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건 씨, 아드님 참 잘 키우셨어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하정우. ‘아부의 아이콘’도 아니고 뭐지? 현장에서 늘 선배들에게 입안의 혀처럼 군다는 말에 처음엔 좀 의아했다. 겉보기는 말 깨나 안 듣게 생겼는데? 잘하기는커녕 할 말 있으면 선배든 감독이든 추호의 망설임 없이 따박따박 다 할 것 같고, 뭘 시키기라도 했다가는 ‘찌릿’하고 째려보기라도 할 것 같다. 배알 꼴리면 아무리 선배라 해도 대거리조차 안 할 것 같고.

영화 <추적자>에서 착각을 불러올 만큼 완벽했던 범인 연기 때문에 생긴 이미지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를 처음 알게 된 드라마 SBS <프라하의 연인>(2005) 때도 그리 편안한 인상은 아니었다. 나이도 어리고 정의롭고 올바른 청년 캐릭터였지만 왠지 다가가기 어려운, 뭐 그런 느낌이 있었으니까. 그건 열혈 검사로 나왔던 첫 주연 작품 MBC <히트> 때도 마찬가지다. 좋은 사람이라는 건 충분히 알겠는데 편하게 대할 수는 없는 거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성깔 있어 보인다고 할까?

그러나 본인 스스로가 몇 차례씩이나 강조하길 특히나 촬영 현장에서는 마치 노예 모양 선배들을 받들어 모신단다. 예를 들어 선배가 짐을 들고 있으면 바로 받아들고 뭘 먹고 싶어 하는 눈치가 보이면 어떤 방법을 써서든 그 즉시 대령하는 식으로, 가방도우미부터 산책 시 말동무며 술친구 역할까지 촬영 기간 내내 동무 노릇을 기꺼이 자처하는 모양이다. 삶에서든 사람이든 개그코드를 가장 중요히 여긴다고 하니 어느 정도 웃음을 위해 과장된 부분은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 것들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최선을 다해 선배를 모시는 건 엄연한 사실인가 보다.

그런데 이 말 한마디로 모든 의문이 깨끗이 풀렸다. “현장에서 어른들에게, 선배들에게 내가 잘 해야, 그래야 아버지도 다른 현장, 다른 작품을 할 때 후배들에게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해요.” 그랬구나. 내가 예서 쌓은 덕이 은연중에 다른 현장의 아버지에게 전해지겠지 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이건 우리 모두가 가슴 깊이 새겨야 옳을, 중요한 얘기다.







내 가족이려니 하고 남을 대한다면 분란이 있을 리도, 감정 다툼이 생길 리도 없지 않나. 입장 바꿔 내 가족이라고 생각해보라. 내 어머니며 동생이 같은 꼴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식당에서 실수로 물 쏟은 종업원을 그렇게 닦아세울 수도 없는 일이고, 내 남편의 일이라 여긴다면 배달원이나 택배 기사 면전에서 현관문을 쾅 닫을 수도 없지 않은가. 말 한 마디라도 따뜻하게 하게 될 것이고 시원한 물 한잔이라도 내드리려고 노력할 것이다.

“연기를 ‘잘해야겠다’가 아닌 ‘소화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한다는 옛말처럼 ‘위안 받는 각자의 한강이 있어야 한다." 등 범상치 않은 화법, 남다른 단어 선택들도 인상적이었지만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이처럼 삶의 지혜를 꿰뚫고 있고 또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연기자의 길을 걷는 데에 있어 특별히 아버지 덕을 본 바는 없지 싶지만 ‘선생님’ 소리를 듣는 중견배우들을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후광을 입었다고 생각하다는 하정우. 스태프들부터 투자자까지 모두가 연기자 하나만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 혼자 감당해야 하는 책임감과 무게가 얼마나 큰지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고. 그래서 배우처럼 외로운 직업이 없기에 상대적으로 더 기댈 곳이 없지 싶은 여배우를 세심히 챙겨주게 된다나.

그와 함께 하는 선배들이며 상대역을 맡은 여배우부터 모든 스태프들이 참 행복할 것 같다. 무엇보다 이런 아들을 둔 아버지 김용건 씨는 밥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다. 하정우 씨 부모님, 아드님 참 잘 키우셨습니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그림 정덕주


[사진=S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