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빠를 왜 실패한 천재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아빠가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 MBC 에서 김웅용의 큰아들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이 끝나갈 즈음 김웅용의 큰아들이 또랑또랑한 어조로 물었다. 왜 우리 아빠가 실패한 천재냐고. 어른으로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천재소년으로 불리던 김웅용과 같은 시대 사람이다. 그래서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가 IQ 측정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어떤 활약을 했다느니, 그 이름만으로도 대단한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의 지능지수 보유자'로 올랐다느니,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딛는 광경이 생중계 되었을 때 들어본 미항공우주국(NASA)의 주선으로 유학길에 올랐다느니 하는, 뭐 그런 기인열전 같은 얘기들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며 자랐다. 하도 많이 듣고 하도 자주 비교되는 통에 아예 질려버릴 정도였다.

먹고 살기도 버거웠던 때라 변변한 화젯거리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비범한 어린 소년을 향한 과한 관심은 지금의 박태환이나 김연아에게 쏟아지는, 그 이상이었지 싶다. 어쨌거나 그 시절에는 ‘김웅용’이 천재의 대명사였다. “네가 김웅용이냐?”, “이런 건 김웅용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십여 년쯤 흘렀을까? 드문드문 흉흉한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로라할 국내 명문대에 진학을 못한 걸 보면 210이라는 수치 자체가 사기 아니겠느냐, 나사에 간 건 맞지만 적응을 못하고 이내 돌아왔다,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고 심신이 피폐해져 바보가 됐다더라. 등등. 실패한 천재. 그를 그렇게 떠받들던 언론이 그에게 새롭게 붙여준 호칭이었다.

콜로라도 주립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수료했고 나사에서 6년간 핵물리학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다가 냉랭한 차별의 벽을 견디다 못해 돌아왔으나 나사를 탈출한 대가는 혹독했다고. 졸업장이 없는 석박사 수료로는 학력이 인정되지 않는지라 일자리는커녕 대학에도 들어갈 수 없는 처지. 결국 초, 중, 고, 검정고시 과정을 하나하나 밟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수학이 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외우기도 하는 거구나, 하고 느꼈단다.





그런 그가 결국 무작정 서울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 선택한 충북대학교에 진학하자 부모의 욕심이 자식을 망쳐 놓은 케이스라는 질타가 이어졌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시간강사, 계약직 교수로만 15년을 보냈다니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일이지 뭔가.

심지어 몇 년 전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는 “9세에 대학을 마칠 수 있다던 신동은 평범한 대학생이 되었습니다.”라며 마치 그가 과거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이기라도 한 양 묘한 분위기를 조장하기도 했다.

일본 방송 출연 당시 ‘이런 천재는 인류의 보물임으로 소중하게 키워야 한다’며 극찬했다는데, 스페인 언론에서는 ‘세 살짜리 피타고라스’라며 놀라워했다는데 정작 우리나라 방송에서는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지만 그때의 일을 묘기대행진쯤으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요즘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송에 나오고 잡지, 신문에 실리면 의심 없이 믿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대중의 신뢰를 등에 업고 한 사람을 추켜세웠다 내리 꽂았다 장난질을 쳐온 언론들. 남의 일이지만 분노가 치민다.








“IQ210의 천재가 저기 왜 있지? 어디 이상 있나? 60 년대 수치니까 그때 그거는 거품 아닌가?“ 현재 충북개발공사에서 근무하는 그의 동료들에게 그는 그냥 보통 사람이다. 하기야 스마트폰 개발자들보다 IQ가 족히 50 이상은 높을 그가 휴대폰 사용설명서를 붙들고 한참 동안 씨름을 하고 있으니 그런 소리가 나올 밖에. 그러나 카이스트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당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은 그가 이탈리아에서 발표할 논문을 영어로 작성한 후 두어 달 남짓 이탈리아어를 공부하여 결국 이탈리아어로 발표했고 이탈리아어로 질문까지 받았다고 증언한다. 이런 사람이 천재가 아니면 누가 천재이겠는가.

이처럼 남들이 그의 천재성을 두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이 그는 동아리 모임에서 만난 후배와 결혼하여 자신을 똑 닮은 아들 둘을 낳고 잘 살고 있었다. 자신에게서는 증발해버린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모양이다. 천재소년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성장하는 동안 가난한 나라를 살릴 큰 인물이 되라고 끊임없이 세뇌 받았던 그. 그런 교육 탓에 세계평화가 삶의 목표였다는 그. 숨고 싶은 마음과 바보가 아님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무수히 방황했던 그는 예전에도, 지금도 계속 얘기한다. “나는 천재가 아니에요. 앞으로도 아니에요. ‘내가 천재다’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단 말이에요. 왜 올려놨다가 다시 떨어 트리냔 말입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그가 행복하다는 사실이 아니겠나.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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