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만약 연기자가 아니었으면 예뻐지려고 노력 많이 했을 거예요. 그러나 아직까지는 저는 연기 잘하는 사람은 주름도 나의 얘깃거리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이 살아 있는 얼굴, 그러기 위해서는 근육이 움직이면서 주름이 만들어가는 희로애락이라는 게 있잖아요. 결국은 저도 말을 못하겠는 게 욕심이, 언젠가는 저한테도 변화를 주고 싶어질 수도 있겠죠. 그래서 말을 함부로 못하겠는데요. 하지만 한 가지, 싫은 건요. 서클렌즈를 낀 친구들을 보면 마치 붕어하고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동공이 움직이질 않아서 되게 불편해요. 눈을 보면서 연기를 하는데 동공의 조리개가 전혀 안 움직여서 시꺼먼 구슬을 보면서 얘기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제 감정도 안 나오니까 서로를 잡아먹는 연기가 된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것만큼은 서로 예의로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 SBS <강심장>에서 조민수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SBS <강심장>에서 외모에 신경을 쓰는 후배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MC의 질문에 영화 <피에타>에서의 열연으로 이번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이 기대되는 배우 조민수는 이렇게 답했다. 다른 건 몰라도 눈빛을 읽을 수 없는 서클렌즈를 착용하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정말 질색이라고. 감정 교류를 거스르는 일인 만큼 상대 배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 자제해줬으면 한다고. ‘국가대표특집’이다 보니 배구선수 김연경과 영화감독 김기덕이 출연한 덕에 색다른 이야깃거리들이 넘쳐났고 그 때문인지 이내 다른 게스트에게로 마이크가 넘어가 버렸지만 아직까지도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언제 한번 날 잡아 토론이라도 벌여 공론화되면 좋을 주제가 아닐는지.

눈빛과 표정이 고정된 배우. 눈을 마주보고 감정을 끌어내야 하는 상대 배우야 당연히 괴로울 테지만 보는 시청자 역시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라는 사실, 서클렌즈에 대한 집착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그대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울거나 웃거나 표정이 인형 모양 똑 같으니 도대체 몰입이 되어야 말이지. 가만 보면 신들린 연기를 하는 배우들은 우선 눈빛부터 흔들린다. 내면의 움직임이 미세한 눈동자의 변화를 통해 가장 먼저 드러난다는 얘기다. 그런데 눈물은 샘물 솟듯 솟아나 줄줄 흐르는데 눈동자는 미동도 없이 고정된 연기자를 보고 있자면 때론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거야 원 귀신도 아니고.






콕 집어 후배들을 겨냥한 질문이어서 그렇지 사실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건 서클렌즈만은 아니었으리라. 요즘 그 예뻤던 얼굴, 그 풍성하고 오묘했던 표정을 죄다 망쳐놓은 중견배우들이 한둘이 아니지 않나. 솔직히 젊은 연기자들의 서클렌즈 따위야 지금이라도 속 차리고 빼면 되는 일이지만 이미 중독 수준에 이르렀지 싶은 성형은 어쩔 것인가 말이다.

나도 어지간히 나이를 먹은지라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주름살에, 새치머리 염색으로는 이젠 커버가 안 되는 흰머리에 가슴 한쪽이 뻥 뚫린 양 우울할 적이 많은 사람이다. 가을이 다가오면 털갈이를 하듯 왜 그리 머리숱은 자꾸만 줄어드는지 아주 매일 아침 머리 감는 일이 다 두려울 정도다. 그러니 어떻게든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이고 싶은 그네들의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가고 남는다. 하지만 표정으로 감정을 전하는 게 배우의 의무이지 않은가. 이건 나이 지긋한 어른에게 개념이 없다는 소리는 할 수 없는 일, 그저 부디 프로 의식 좀 가져주십사 부탁할 밖에. 자신이 사랑하는 연기, 죽는 날까지 계속하고 싶을 연기 인생에 그처럼 옥에 티를 남겨서야 되겠나.

더 기막힌 건 늘어가는 주름에 골머리를 썩을 나이도 아니건만 볼에 뭘 그렇게 가득 넣었는지 표정 변화가 전혀 없는 얼굴로 카메라 앞에 당당히 서는 젊은 연기자들이다. 그딴 행위는 정말 무례하고 몰상식한 걸로! 이참에 딱 규정지었으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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