 드라마, 미드처럼 단서를 툭툭 던져 놓고 그게 나중에 반전의 쾌감을 주는 드라마 말입니다. 뒤통수를 친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그래서 <응답하라 1997>에서는 씬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단초가 되거나 전개가 되거나 절정을 치거나 결말 마무리를 위한 것, 아니면 아주 재미가 있거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외에는 다 뺐으니까요.

그 다음이 대사. 말맛이 중요한데 표준어로 채우기에는 힘들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맛은 사투리에 있어요. 같은 사랑 표현을 해도 ‘만나지 말라케라’는 ‘만나지 말라고 해라’와 느낌이 다르잖아요. 낭만적으로 말랑말랑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 사투리로 툭 뱉어 느껴지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정덕현: 그런 점에서 부산 사투리의 툭툭 던지는 말투가 요즘의 쿨한 느낌과 맞아 떨어지는 게 있어요. 여자 아이들도 사투리가 들어가니까 예쁜 척하는 느낌이 안 나고 멋져보이더군요.

신원호: 제가 많이 접해보지 않았던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라 신선했습니다. 표현하는 방식이 틀리더라고요.

정석희: 성공한 드라마는 시청률이 문제가 아니라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드라마라고 생각하는데요, 요즘 사석에서 이 드라마 얘기가 끊이지 않던데 아깝게도 제가 팬 문화 쪽은 잘 몰라서 놓친 부분이 있겠다 싶더군요. 대중문화를 제대로 잘 꿰뚫고 있어야 재미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10회 때 까메오 양세형과 정경미가 PC 방에서 만났다는 얘기, 아이디가 ‘예삐 공주’였다든지. 그런 것들은 <코미디 빅리그>를 보지 않은 사람은 무슨 소린지 모르잖아요.

신원호: 제 경우 ‘팬문화’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컬쳐 쇼크였습니다. 이유정 작가가 1화 대본을 썼는데 ‘젝스키스빠’였다고 해요. 알려졌다시피 김란주 작가는 ‘토니빠’였고요. 예전 같으면 한심하게 들었을 이야기인데 진지하게 들어보니 정말 치열하게 살았더군요. 전 그렇게 뜨겁게 살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재미있었겠다, 행복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만의 철학이나 시스템, 우리들이 모르던 세계가 있더라고요.

알고 보면 내가 몸담고 있는 연예계를 먹여 살려온 것이 그들인 것이, 오빠들을 위해 사 모은 수 십장의 CD로 기획사가 돈을 벌고 그것을 재투자 해 K-Pop의 원동력이 되었으니까요. 본인이 팬클럽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한 둘 쯤은 꼭 있어서 공감이 충분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석희: 촬영은 마무리 단계인가요? 음악도 주옥같던데 직접 고르시는 건가요?

신원호: 다음 주 말이면 촬영이 거의 마무리가 됩니다. 3화부터 편집과 촬영을 같이 하다 보니 4-5일 못 씻는 건 예사입니다. 편집 기사에게 편집을 맡겨도 되는 데, 예능을 할 때부터 직접 해 오던 버릇이 있어서 일이 많습니다. 음악은, 사실 그 부분에 있어 욕심을 줄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말 들려주고 싶은 노래여서 꼭 한 번 넣어보고 싶다는 유혹을 느낄 때가 있는데, 실패로 끝난 경우가 많거든요. 대중들에게 잘 들리게 하려면 보편적인 노래들을 골라야 되겠더군요. 사람들이 많이 아는 노래를 고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원호 PD와의 대담은 2편으로 계속 됩니다)


대담 : 정덕현 칼럼니스트, 정석희 칼럼니스트
정리 : 최정은 기자
사진 : tvN, 엔터미디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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